사회 사회일반

'無지출 선언' 빗발칠 때… 한쪽에선 오마카세 예약대란 [2023 신년기획]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1.04 18:04

수정 2023.01.04 18:43

Recession 시대의 해법
평균의 종말, N극화 소비 뜬다
고물가·경기침체 속 소비 양극화 뚜렷
유행 민감한 젊은층선 과시형 소비 즐겨
유통가, 가성비·최고급으로 상품 세분화
고소득층은 물론 서민 수요까지 맞춤 대응
'無지출 선언' 빗발칠 때… 한쪽에선 오마카세 예약대란 [2023 신년기획]

#. 지난해 유튜브 등 SNS를 크게 달군 콘텐츠는 무지출 챌린지다. MZ세대가 '일주일 5만원으로 미니멀하게 살기' 등의 팁을 나누고 있으며 조회수는 수십만회에 달한다. '30대 짠돌이'라는 콘셉트의 한 유튜버는 절약 콘텐츠만으로 3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 "2023년 예약은 거의 마감됐다고 보면 됩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양고기 오마카세 식당 관계자는 예약 문의를 하자 이같이 답했다. 일본어인 오마카세(おまかせ)는 '타인에게 판단을 맡긴다'는 뜻으로 해당 식당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다채로운 양고기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다.
가격은 1인분에 15만원으로 전통주와 곁들이면 가격은 20만원이 훌쩍 넘는다. 식당 관계자는 "손님들이 의미 있는 날에 의미 있는 식사를 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며 "경기 불황과 관련 없이 예약이 가득차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고물가와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소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 끼에 수십만원이 넘는 식당이 몇 달째 예약이 꽉 차는가 하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생활비 절약 팁을 공유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스태그플레이션(경제불황 속에서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상태) 초입의 광경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둔화 우려 지속

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 심리 부진으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1월 86.5로, 한달 전보다 2.3p 떨어졌다. 소비자심리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을 경우 소비 심리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이승한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최근 백화점은 실적이 좋고, 마트는 상대적으로 안 좋은 실적을 내는 등 양극화가 이어졌는데 이번 백화점 실적 둔화는 몇 년 만에 큰 수준"이라며 "국민애도기간 등 이태원 사고의 영향이 백화점이나 음식·숙박 쪽엔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를 뒷받침하던 내수에서도 부진이 나타났다. 정부가 발간하는 지난해 '12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1월 그린북까지 내수가 완만한 개선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지만, 12월에는 "회복 속도 완만"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난 10월 소매판매가 전월보다 0.2% 감소하면서다. 2021년 같은 달과 비교하면 0.7% 줄었다. 외식 등 서비스 소비를 알 수 있는 지난 10월 서비스 생산은 전월보다 0.8% 감소했다.

■마트, 백화점도 '양극화'

전반적인 소비 둔화가 점쳐졌지만 정작 소비 양극화가 거세지고 있다. 올해 백화점들은 설 선물세트로 2만~3만원대 차·과일세트부터 130만원대 한우세트까지 가성비 높은 상품과 초고가 상품군을 동시에 강화했다.

대형마트는 같은 품목이라도 가성비 좋은 상품과 최고급 상품으로 선택지를 세분화하고 있다.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이 1등급 한우 선물세트를 10만원 미만으로 팔면서도 50만원에 달하는 최상급 '마블나인' 한우 선물세트까지 선보여 다양해진 수요에 대응 중이다.

관련 업계는 고물가 시대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서민은 가성비 좋은 상품을 찾는 반면, 고소득층 위주로 여전히 '플렉스 소비'(과시형 소비)를 즐기는 수요도 이어지면서 설 선물세트 판매에서도 소비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사전 예약은 법인 고객, 대량 구매 고객이 많아 가성비 높은 상품이 특히 잘 팔릴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본판매 기간까지 프리미엄 상품 수요도 이어질 것으로 보여 다양한 품목으로 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 기자가 방문한 A백화점에선 주로 고급 선물세트가 잘 팔리고 있었다. 지하 1층 식품 코너에서는 5만원에서 20만원 가격대의 곶감이 날개돋친듯 팔렸다. 판매사원 A씨는 "우리 매대에서는 15만원짜리 지리산 산청 곶감세트가 판매량이 가장 높다"며 "높은 가격대를 권해도 손님들의 거부감이 덜 하다"고 했다.

식당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외식 업계에서 인기를 일으킨 '초밥 오마카세'는 인당 30만원이 훌쩍 넘지만 일부 객장에서는 몇 달 이상 기다려야 간신히 저녁 좌석을 차지할 수 있다.

일부 시민들은 이러한 '플렉스' 문화를 과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이모씨(35)는 "SNS 등에 호캉스, 오마카세 등 비싼 소비를 해야 소위 멋있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며 "주변에도 도시락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플렉스 문화에 심취한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변모씨(36)는 "코인과 주식 등으로 벼락부자들이 많이 생겨 플렉스 문화가 더 심해졌다"며 "최근에 자산이 폭락해 소비 여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 소비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플렉스' 부추겨"

전문가들은 '소비 양극화'의 배경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이유로 꼽았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높은 물가상승과 실직, 경기 후퇴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주요 국제기구와 국내 연구기관들이 전망한 2023년도 한국경제 성장률 평균이 1.8%에 그친다"며 "실질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크게 밑돌 전망이고 물가 상승률은 장기평균보다 높은 3.4%를 기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일자리 자체를 위협받고 있고 이로 인해 구매력이 감소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여유가 생기고 좀 더 소비를 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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