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진숙 칼럼] 요동치는 기회의 땅 베트남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1.09 18:47

수정 2023.01.09 18:47

[최진숙 칼럼] 요동치는 기회의 땅 베트남
베트남의 과거는 말 그대로 전쟁의 역사다. 그것도 상대는 매번 당대 최강의 나라들이었다. 숙적 흉노를 무찌르고 비단길을 장악해 한나라를 대제국으로 키운 이는 무제다. 중국의 베트남 1000년 지배 문이 이때 열렸다. 판을 뒤집기까지 포기를 몰랐던 베트남 선조들의 근성은 지금 봐도 놀랍다. 938년 하롱베이 인근 박당강에서 5대10국 중 하나였던 남한군을 대파해 비로소 중국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천하를 발아래 뒀던 몽골제국의 침략을 세 차례나 격퇴한 나라는 베트남이 유일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치른 전쟁은 더 극적이다. 식민통치 복귀를 노렸던 프랑스는 압도적 화력을 갖고도 55일 만에 백기를 든 흑역사가 있다. 그 유명한 디엔비엔푸 전투에서다. 사방이 빽빽한 정글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베트남군에 프랑스 병사들은 벌벌 떨었다. 이때 이름을 떨친 이가 '붉은 나폴레옹' 보응우옌잡 장군이다. 전후 최강자 미국에 쓰라린 패배를 안긴 이도 그였다. 장군의 3불(不) 전략은 유명하다.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다, 적이 좋아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는다, 적이 생각하는 방법으로 싸우지 않는다.' 이 고전적 병법 앞에 미국의 최첨단 무기도 별 쓸모가 없었다.

제국을 차례로 발 앞에 무릎 꿇린 베트남의 자부심은 어마어마하다. 식민지 콤플렉스가 끼어들 여지가 사실상 없었다. 승자의 여유가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대범함을 키웠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1964년 이후 종전까지 총 32만명을 베트남전에 보냈다. 그렇지만 베트남 정부가 이를 문제 삼은 적은 없다.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자"는 말을 베트남 관료들은 입버릇처럼 한다. 베트남 실용주의의 요체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86년 개혁·개방으로 방향을 튼 도이머이(Doi Moi 쇄신) 정책 이후 베트남의 변신은 천지개벽 수준이다. 법인세 면제 등 친기업 입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역협정 체결이 베트남만큼 많은 나라도 없었다. 교역액은 30배 가까이 늘었고,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20배 이상 뛰었다. 지난해 세계는 다 같이 저성장 늪에 빠져들기 시작했지만 베트남은 8%대 성장을 해냈다.

사회주의 뼈대에서 꽃핀 시장경제이지만 잠재력은 탁월하다. 공직 부패 등 공산권의 한계를 상쇄하고도 남을 요소가 상당하다는 뜻도 된다. 베트남은 웬만한 국가들이 닮기 힘든 젊은 나라다. 32세 이하 연령층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저렴한 인건비, 풍부한 노동력의 원천이면서 향후엔 막강한 소비시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희토류 등 주요 원자재 공급지로서 가치도 뛰어나다. 한국은 일찌감치 베트남을 탈중국 기지로 공을 들였다. 삼성의 현지 공장은 베트남의 수출의 20%를 책임진다. 우리 기업들은 첨단 초고층빌딩을 올려 하노이 스카이라인도 바꾸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이 한국의 무역흑자 1위국이 된 것은 그간의 결실이다.

베트남은 이제 한국뿐 아니라 중국 패권에 놀란 글로벌 기업들의 포스트 차이나 핵심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애플의 베트남 행보는 예상을 압도한다. 덴마크 레고그룹의 대규모 투자도 확정됐다.
앞서 구축한 한국의 인프라가 흔들릴 수도 있는 처지다. 더욱 굳건한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
더불어 장기적 안목의 포스트 베트남, 신시장 다변화 전략도 속도를 내야 한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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