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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증권株는 있는데···국내 자산운용사는 왜 상장 안 할까

김태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1.12 05:00

수정 2023.01.12 05:00

키움운용·이지스운용, IPO 시도했으나 결국 무산
자기자본 투자 비활성화, 대규모 자금 조달 필요성 낮아
해외 상장 자산운용사 /그래픽=정기현 기자
해외 상장 자산운용사 /그래픽=정기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신한·KB·하나·우리 등 금융지주, 미래에셋·삼성·NH투자증권을 비롯한 다수 증권사는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있다. 각각 은행주, 증권주로 묶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산운용주’는 없다. 증시에 입성한 운용사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 시각으론 유사한 업권으로 보이는데, 왜 이 같은 차이가 날까. 운용업계는 공통적으로 ‘그럴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투자금 운용이 ‘메인’

12일 자산운용 업계에 따르면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기업공개(IPO)를 하기 위한 ‘동기’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개 상장은 자금 조달이 주 목적인데, 운용사의 경우 자기자본(PI) 투자가 증권사 대비 금액이 적고 활용도 역시 높지 않은 탓이다. 고객 투자금을 굴려 최대 수익을 뽑아낸 후 운용보수 등 수수료를 취하는 게 기본 수익 구조이므로 자기자본을 늘릴 유인은 크지 않다는 뜻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통상 자산운용업은 우수한 펀드 상품 출시를 위한 인력, 인프라 등에 대부분 비용을 지출하지 그 돈으로 건물을 매입하는 등 자체 투자에 역량을 쏟진 않는다”며 “일반 기업처럼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연구개발(R&D)에 몰두하지도 않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만일 상장을 한다고 해도 매력적인 종목은 아니다. 굳이 눈을 돌리지 않는 또 다른 이유다. 자산운용업은 증권업에 비해 업황 영향을 덜 받는다. 기업금융(IB),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권 중개 등 각종 사업을 영위하는 증권사는 시장이 악화할 경우 실적으로 직결된다. 실제 지난해 금리 인상, 레고랜드 사태 등 악재가 겹치며 ‘영업이익 1조’ 명단에 든 증권사는 한 곳도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운용사는 같은 상황에서 펀드 수탁고가 줄어들 순 있으나, 어느 한 사업 부문이 무너지진 않는다. 이번 레고랜드 사태 이후 ‘중소형 증권사’ 유동성 위기는 대두됐으나, ‘중소형 운용사’가 힘들다는 이야기는 부각되지 않았다.

이처럼 ‘무거운’ 사업 형태가 상장 시장에서는 문제가 된다. 공격적 투자를 선호하는 국내 투자자 특성상 시장이 오를 때 그 이상으로 주가가 뛰지 않으면 선택을 받기 힘들다.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순자산 대비 운용보수를 가져가는 비즈니스다보니 성장성이나 수익성이 뻔히 보이는 업종”이라고 짚었다.

이는 주관 증권사 눈에도 마찬가지다. 실제 지난 2015년 키움투자자산운용이 IPO를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몇몇 증권사에 전달했으나,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인 곳은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상충 우려에 당국 개입 부담"

이해상충 여지도 상장 의지를 꺾는 요소다. 펀드 투자자와 주식 투자자 중 한쪽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고객 신뢰가 최우선인 운용사로서 입지를 지킬 것인지, 상장사로서 주주 친화적 방향을 택할 것인지 기로에 서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을 택해도 비판은 불가피하다.

이와 함께 특정 자산에 자기자본으로 투자를 한다고 해도 고객 돈을 끌어다 썼다는 외부 시선도 견뎌야 한다. 공론화되면 펀드 자금이 이탈하고 주가가 고두박질치는 이중고가 닥친다. 금융당국 개입도 동반되기 때문에 부담이 가중된다.

또 운용사 IPO에는 다른 운용사가 기관투자자로 참여하지 못 한다. 공모주 청약 자체가 불가능하단 의미다. 자연히 흥행 가능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지난해 내내 단행된 금리 인상으로 주식 시장 자체가 부진한 상황에서 제값을 받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고 상장을 시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KKR·블랙스톤과는 사정 달라”

운용사 상장 추진이 없었던 건 아니다. 키움운용 이후 2018년부터 이지스자산운용도 몇 차례 나선 바 있다. 회사채를 발행하고, 주관사를 적극 선정하는 등 박차를 가했으나 내부 지분 구조 문제와 시장 상황 등에 가로막혀 결국 입성은 성공 못한 상태다. 지난해부터 부동산 시장이 침체를 맞고 있는 영향도 있어 보인다.

토종 사모펀드(PEF) 중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상장돼있으나, 흡수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이라 그 경로는 다소 다르다.

해외에는 상장 운용사가 꽤 있다.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뉴욕증권거래소에, 대체투자 전문인 브룩필드자산운용은 토론토증권거래소에 각각 상장돼있다. KKR과 함께 글로벌 3대 사모운용사인 블랙스톤, 칼라일 역시 상장사다.


하지만 자본시장 업계 관계자는 “이들은 국내 운용사 규모를 크게 웃도는데다 다방면에 걸쳐 신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다”며 “성장성 높은 투자처를 사전 발굴해 자체 투자를 실시한 후 외부 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여력이 있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긴 어렵다”고 짚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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