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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주군이 바뀌면 '어공'도 떠나야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1.17 18:05

수정 2023.01.17 18:05

[fn광장] 주군이 바뀌면 '어공'도 떠나야
어공과 늘공이 공존하는 정부의 인력채용 양대 방식이 전통적인 엽관제(spoils system)와 실적제(merit system)다. 오늘날 복잡계 행정체제에서도 이 둘은 기본 뼈대가 된다. 전자는 선거에 이긴 정당이 공직을 차지하는 것이고, 후자는 능력과 실적에 따라 임용하는 제도다. 그런데 엽관제는 공직이 전리품이 되어 정치적 거래나 부패 우려 등으로 실적제보다 후진 제도란 오해가 있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본래 엽관제는 '공직임용의 민주화' 과정에서 태어난 소중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매켄지(G C Mackenzie)의 미국 공직 임용패턴 변천 5단계의 제1기는 '지배 엘리트(the governing elite) 시기'다.
미합중국 건국 당시(1789년) 영국처럼 왕이나 귀족은 없는 대신 상류층 지배 엘리트들이 있었다. 정치·행정은 혁명 주체인 이들 지주계급의 전유물이요, 책무였다. 초기 20여년 동안 공직은 '연방당' '민주공화당' 할 것 없이 이들 내부 서클에서 충원되었다. 시민에게 정부란 멀리 보이는 닫힌 영역에 불과했다.

그다음 제2기가 19세기 초부터 약 1세기 반 동안의 은급 임명기(patronage) 또는 '엽관제 시기'다. 정당과 의회정치가 성숙하면서 공직책임 강화 명분으로 연방공무원 임기를 4년으로 제한하는 '공직자 4년 임기법(the Four Year Act·1820년)'이 시행되자 대통령이나 상원의원이 최대한 자기 사람을 지명하면서 공직의 정치화·은급화가 시작되었다. 이는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선거(1828년)를 계기로 변혁을 맞았다. 그동안 지배층 전속이던 공직을 누구나 '민주화에 기여한 유능한 사람'이면 점할 수 있는 '공직 교대정책(policy of rotation in office)'이 확립됐다. 이로써 정부는 국민과 가까워지고 민주화, 즉 선거 승리에 기여한 '엽관자'(spoilsman)로 채워지게 되었다. 이 정치적 임용은 1950년대 직업공무원제가 정착되기까지 고위직 임용전통이 되었다. 이처럼 엽관제는 공직 민주화의 근간 제도인 것이다.

현재도 엽관제의 필요성과 장점은 살아 있다. 일정 직위를 정치적으로 임용하여 정권의 가치를 함께 추구하고 또 정권이 바뀌면 떠남으로써 관료적 특권의 고착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엽관자들은 정권이 바뀌면 정부를 떠나는 것이 정도(正道)다. 임기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임기제는 그 인사권의 자의적 행사로부터도 보호하여 직무 지속성을 도모하자는 것이지 인사 원천이 바뀌어도 머물게 하자는 게 아니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바뀌면 전 정부의 정치적 임명직은 임기직도 준사법적 조직(quasi-judicial entities)이나 독립규제위원회 등 일부 외에는 모두 사직하고 새로 맡는 것이 원칙이다.

낳아준 인사권과 같이 떠나야 한다. 전세 살다가 부모가 방을 빼면 자식들도 따라가는 법이다. 주군 떠난 뒤에 임기 운운하며 계속 머무는 것은 어공이 임기란 띠 두르고 늘공 행세하는 것이다.


아래위 정치적·관료적 공감이 사라졌는데 리더십이나 서겠는가? 혹 그것이 조직의 방침 등에 의한 것이라면 그 조직은 이미 공조직이 아니다. 알박기라는 것을 공조직 공인이 할 짓인가? 시기를 놓치면 추하다.
홀연 떠나는 엽관자가 아름답다.

전충렬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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