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은 정치 양극화에 대해 다양한 처방을 내놓고 있다. 미국에서는 의회 특별위원회가 의원들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초당파적 의원 전용공간'을 만들고, 1년에 2번씩 가족을 동반한 초당파적 여행을 가며, 상임위별 초당파 협의회를 구성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권고안을 발표했다.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우리 눈높이로 보면 약간 나이브한 접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내각제 개헌 얘기가 수시로 나오고, 현재도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모두 승자독식의 정치적 대립구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정치 양극화 해법을 놓고 정치적·제도적 차원의 대응도 필요하고 의미가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각성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박준 한국행정연구원 국정데이터조사센터 소장은 정치적 양극화를 이념적 양극화(Ideological Polarization)와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로 나눈다. 미국이나 한국 모두 정치엘리트 차원의 이념적 양극화는 심각해지는 데 비해 일반 국민 차원의 양극화 여부는 불분명하다. 반면 양국 모두 정서적 양극화는 뚜렷하게 심화되고 있다. 중도층 비율이 축소된 증거가 없는데도 정서적 양극화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온 것이다.
나경채 정의당 전 대표는 "상대를 악마화하고 우리를 천사화해서 악마대단결과 천사대연합 외에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된다는 아집과 독단"을 한국 정치의 병폐로 꼽은 바 있다. 우리가 느끼는 정치적 양극화의 실체가 이념적이 아닌 정서적 양극화의 문제이고, 악마 대 천사의 구도로 이익을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독단에 휘둘린 결과임을 아는 것만 해도 중요한 각성이다.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온갖 무질서와 혼란을 발견하게 된다"는 이유로 "철인(哲人)에 의한 통치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정치 체제"라고 역설한 바 있다. 정치인의 선동이나 돈벌이에 눈이 어두운 유튜버의 가짜뉴스를 종교처럼 신봉하는 국민이 민주주의의 주역이 될 수는 없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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