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손성진 칼럼] 3차 대전의 서막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1.30 18:09

수정 2023.01.30 18:09

[손성진 칼럼] 3차 대전의 서막
"인간이나 국가나 살아남으려는 욕구 외에는 모두 허구다." 4세기 전 토머스 홉스의 인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인류의 역사가 곧 전쟁의 역사인 것은 '자기 보존욕'이라는 본능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는 경기순환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싸우다 지치고 한쪽이 지면 다음부터는 평화다. 연합군이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1815년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유럽은 억지 평화를 되찾았다.
평화가 유지된 기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 단 100년이었다.

더 큰 세계대전을 치른 뒤 1945년 세계는 다시 평화를 회복했다. 전승국 미국 중심으로 질서는 재편됐다.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미국은 세계를 지배했다. 뉴욕에는 국제연합(UN) 본부라는 상징적 '세계 청사(廳舍)'가 들어섰다. '맥도날드 햄버거가 있는 나라끼리는 싸우지 않는다.' 이른바 '황금 아치 이론'만 봐도 세계는 미국 중심이었다. 세계화는 반쯤은 미국화였다.

국제경찰권을 가진 미국의 보호 속에서 각국은 자유롭게 교역을 하며 달콤한 햄버거 맛을 만끽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사상적 명분도 충분했다. 사회주의의 실패를 자인하면서 냉전의 한 축을 버티던 소련은 스스로 무너졌다. 일부 극렬한 반대시위 외에는 미국 중심의 세계화는 승승장구했다.

경쟁심으로 무장한 인간의 본성은 일방 독주를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최고라는 '중화(中華) 사상'에 도취된 중국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마오쩌둥 사망 후 2년간의 권력투쟁에서 이긴 덩샤오핑이 3중전회를 통해 개혁과 개방으로 노선을 바꾼 게 1978년이다. 45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미국을 누르고 세계 패권을 차지하고 명실상부한 중화를 달성하고자 돌진하는 중이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건재를 과시한다. 세계화에 균열이 발생했다.

"세계화는 거의 끝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대만 TSMC의 창업주 모리스 창의 말처럼 세계화는 이제 영영 못 볼 수도 있다. 부존자원이 없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엔 몹시 우울한 소식이다. 중동에서 석유를 사들이고, 동남아의 값싼 노동력을 빌려서 똑똑한 머리 하나로 물건을 만들어 팔던 우리에게 강대국들의 목숨 건 혈투와 빗장 걸기는 치명적이다.

너무 비관적이랄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보는 전문가가 있다. 한화그룹에서 임직원에게 필독을 권한 '세계 종말은 시작일 뿐이다'를 쓴 피터 자이한이다. 자이한은 자유무역 체제에서 성장을 구가하던 동아시아가 몰락하고, 자원을 선점한 소수 국가만 살아남는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위기는 운송과 금융, 제조업의 변화 때문에 올 것이라고 했다. 운송만 보면, 탈세계화로 미국의 보호막이 사라져 무역의 핵심수단인 해상운송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종전 80년도 되지 않아 3차 대전은 미·중 경제전쟁으로 서막이 올랐다. 세계화로 포장된 평화는 가고 다시 전쟁 국면에 접어들었다. 총칼과 포탄으로 싸우는 것만 전쟁이 아니다.
안보와 결합한 경제전쟁도 삶을 얼마든지 피폐하게 만들 수 있음을 체득하고 있다. 강자의 전쟁은 약자들까지 진영 가담을 강요한다.
한쪽이 져야 다시 평화가 돌아올진대, 언제 끝날지 짐작조차 어려우니 걱정이 아니 클 수 없다. 이런 정세엔 눈먼 소경이 되어 일말의 위기감도 없이 우물 안에서 으르렁거리는 정치인들이 어찌 한심스럽지 않겠나.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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