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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기다림을 아는 선생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2.01 18:04

수정 2023.02.01 18:04

[fn광장] 기다림을 아는 선생
필자의 직업은 지적질로 먹고사는 점잖은 척하는 음대 교수이다. 성악 레슨을 할 때면 그 짧은 시간에 학생의 잘못된 습관을 지적하여 고치면서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 보려고 발버둥치고, 합창을 지휘할 때면 틀리는 것을 지적하여 고치는, 그야말로 지적질의 전문가이다.

교수 초년 시절, 제자들을 모두 대가(大家)로 만들 것처럼 열심히 지적질을 했고 짧은 시간이지만 주어진 시간을 백분 활용하여 제자 교육에 몰입했다. 성악은 도제수업인 거라고 믿고 "나의 길이 최고이며 무조건 따라 해야 함!" 그리고 "No Tears No Gain!" 눈물 없이는 득음이 없음이라고 제자들을 독려하였다. 눈물 없이는 안된다는 이야기는 가끔 레슨 중에 눈물을 글썽이며 힘들어하는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합창 지휘자로서는 "못하는 합창단은 없다.
다만 못하는 지휘자가 있을 뿐이다"라는 문구를 마음에 두고 최고의 합창을 위한 최고의 연습(리허설)을 준비하며 진행하려고 했다. 지적질은 물론이고 서둘러서 멋진 합창을 만들어 보려는 나의 자존심과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상처는 단원이 아니라 지휘자인 나의 몫이었다. 리허설 후에는 찾아오는 극도의 피곤함을 감당 못할 정도였으니까. 첫 술에 배부르랴만 늘 처음 연습 때부터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보려는 '빨리빨리'가 내 몸속에 잠재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음악을 만드는 즐거움보다는 기술적인 면에 더 치중하다 보니 심신이 피곤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경험이 쌓이고 노하우를 터득하면서부터는 부드럽게 그리고 표 안 나게 지적질을 한다. 그러나 빠른 시간 내에 끝을 보려는 나의 초조함은 변함이 없다.

제자 중에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제이미(Jaimie)! 제이미는 고등학교에서 줄곧 일등이었고, 대학에 진학하여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하는 우수한 음악 전공생이었다.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잘 따라올 뿐 아니라 연습도 엄청 열심히 하는 몇 안되는 애제자였다. 그만큼 기대도 컸다. 어느 날 레슨 시간에 상담을 요청하여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제이미는 "지금껏 공부하면 다 잘 되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았는데 성악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아무래도 전공을 음악 아닌 다른 과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본인은 교사가 하고 싶은데 구태여 이렇게 힘든 성악을 하지 말고 수학과로 바꿔서 마음 편히 대학 시절을 보내고 싶다는 결론이었다. 순간 지적질의 대가인 내 마음에 비수가 꽂히는 것 같은, 먹먹함이 밀려왔다. 일단은 "무엇을 하든지 제이미 마음에서 원하는 걸 찾아서 하라"고 짤막하게 끝맺음을 하고는 도망치듯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그날 밤은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지만, 그동안 제자들의 마음을 못 헤아린 지적질 선생의 후회는 멈추질 않았다. 레슨하는 한 시간 동안 어떻게 선생이 고치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고칠 수 있을까마는 지적질 선생은 그렇게 하라고 강요 아닌 강요로 그들의 마음을 힘들게 했구나. 그 일을 계기로 필자는 제자들을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제이미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성악을 포기하지 않았고, 졸업하여 기다림을 아는 훌륭한 교사로 위스콘신주에서 일하고 있다.

박종원 서울시합창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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