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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추당한 '中 정찰풍선', 부품에 적힌 영어.. 누가 도왔나?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2.11 05:00

수정 2023.02.11 05:00

美 "40개국 정찰, 배후는 중국군" 지목
9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퀀티코의 미 연방수사국(FBI) 관계자들이 추락한 중국 '정찰 풍선'의 잔해를 검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퀀티코의 미 연방수사국(FBI) 관계자들이 추락한 중국 '정찰 풍선'의 잔해를 검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미국 정부가 이달 격추한 중국의 '정찰 풍선'을 본격적으로 분석하면서 풍선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문제의 풍선은 군과 연계된 중국 기업들이 서방 부품까지 동원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중국군은 내몽골 자치구에서 풍선을 띄워 약 40개국을 감시한 것으로 보인다.

잔해 분석 시작, 서방 부품 나와

미 공군은 지난 4일(현지시간) 미 동부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연안에서 지름 약 61m의 정찰 풍선을 격추했다. 미 U-2 정찰기가 촬영한 고해상도 사진에 의하면 풍선 아래에는 통신용 안테나와 태양열 패널, 관측 장비들이 매달려 있었으며 격추된 잔해는 대서양 수면 14m 아래에 가라앉았다.


미 해군은 격추 직후 인양 작업을 시작해 5일에는 풍선 잔해 일부를 확보했다.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 연방수사국(FBI) 관계자는 9일 비공개 브리핑에서 풍선 잔해 일부를 미 버지니아주 퀀티코의 연구소로 옮겼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풍선에 쓰인 천과 전선, 소량의 전자부품을 확보했다며 다만 "정찰풍선을 보낸 의도와 풍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판단하기에는 매우 이르다"라고 말했다. FBI는 관측 장비가 포함된 하부 구조물의 상당 부분을 아직 건지지 못했으며 파도가 높아 수거 작업을 일시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풍선에 사용된 부품의 원산지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NN 등 미 언론들은 관계자를 인용해 미 정부가 9일 의회에서 기밀 브리핑을 진행했다며 풍선의 부품 중에 영어가 적힌 서방 물건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해당 부품의 구체적인 역할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첨단 장비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미 당국이 영어를 풍선을 격추하기 전에 발견했는지, 수거한 잔해에서 발견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미 공화당의 댄 설리번 상원의원(알래스카주)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 회사들이 중국의 정찰용 풍선 제작을 돕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달 미국에서 격추된 중국의 '정찰 풍선' 출발 추정 지점> *자료:월스트리트저널(WSJ)
<이달 미국에서 격추된 중국의 '정찰 풍선' 출발 추정 지점> *자료:월스트리트저널(WSJ)
中 기업들이 제작...내몽골에서 띄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보도에서 중국의 고고도 풍선 개발 역사가 오래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과거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의 관련 자료를 참고해 고고도 풍선 개발에 나섰다.

연구는 1976년까지 이어진 문화대혁명으로 늦어졌으나 중국의 국립연구소인 중국과학원은 1983년에는 '하피'라는 이름의 고고도 풍선을 띄우는 데 성공했다.

이후 과학원은 2017년에 중국 네이멍구(내몽골) 자치구 우란차부시의 쓰쯔왕기에 풍선 발사대를 설치했다. 현재 중국은 초원이 넓은 네이멍구에서 우주선 발사 및 착륙 실험을 자주 진행하고 있다.

WSJ는 미 위성 이미지 기업인 플래닛랩스와 미 미들버리국제학연구소 자료를 인용해 중국의 풍선이 쓰쯔왕기 발사대에서 출발했다고 추정했다.

중국은 이달 격추된 풍선이 민간 기업의 기상관측장비라고 주장했으나 풍선의 소유주나 제작사는 밝히지 않았다. 이에 WSJ는 풍선을 만들 만한 중국 기업들을 언급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은 중국 허난성에 위치한 주저우 고무·디자인 연구소다. 주저우는 중국 내 풍선 시장의 80%, 세계 시장의 20%를 점유한 기업으로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화학기업 호화과기의 자회다. WSJ는 중국 국영 화학기업인 중국중화그룹(시노켐)이 호화과기를 통해 사실상 주저우 연구소를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주저우는 중국군 총참모부에 제품을 공급한다고 밝혔으며 호화과기 역시 증시 보고서에 군사 기술 개발을 위해 중국 정부의 돈을 받았다고 적었다.

중국의 국영 항공기 제조사인 중국항공공업(AVIC)도 풍선을 생산한다. 앞서 미 정부는 AVIC가 중국군에 제품을 공급한다고 보고 제재를 가했다. AVIC와 주저우 연구소 모두 풍선 제작과 관련된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몬태나주 빌링스에서 포착된 중국의 '정찰 풍선'. /로이터뉴스1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몬태나주 빌링스에서 포착된 중국의 '정찰 풍선'. /로이터뉴스1
정찰 풍선, 비용 싸고 인명 피해 없어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지난 5일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에 추락한 풍선이 중국군 전략지원부대의 장비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부대는 전자전과 우주전, 사이버전을 담당하는 부대로 네이멍구의 위성 발사 기지를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는 인공위성으로도 정찰을 할 수 있지만 기상 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고 특정 지역을 감시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항상 감시가 필요한 지역에는 정찰 풍선을 투입한다고 설명했다. 정찰 풍선은 저렴한데다 격추되어도 인명 피해가 없어 위성정찰을 보완하는 역할로 쓰인다.

미 국무부의 웬디 셔먼 부장관은 6일 약 40개국 대사관 소속의 외교관 150여명을 초청해 중국의 정찰 풍선 관련 정보를 공개했다. 중국 베이징의 미 대사관 역시 6~7일에 현지 외교관들을 불러 모아 풍선에 대한 내용을 브리핑했다.

국무부 관계자는 9일 성명을 내고 중국이 5개 대륙의 40개국 이상에 고고도 정찰 풍선을 보냈고 배후에 중국군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풍선 제조사가 중국군과 직접 관련이 있다며 제조사를 비롯해 풍선의 미 영공 침입을 지원한 기관에 대한 제재를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같은날 미 하원은 4일 격추된 정찰 풍선이 "미국의 주권을 침해했다"며 이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찬성 419표, 반대 0표로 통과시켰다.

이날 셔먼은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미국은 중국이 중국군을 현대화시키기 위해 미국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계속 차단하겠다"고 강조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미 중국행 반도체 기술 차단에 나선 미국이 군사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중국 첨단 기술에 미국 자본 투자를 막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전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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