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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부활과 감응의 기적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2.14 18:14

수정 2023.02.14 18:14

[fn광장] 부활과 감응의 기적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새해 벽두 미국의 '뉴스앤드월드리포트'지가 한국의 종합국력을 일본과 프랑스를 상회한 세계 6위로 평가했다. 세계는 대한민국을 세계 최상급 국가로 꼽았다. 그러나 정작 국내정치는 나라가 금방이라도 두 동강 나고 해체될 것 같은 아비규환이다.

통상 1945년 이후의 현대사를 건국, 산업화, 민주화의 단계적 이행으로 규정한다. 이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고, 단계마다 존망의 위기를 헤쳐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이 단계론적 이행으로 단순화될 수 없는 실존과 역사의 드라마를 만들어 온 것이 아닌가.

대다수 우리 국민 그리고 세계는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의 피와 땀이 어린 삶의 체험으로 만든 기적이 이뿐이랴! 얼마 전 재야 평론가 선배와 이 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대었다. 한국 현대사를 사회과학적 도식을 넘어 한국인의 삶의 체험을 함축한 '기적의 역사'를 상징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서로 공감했다.

1945년부터 1960년까지 우리는 '불길의 기적'을 일으켰다. 일제 식민지가 현대 민주공화국이 되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전쟁의 불길을 이겨냈고, 잿더미 폐허를 딛고 주권적 입헌정부와 자유 국민을 만들었다. 한미동맹을 맺어 국제정치적 격랑을 막아냈고, 자유·공화 청년의 혁명적 희생으로 민주 정신이 응결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 의거에 희생된 청년 학생의 주검을 목도한 후 "청년의 기백이 살아있는 한 대한민국은 멸망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러고는 하야(下野)하여 홀연히 하와이로 떠났다.

1961년부터 1992년까지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지도자와 국민이 한마음으로 떨쳐 일어나 오천년 가난을 벗어났다. 산업화를 이루고 시장경제체제를 구축했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풍요롭고 민주적인 나라로 만드는 데 반석이 되었다. 이 시기에 택한 중화학공업 육성, 자주국방 전략은 미소 냉전 격화와 미중 화해, 북한 위협으로 인한 안보위기, 석유파동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뚫고 나가게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자신이 구축한 국가주도 경제체제를 시장화 체제로 전환했다. 시해의 비극적 운명을 맞았지만 그것은 '신의 한 수'였다. '한강의 기적'은 전두환 정부의 안정화 정책과 고도성장, 노태우 정부의 민주화와 탈냉전 이행 질서까지 이어졌다.

1993년부터 2021년까지의 우리는 냉전 종식으로부터 발진(發進)한 '세계화'의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이 시기 대한민국은 물질적 차원의 선진국으로 변모했지만 정신과 선한 습속은 급속히 타락했다. 따라서 이 시기는 '반쪽의 기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여야 간의 민주적 정부교체,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국가로의 진입에도 불구하고 근본주의적 이념대립, 물질과 지위 추구에 혈안이 되고 친북·종중의 망상까지 겹쳐 정신은 피폐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이 '반쪽의 기적'마저 산산조각 낼 뻔했다.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어떤 시대적 과제를 부여받았는가. 그것은 '부활과 감응(resurrection and resonance)의 기적'을 만드는 것이다.
현대사의 기적을 이끈 선한 습속과 창조적 정신을 부활시켜 핵심 문명국가로서 인류보편에 감응하는 가치와 문명의 기적을 일궈야 할 것이다.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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