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당신의 노후는 안녕하십니까?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2.15 18:20

수정 2023.02.15 18:20

[노주석 칼럼] 당신의 노후는 안녕하십니까?
'코끼리 쉽게 옮기기'(김영순, 후마니타스)는 정권이 바뀌어도 뒤집어지지 않는 단단하고, 강력한 영국 연금개혁 합의 과정을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이를 가능케 한 조건 중 하나로 대중의 이해를 꼽았다. '코끼리 옮기기'(에드 베이커, 이상미디어)는 재테크 서적이다. 코끼리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는 고민덩어리의 상징물이다.

연금과 코끼리는 닮은꼴이다. "둘 다 덩치가 크고, 회색이며, 사람들한테 아주 인기가 있는 반면 비둔해서 움직이기 힘들다"라고 어느 독일의 연금 학자는 비교했다.
노동개혁, 교육개혁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인 연금개혁은 코끼리를 어떻게 꺼내서, 옮길지에 달렸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연금개혁이 정부의 모수개혁과 국회의 구조개혁 두 갈래로 갈라질 조짐이다. '보험료는 얼마를 내고 연금은 얼마를 받을 것이냐'를 정하는 게 모수개혁이라면, 공적연금 전반의 개혁안을 짜는 게 구조개혁이다.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의 중요도를 가리긴 어렵다. 닭이냐 알이냐 따지기다.

문제는 모수개혁을 향해 나아가던 국회 연금개혁 특위의 논의가 구조개혁 쪽으로 급선회했다는 점이다. 보험료는 올리고, 연금액은 줄이는 인기 없는 개혁이 불가피해지자 더 늦기 전에 손을 뗀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연금개혁 논의는 정부가 추진하는 모수개혁과 국회의 구조개혁 두 바퀴로 굴러가게 생겼다. 정부는 오는 10월 국민연금 종합운용계획을 내놓아야 하고, 국회는 4대 직역연금(공무원, 군인, 사학, 별정우체국)과 국민연금의 통합에 매달릴 공산이 크다.

속도전을 펼치는 프랑스와는 딴판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국민 저항과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재집권 5개월 만에 연금개혁안을 다시 꺼냈다. 마크롱표 개혁안의 핵심은 정년퇴직 연령을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올리고, 연금 100% 수령을 위한 근속연수를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것이다. 포퓰리즘엔 휘둘리지 않겠다는 것이 마크롱의 의지다.

우리 국민연금의 고갈 시점은 2055년이다. 5년 전 추계 때보다 2년 앞당겨졌다. 표를 의식한 집권여당이 모수개혁에서 물러난 것은 사실상 포기 선언이라고 읽힐 소지가 다분하다.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뒤 추진한다는 건 헛소리다. 국민연금 개혁은 5년 주기의 재정추계가 나올 때마다 온 나라를 달궜다. 2007년 노무현 정부의 개혁 이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까지 단 한 발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은 기금 소진 시점이 2060년에서 2057년으로 앞당겨질 것이란 재정추계를 2018년에 보고받았다. 그러나 보험료율을 13%까지 인상하는 방안이 제시되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라며 재검토를 지시했다. 좌고우면하는 사이 배는 떠났다. 골든타임을 놓쳤다.

그때와 다를 바 없다. 덩치에 압도당하면 코끼리를 옮길 수 없는 법이다. 윤 대통령은 마크롱처럼 눈치 보지 말고 내질러야 한다.
개혁 앞엔 아군도 적군도 없다. 민심의 척도인 중도층과 미래가 불안한 MZ세대의 지지를 얻으려면 개혁의 활시위를 '바로 지금' 과감하게 당겨야 한다.
지지율을 60% 선까지 끌어올릴 유일한 동력원이다. 개혁 과정에서 인기는 바닥을 기더라도 끝내 연금개혁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으려면.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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