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fn광장

[차관 칼럼] ‘일제 흔적 지우기’ 시효는 없다

김원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2.26 19:47

수정 2023.02.26 19:47

[차관 칼럼] ‘일제 흔적 지우기’ 시효는 없다
요시다 지헤이(吉田治平). 나리히라 요시코(成平好子).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거주하면서 토지를 소유했던 재조선(在朝鮮) 일본인이다. 그 이름이 아직도 우리 토지대장에 남아 있다. 올해로 104주년을 맞는 삼일절.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건만, 일제강점기가 남긴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는 현실. 어떻게 된 일일까.

광복 이후 일본인 소유 토지·주택 등의 재산은 미군정하에서 적국의 재산인 적산(敵産·Enemy Property)이라는 이름하에 몰수됐다. 이렇게 미군정 산하로 귀속된 재산이 귀속재산(歸屬財産)이며, 1948년 한미협정에 따라 우리 정부로 다시 양도됐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귀속재산의 가치는 국내재산의 80%가량이고, 국민총생산(GNP)의 46.3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막대한 귀속재산은 1949년 '귀속재산처리법'에 따라 1958년까지 민간에 차례차례 불하(매각)된다.
하지만 일부 귀속재산은 이러한 처리 과정에서 관리 부실, 전쟁 중 공적장부 소실 및 불법 취득 등으로 공적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귀속재산을 찾아서 국유화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1985년부터 본격화됐다. 2006년까지 3차례에 걸쳐 대대적 정리작업을 펼쳤으나, 일제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진 못했다. 이런 가운데 조달청은 2012년부터 전담부서를 꾸려 귀속재산 국유화를 위한 조사업무를 시작했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2006~2010)에서 작성된 26만명의 '재조선 일본인 명단'과 지적공부 소유자를 일일이 대조했다. 여기에 일본인 재산으로 의심되는 것으로 신고된 재산 등을 더해 총 5만2000여필지를 귀속 의심재산으로 선별하여 심층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국유화를 위한 조사 과정은 순탄치 않고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해방 이후 70여년이 경과하면서 관련서류 소실, 관련자 사망 등 사실관계 확인의 어려움 때문이다. 고문서(古文書)나 다름없는 일제강점기 서류를 확인하고 토지소유 변천 과정을 하나하나 복원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공적장부마저 온전치 못하면 국세청이나 국가기록원 자료까지 뒤져 빠진 퍼즐을 완성해야 한다. 서류조사에 이어 현장조사를 나가면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기도 한다. 실제 공적장부와 현장이 일치하지 않거나 무단점유자와 실랑이하기도 한다.

10여년에 걸친 조달청의 귀속재산 국유화 작업도 이제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귀속의심재산 5만2000여건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국유화 대상으로 7510필지를 가려냈고, 이 중 6779건에 대해서는 국유화 조치를 완료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9배인 540만㎡를 되찾는 결실을 거뒀다. 자산 가치로는 공시지가 기준 1596억원에 이른다.

귀속재산 국유화 작업과 함께 조달청을 비롯해 총리실·국토부와 지자체 합동으로, '재조선 일본인 명단'엔 없지만 광복 이전에 토지대장·등기부 등 공적장부에 남아 있는 일본식 이름 지우기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때 확인되는 귀속재산은 곧바로 국유화 절차를 밟게 된다.

과거를 되돌아볼 수 없는 자는 과거를 되풀이하는 운명을 가진다는 말이 있다.
올바른 역사를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우리 세대의 마땅한 책무다. 단 한 뼘의 땅이라도 끝까지 추적해 일제 흔적을 없애겠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데 시효는 있을 수 없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종욱 조달청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