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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주의 아트살롱] '천재'들이 '의대'만 쫓는 슬픈 한국사회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3.02 05:00

수정 2023.03.02 05:00

[파이낸셜뉴스]
2022 의대 진학률 상위권 고등학교 톱30 /아파트투미 제공
2022 의대 진학률 상위권 고등학교 톱30 /아파트투미 제공
2019년 9월 일론 머스크와 마윈이 상하이 인공지능 컨퍼런스에서 토론을 나눴다. 마윈 역시 이전까지 알리바바를 창업한 전설적인 기업가로 존경을 받고 청년들의 멘토 역할도 했다. 하지만 해당 토론 이후 일론은 '천재 혁신가'로, 마윈은 '우연히 성공한 사업가' 이미지를 얻는데 그쳤다. 토론의 주제가 인공지능(AI), 뉴럴 링크, 화성 탐사 등 마윈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도 박사 학위를 가진 교수님과 중학생 정도의 토론을 보는 것 같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특이점을 넘어선 AI의 위험성에 대한 주제에 마윈은 "자기는 컴퓨터(AI)와는 체스와 바둑을 두지 않는다"거나 "AI는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등의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놨다.
출처=유튜버 '뉴욕에사는사람들'
출처=유튜버 '뉴욕에사는사람들'
내연 기관차 시대를 끝내고 전기차 시대를 열고, 인간의 뇌와 AI를 결합해 정보를 전송하고, 스타링크를 통해 전세계를 연결하고, 화성을 개발해 지구를 벗어나 우주 시대를 연다는 생각이 모두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


천재 한 명이 과거에 수만명, 수십만명의 몫을 했다면 현재는 그 이상의 몫도 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과연 한국에서 이러한 천재가 나올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저보면 적어도 2023년 현재는 매우 부정적이다. 아니, 지금의 한국에서는 마윈과 같은 사업가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기초과학보다 '보다 높은 수입'이 우선시되는 현실

최근 우연히 '아파트투미'가 만든 하나의 통계표를 봤다. 제목은 '2022 의대 진학률 상위권 고등학교 TOP 30'였다. 1위 휘문고·서울 강남구 대치동·151명, 2위 상산고·전북 전주시 완산구·126명, 3위 세화고·서울 서초구 반포동·96명. 이런 식으로 고등학교와 주소, 의대에 진학한 학생의 숫자가 나와 있는 표였다. 한국의 천재들(혹은 될 수 있었던 천재들)은 모두 의대에 간다.

수년전 봤던 한 칼럼에서 1%의 천재들은 물리학, 수학 등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의사라는 직업은 지능 상위 5%~10% 정도 되는 사람이 택해도 충분하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수백명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도 소중하지만, 위대한 과학적 발견과 성취는 전 인류에게 그 혜택을 나눠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한국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는 '보다 높은 수입'에 초점이 맞춰져 정신과, 피부과 선호 현상이 지나친 상황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10여 년전 한 대학의 공개 강연에서 도서관에서 토익 문제집을 풀고 있는 대학생들을 보면 '토끼 무리'가 생각난다고 했다. 수십 마리의 토끼 무리에게 사자가 달려오는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기 보다 무리 속에 파묻혀 떨고 있는 토끼 무리 말이다. 대학생들 입장에서야 불안한 현실,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 하에서 택할 수 있는 어쩌면 최선의 선택이 토익 문제를 열심히 풀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일 수 있다. 또, 한국의 천재들이 모두 의사가 되기를 원하는 것도 인풋 대비 아웃풋(수입)이 가장 뛰어난 직업을 택하는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 합리적 선택을 하는 개인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사회의 보상 시스템일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일부 천재들은 의사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천재들은 기꺼이 나사에 들어가고, 테슬라에도 들어간다. 그만큼의 보상이 뒷받침 되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는 교육, 혁신을 만든다

지난 2월 27일 28일 양일간 서울 콘래드 호텔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제1회 미래 문화예술교육 포럼'이 열렸다. 급변하는 대전환기의 시대 문화예술 교육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조명하는 토론회였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장덕진 서울대 사화학과 교수겸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은 한국에서 어쩌면 천재를 발굴하고 교육할 수 있는 하나의 힌트를 던져줬다.

"서울대에 도서관이 9곳, 책이 520만권 있다. 본관인 중앙도서관과 분관인 사회과학 도서관, 법학 도서관 등등이다. 학생들의 대출 패턴을 보면 음대생은 음대도서관에서, 생명공학과 학생은 공학도서관에서만 책을 빌린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최첨단 분야의 훌륭한 학자는 많이 나오지만 노벨상은 안 나오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혁신이나 커다란 부가가치는 대게 서로 다른 분야들 사이에 놓여 있다. 서울대 도서관은 지난 8년간 학생들의 250만권의 대출 이력을 빅데이터 분석해 분야를 넘나들며 독서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분석할 계획이다. 향후 3~4달 후에 그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머스크 이전에 아이폰을 만들며 혁신의 아이이콘이 된 스티브 잡스는 "내 인생의 전환점은 파이포그래피 수업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공학과는 전혀 다른 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디자인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명상을 통해 분야를 넘나드는 사유를 확장해 혁신을 이룩한 것이다.

어쩌면 문화와 예술 교육의 역할도 각각의 분야들 사이에 끊어진 다리를 연결해 섬이 아닌 세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 체계 하에서 가장 먼저 없어지는 수업이 체육과 음악과 같은 수업이라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고영선, 신영준이 쓴 '완벽한 공부법'에 보면 '운동이 최고의 공부법'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캘리포니아대 칼 코트만 교수는 우리가 운동할 때 신경세포에서 생성되는 단백질인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가 증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BDNF는 새로운 신경세포를 생성하고 기존 신경세포를 보호하며 뇌 신경인 시냅스의 연결을 촉진한다. 쉽게 말해 운동하면 똑똑이 세포가 증가한다.

[이환주의 아트살롱] '천재'들이 '의대'만 쫓는 슬픈 한국사회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그의 자전적 에세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83페이지에 비슷한 내용을 적었다.

아울러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뇌 내에서 태어나는 해마 뉴련의 수는 유산소운동을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유산소운동이란 수영이나 조깅 같은 장시간에 걸친 적당한 운동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새롭게 태어난 뉴런도 그대로 두면 28시간 뒤에는 별 쓸모도 없이 소멸해버립니다.
정말 아깝지요. 하지만 막 태어난 뉴런에 지적인 자극을 주면 그게 활성화해서 뇌 내의 네트워크와 이어져 신호 전달 커뮤니티의 유기적인 일부가 됩니다. 그래서 학습과 기억 능력이 높아집니다.


어쩌면 적절한 체육과 문화 예술 교육은 바로 표가 나지는 않지만 의사가 되는 것보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더 뛰어난 일일지도 모른다. 2023년 대한민국의 기성세대가 듣기 좋은 말로 바꿔 말하면 "체육 수업, 문화 예술 수업을 더 많이 하면 아이가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부자가 되는데 더 효과적일지도 모릅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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