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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카렐 차페크, 챗GPT에 소환되다

뉴스1

입력 2023.03.02 12:00

수정 2023.03.02 14:46

1939년 뉴욕 브로드웨이 마리오네트극장에 올려진 연극 'RUR'의 포스터. /사진=위키피디아
1939년 뉴욕 브로드웨이 마리오네트극장에 올려진 연극 'RUR'의 포스터. /사진=위키피디아


카렐 차페크. /사진=위키피디아
카렐 차페크. /사진=위키피디아


1921년 1월에 초연된 연극 'RUR'의 한 장면. 오른쪽에 로봇 3명이 보인다. /사진=위키피디아
1921년 1월에 초연된 연극 'RUR'의 한 장면. 오른쪽에 로봇 3명이 보인다. /사진=위키피디아


카렐 차페크의 대표작 '도롱뇽과의 전쟁'. /사진=열린책들.
카렐 차페크의 대표작 '도롱뇽과의 전쟁'. /사진=열린책들.


뷔셰흐라트 국립묘지의 카렐 차페크 묘비. /사진=위키피디아
뷔셰흐라트 국립묘지의 카렐 차페크 묘비. /사진=위키피디아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어딜 가나 챗GPT가 화제다. 챗GPT 쓰나미가 세상을 덮친 것 같다. 문필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자신의 챗GPT 사용 경험을 글로 풀어나간다. 가볍게 시작한 대화는 종종 심각하게 끝나기도 한다.

"이렇게 가다 인공지능 로봇이 영화에서처럼 사람을 공격하는 세상이 진짜 오는 거 아냐?"

로봇(Robot). 사전적 정의는 '어떤 작업이나 조작을 자동으로 하는 기계장치'다.

지금까지 세계의 공학도들은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 개발을 위해 시간과 자금을 쏟아부었다. 우리는 그 로봇의 발전상을 하나씩 접하며 밝은 미래를 상상해왔다.

그런데 챗GPT를 접하고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만일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로봇과 결합하는 날이 온다면?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만일 나쁜 생각을 하기라도 한다면? 영화 '아이, 로봇'(I, Robot)이 공연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챗GPT는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이다. '수다를 떤다'는 채터(chatter)와 로봇의 합성어다. 로봇을 생각하던 중 불현듯 체코 소설가 카렐 차페크(Karel Čapek 1890~1938)가 떠올랐다. 극작가·비평가·저널리스트인 카렐 차페크는 '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 후보군에 올랐던 작가다. 문학 분야에서 프란츠 카프카, 바츨라프 하벨, 밀란 쿤데라, 카렐 차페크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탈락한 사람이 차페크다.

카렐 차페크는 공상과학(SF)소설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가 1920년에 쓴 희곡 'RUR'(Russum's Universal Robot)에서 처음으로 '로봇'(robot)이 등장한다.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은 그의 형이자 유명 화가인 요세프 차페크. 그 로봇이라는 단어에 활자의 옷을 입혀 세상에 내보낸 사람이 동생 카렐이다. 그래서 카렐은 '로봇의 아버지'로 불린다.

카렐 차페크는 보헤미아 지방 '말레 스바토노비체'에서 생을 받았다. 의사인 아버지는 매우 활동적인 사람으로 지역 박물관의 후원자이면서 여러 가지 직함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남편과는 달리 시골 생활을 좋아하지 않았다.

천재들이 대개 그러하듯 차페크의 학창 시절은 곡절이 많았다. 고등학생 시절 불법 동아리 활동에 참가해 퇴학을 당한다. 그 동아리는 '비(非)살인 아나키스트 협회'였다. 프라하로 가서 1909년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질풍노도의 10대 시절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큐비즘(입체파)이었다.

카를대학에 진학한 그는 철학과 미학을 공부한다. 대학 시절 그는 미술비평과 단편소설을 썼고, 잠깐씩 파리와 베를린에 머물기도 했다. 차페크와 같은 시공간에 있었던 사람이 카프카다. 차페크는 카프카의 대학 7년 후배지만 작가로서 카프카보다 훨씬 앞서 나갔다.

대학 시절 1차세계대전이 터진다. 오스트리아제국의 식민지였던 보헤미아는 제정러시아와 전쟁을 벌인다. 그는 군대에 지원했으나 척추 분리증으로 면제 판정을 받는다. 병역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콤플렉스는 평생을 따라다녔다.

그는 전쟁을 후방 프라하에서 지켜보았다. 1917년 프라하에서 신문기자가 되었고, 저널리스트로서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해 깊이 천착하게 된다. 보헤미아는 1차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오스트리아제국에서 독립해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으로 세계사에 등장한다.

일련의 과정을 취재·보도하면서 그는 신생국 정치 지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중 한 사람이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초대 대통령이 되는 토마쉬 마사릭이다. 마사릭 대통령은 그가 만든 지성 모임 '금요일의 남자'의 고정 멤버였다.

'로섬의 유니버설 로봇'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은 1920년에 발표한 희곡 'RUR'이다. 1922년 영어로 번역되어, 런던의 연극무대에도 올려졌다.

연안의 작은 섬에 세워진 로봇 공장이 'RUR'이다. Russum's Universal Robot. 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로봇들은 육지로 팔려나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한다. 대통령의 딸이 로봇을 개발하는 박사와 의기투합해 로봇에게 영혼을 불어넣자는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한편 인간의 일상에 침투한 로봇들은 자신들이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반란을 일으킨다. 'RUR'은 이렇게 두 갈래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어느 날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면서 폭발한다.

'RUR'은 1921년 1월 시골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배우들이 로봇 의상을 입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연기했다. 초연 직후 연극은 입소문을 타고 큰 성공을 거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RUR'이 1차세계대전 이후에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는 종전 이후 무서운 속도로 전개되는 테크놀로지의 진화를 목도하면서 로봇 세상의 출현을 내다보았다. 지금으로부터 꼭 103년 전!

그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소설·비소설 구분 없이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소설은 매혹적이다. 대표작 '도롱뇽과의 전쟁'을 비롯해 '평범한 인생' '정원 가꾸는 사람의 열두달' '개를 키웠다 그리고 고양이도'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등.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사람도 그의 소설을 한번 잡으며 걷잡을 수 없이 빨려든다.

히틀러 집권 이후에는 국가사회주의와 파시스트 독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글을 썼다. 1930년대 중반 그는 보헤미아에서 대표적인 반(反)파시스트 언론인이 되었다. 그는 약소국 체코슬로바키아가 나치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으려면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과의 연합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1938년 뮌헨협정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가 히틀러의 손을 들어주자 그는 절망했다. 여러 차례 망명을 권유받았지만 그는 조국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지 않기로 한다. 나치는 차페크를 '두 번째 공공의 적'이라고 공표했다.

골초였던 그는 뮌헨협정이 체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폐렴으로 사망한다. 1938년 12월25일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나치가 그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독일이 프라하를 점령한 직후 게슈타포는 차페크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게슈타포는 대신 혼자 된 부인 올가를 체포했다. 형 요세프 차페크는 1939년 9월에 게슈타포에 체포되었고, 1945년 강제수용소에서 생애를 마쳤다.


그는 생전에 7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카렐 차페크와 부인 올가는 블타바강에 내려다보이는 뷔세흐라트 국립묘지에 영면 중이다.
뷔세흐라트 국립묘지는 드보르작, 스메타나, 무하 등이 잠든 보헤미안의 성지.

다시 뷔세흐라트 국립묘지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꼭 카렐 차페크의 묘에 들러 꽃 한 송이를 바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