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여학교에만 연쇄 독가스 테러...이란 10대 여학생 700명 중독 당했다

문영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3.03 09:17

수정 2023.03.03 09:17

지난해 11월말부터 이란 주요 도시 여학교에서 독가스에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1일 현재 사망자는 없지만 700여명이 크고 작은 증상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독된 여학생이 병원에 입원한 모습. 출처=트위터
지난해 11월말부터 이란 주요 도시 여학교에서 독가스에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1일 현재 사망자는 없지만 700여명이 크고 작은 증상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독된 여학생이 병원에 입원한 모습. 출처=트위터

[파이낸셜뉴스] "딸 살리고 싶으면 제발 학교에 보내지 마세요." 이란의 한 어머니가 병원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는 딸을 옆에 두고 호소했다. 그의 딸은 '묻지마 독가스 공격'에 팔과 다리에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마비 상태로 석달째 누워 있다.


지난해 9월 '히잡 의문사'를 계기로 이란 전역으로 확산된 반정부 시위가 6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여학생들을 노린 '독가스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여학교를 폐쇄하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테러의 배후라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3일 영국 BBC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 주요 도시에선 지난해 11월 말부터 3개월간 30여개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보이는 '독성 가스' 공격이 발생해 약 700여명의 10대 여학생이 중독됐다. 아직 사망자 수는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피해 여학생들은 호흡기 질환, 메스꺼움, 현기증, 피로감, 마비 등의 크고 작은 증상을 겪고 있다.

AP통신은 "일부에선 여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를 폐쇄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면서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사상 처음으로 여학생들이 교육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독살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테러 공격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여성에 대한 교육을 반대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이번 가스 테러가 히잡 의문사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에 대한 보복성 공격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이 은밀한 맞대응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다. 이란인권센터(CHRI)의 하디 가에미 국장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회 전반에 퍼진 근본주의 사고가 수면으로 올라온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여학생들을 노린 독가스 테러가 처음 발생한 것은 지난해 11월 30일 수도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25㎞가량 떨어진 이슬람 시아파 성지인 콤에서다. 이곳은 보수 성향 성직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이란의 주요 종교학교들이 있는 대표적인 종교 도시다. 이곳의 한 음악학교에서 독성 가스 공격이 발생했고, 18명이 병원으로 실려 갔다. 피해 학생들은 병원 치료 이후에도 수일간 어지럼증과 팔다리 마비 증세를 호소했다고 한다. 일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공포에 떨며 학교 수업의 온라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이란 테헤란주 남부 도시 파르디스의 하이얌 여학교에서 독성 가스를 마신 학생들이 학교 건물 밖으로 나와 쓰러지고 있다. 출처=트위터
지난달 28일 이란 테헤란주 남부 도시 파르디스의 하이얌 여학교에서 독성 가스를 마신 학생들이 학교 건물 밖으로 나와 쓰러지고 있다. 출처=트위터


지난달에는 보루제르드의 최소 4개 학교에서 194명의 여학생이 중독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 일어난 독성 가스 사건은 지난 28일 테헤란 인근 파르디스의 하이얌 여학교에서 벌어졌고, 최소 37명이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SNS에는 수많은 여학생이 하이얌 여학교 건물에서 밖으로 뛰쳐나와 땅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피해 여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염소 등 세정제 냄새가 난다고 설명했다. 콤의 한 학교에 다니는 엘라헤 카리미는 "복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썩은 생선, 계란 냄새 같은 악취가 강하게 났다"며 "눈이 붉게 충혈됐고 구역질이 나서 보건실로 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초 경찰 당국은 독성 가스 중독을 고의성이 있는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많은 학교가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겨울철에 천연가스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단순한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로 추정했다. 하지만 가스 테러가 여러 도시로 확산되자 사법 당국은 의도적인 공격 가능성을 인정하며 수사에 착수했다.

유네스 파나히 보건부 차관은 "일부 세력들이 전국의 학교, 그중에서도 여학교를 폐쇄하려 한 것으로 파악됐다"라며 "여학생들의 교육을 막으려는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은 심각한 위험"이라면서 "배후에 누가 있는지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학생만 공격하는 이유와 배후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지난해 발생한 '히잡 시위'에 대한 보복성 공격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BBC가 전했다. 이란 주요 도시에서는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체포돼 경찰서에서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을 계기로 광범위한 히잡 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많은 여학생이 히잡을 벗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며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공격의 배후로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 등과 같은 이란 내 극단주의 강경 보수파 소행 가능성이 제기된다. 2021년 재집권한 탈레반은 여학생들의 중고교, 대학 교육을 전면 금지했다.


또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산하 바시즈 민병대원들이 화학 가스가 담긴 통을 여학교에 던졌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현지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전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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