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성장보다 생존집착 日기업... 증시 괴롭히는 아킬레스건 [글로벌 리포트]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3.05 18:24

수정 2023.03.05 18:24

일본 개미들, 2년 연속 순매수… 39년 만에 활기 도는데
버블붕괴 쓴 맛 본 중장년층 매도세 끝물
젊은층 투자 유입으로 주식시장 세대교체
"올 연말 니케이 3만 도달" 장밋빛 전망 속
소극적인 기업투자는 꾸준히 한계로 지적
성장보다 생존집착 日기업... 증시 괴롭히는 아킬레스건 [글로벌 리포트]

니케이(Nikkei)평균주가는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사가 관리·운영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주가지수. 도쿄증권거래소 1부에 상장된 주식 가운데 유동성이 높은 225개 종목을 선정해 매일 1분 간격으로 평균주가를 산출, 공표한다. 1부 시장에서 이 종목들이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약 70%에 달한다.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버블 붕괴에 집을 나갔던 일본 개미(개인 투자자)들이 다시 주식시장으로 귀환하고 있다. 저축 일변도였던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 층은 공격적인 주식투자로 재테크 포트폴리오를 꾸리고 있다. 매수세가 몰리는 시점에 코로나19 터널을 통과한 기업들의 실적도 견조해 투자환경은 나쁘지 않다. 다만 대다수 기업들이 '잃어버린 30년'의 트라우마에 갇혀 투자보다는 생존 위주의 경영을 펴고 있어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日세대교체, 주식시장도 바뀐다

5일 일본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일본증시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2021년과 2022년 2년 연속으로 일본주식을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3년 이후 39년 만에 처음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버블 붕괴 후에 손실을 입은 중장년층의 매도세가 막바지에 이르렀고 젊은 층의 투자가 서서히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지 증권가에서는 연말 니케이225지수가 3만선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쿠치 마사토시 미즈호증권 수석 주식전략가는 "코로나19 사태로부터 경제 회복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연내 니케이 평균주가가 최대 3만2000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대형 증권사들도 전망치에 대한 근소한 차이만 있을 뿐 지수는 3만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3만에 도달한다 해도 피크인 1989년 12월의 80%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도 있다. 같은 기간 홍콩과 독일은 약 8배, 미국은 약 12배로 주가가 뛰었다. 미국 자산운용사 누버거버먼의 쿠보타 게이타 일본주식운용부장은 "버블 붕괴 이후 해외 투자자들에게 '일본 기업은 성장하지 않는다'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주요 기업(2021년 시가총액 상위 1000대 기업 기준)의 순이익을 보면 일본은 과거 20년간 4억달러 늘어난 4억1100만달러를 벌었다.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7억달러 증가한 7억7200만달러, 미국은 15억달러가 늘어난 19억달러로 '버는 힘'의 차이가 벌어졌다. 매출액 순이익률도 일본은 6%를 조금 넘는데 비해 유럽과 인도는 8~10%, 미국은 약 12%에 이른다.

■투자 멈춘 기업, 주가 아킬레스건

저성장하는 일본 기업의 장기 침체에 대해서는 기업의 의사결정 지연, 연공서열에 따른 경직된 인재 등용 등 다양한 분석이 있다. 특히 투자보다는 생존을 우선시하는 기업들의 투자 문화가 주가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고도 성장기인 1968년부터 버블 붕괴기인 1990년까지 설비투자와 순이익 추이를 보면 대부분의 해에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이상의 증가율이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투자→성장→재투자의 선순환 고리가 끊어진 기업들이 생존에만 몰두하면서 점차 시장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쿠슈인대 다키자와 미호 교수는 "불충분한 투자로 기업의 성장이 방해받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투자로 경쟁력이 높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수익성을 높이고 거기서 얻은 이익으로 재투자하는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구도"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기업당 평균 연구개발 투자는 지난 10년간 25% 감소한 반면, 미국은 2.3배로 확대됐다. 중국은 4.4배로 급증했다. 기업당 설비투자액은 일본은 9% 줄었으나 미국은 28%, 중국은 34% 늘렸다.

종업원에 대한 투자도 적다. 일본의 2014년까지 5년간 인력투자액은 국내총생산(GDP)의 0.1%에 불과하다. 미국(2.1%)이나 독일(1.2%)에 한참 못 미친다. 뒤늦게 소프트웨어,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지만 투자를 해도 활용할 수 있는 전문 인재의 육성이 진행되지 않아 미국의 정보기술(IT)과 같은 신성장산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일본 현지의 비판이다.

■"애니멀 스피릿 경영자 나타나야"

BNP파리바증권의 고노 류타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경제가 반복적으로 위기에 직면하면서 고위험 성장 투자에 소극적인 경영자들이 결과적으로 생존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가와키타 히데타카 교토대학 명예교수도 "일본은 시장의 압력에 노출되지 않고 돈을 벌지 못하는 경영자와 회사들이 보존되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에서는 주가와 수익이 투자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 기업이나 경영자는 시장에서 제거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초반 당시 자동차와 화학 등 제조사들은 실적 부진에 빠졌다. 1990년대 후반에는 금융위기가 터져 금융기관의 대출 거부 현상이 심화되면서 자금조달 우려마저 커졌다.
이 시기에 적극적인 투자를 했던 경영자들은 직격탄을 맞아 퇴임을 강요받았다. 2000년대부터 일본 기업의 이익잉여금이 꾸준히 늘어난 배경도 이 때문이다.


닛케이는 "'잃어버린 30년'을 벗어나려면 성장의 주역인 기업이 바뀔 수밖에 없다"며 "시장의 힘을 통해서 기업이나 경영자의 애니멀 스피릿(야성적 충동)을 재점화해야 투자와 성장의 선순환을 되찾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k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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