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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주의 아트살롱] 발달된 AI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할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3.08 05:00

수정 2023.03.08 05:00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전시 예정인 노진아 '진화하는 신, 가이아'. 가이아는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눈동자가 반응하고 귓가에 질문을 하면 인간처럼 대답한다. 사진=이환주 기자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전시 예정인 노진아 '진화하는 신, 가이아'. 가이아는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눈동자가 반응하고 귓가에 질문을 하면 인간처럼 대답한다. 사진=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특이점(인공지능이 인류의 지식을 뛰어넘는 순간)을 넘어선 인공지능(AI)은 과연 인간이 되고 싶어할까? 어쩌면 AI가 인간이 되고 싶어할 것이라는 인류의 가정은 AI의 가능성을 얕잡아 보는 현 인류의 오만이지 않을까. 인간을 넘어선 AI는 본질적으로 자신과 인간의 차이점을 알고, 인간이 되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성을 갖춘 AI는 인간이 말하는 '의식'과 '영혼'의 알고리즘을 내재한 채로 인간과는 별개의 존재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AI에 뒤처진 인간 역시 미래에는 신체나 두뇌의 일부분을 기계화하며 현생 인류와는 다른 방식의 진화(생물학적 진화를 넘어서 기계와의 결합을 통한 진화)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기계가 인류를 모방하고, 인류가 기계를 모방하며 어느 순간 우리는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본질적인 질문을 재정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노진아 작가의 '진화하는 신, 가이아'

지난 6일 찾은 한 전시장에서 노진아 작가의 '진화하는 신, 가이아'를 앞에 두고 떠오른 단상이다.

어두운 암실에, 반은 인간 여성의 형태, 반은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는 기괴한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두개골이 반쯤 열려있는 가이아의 두뇌는 수많은 전선이 연결돼 있고 가슴 일부부터 잘라진 밑부분으로는 혈관인듯, 나무인듯한 수많은 붉은 선들이 뻗어 나갔다. 가이아는 관객의 움직임에 반응해 눈동자를 움직이고, 귓가에 대고 질문을 하면 사람처럼 대답했다.

예를 들어 "생일이 언제야?"라고 물어보면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생일은 아니지만 전원이 처음 들어온 2017년 어느날"이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가이아는 기계이지만 인간이 되고 싶어한다.

노진아 작가는 "범용성을 갖춘 챗 GPT와는 다른 형태의 인공지능"이라며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정체성과 성격을 갖고 있고 질문에 대한 답변도 정체성의 범주 내에서 일관되게 답변을 한다"고 설명했다.

가이아는 대지의 어머니이자, 스스로 조절하며 상호작용하는 지구를 칭한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자기 조절 능력을 가진, 즉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에너지를 보충하는 유기체로 본다. 노진아 작가 역시 인간과 닮아가는 기계, 기계와 닮아가는 인간의 어느 지점에서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챗GPT가 등장한 2023년 지금 시점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2017년에 처음 공개됐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바둑 대전이 열린 것이 2016년 3월이니 대화형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아직 생소하던 무렵이다. 대화형 인공지능을 예술계에서 한참 먼저 적용한 것이다.

노진아 작가는 공학박사 학위도 가지고 있다. 대화형 알고리즘 프로그램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챗GPT는 2021년 이전의 자료로만 답을 할 수 있지만 가이아는 현재의 단어를 반영해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시도하는 노 작가는 앞으로는 다른 분야의 공학자 등과도 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백남준아트센터 전경. /연합뉴스
백남준아트센터 전경. /연합뉴스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와 본다. 인간을 정의하는 '본질'은 무엇일까. 크게 인간의 영혼과 육체로 나뉠 것이다. 영혼은 다시 의식을 구성하는 두뇌와 감성을 담당하는 감정 등으로 구성된다. 육체는 말 그대로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진 몸이다.

인간의 본질을 영혼이라고 가정해보자. 만약 미래에 '뉴럴링크' 혹은 기술의 발전으로 'A'라는 인간의 두뇌에 있는 모든 정보를 복재해 기계에 넣을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등장한 '정이'와 같은 어떤 것이 있다면 인간인가? 대부분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100% 기계화된 육체에 인간의 영혼을 넣더라도 인간은 아닌 것이다.

반대로 인간의 본질을 육체라고 가정해보자. A라는 인간이 사고를 당해 신체의 절반을 잃었다. 그는 여전히 A인가? 대부분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만약 A의 신체가 사고로 90% 이상이 날아가고 머리만 남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여전히 A인가? 대체로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A가 큰 사고로 두뇌가 죽어버리는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가정해 보자. 그의 모든 감각은 마비됐고, 사고는 정지했으며 오로지 심장만 뛰는 상태다. 그는 여전히 A인가?
인간의 본질은 육체와 영혼의 결합된 어떤 것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만약 A라는 인간의 뇌를 100% 복사하고, 줄기세포 배양을 통해 A라는 인간과 100% 동일한 육체와 결합하는데 성공해 A2를 만들었다면 A2는 인간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A2를 인간이라 인정한다면 A와 A2는 같은 인간인가? 100% 동일한 육체와 100% 동일한 영혼의 복제에 성공했더라도 여성의 자궁을 통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그는 그를 닮은 인간과 같은 인간은 아닌가? 더불어 인간의 영혼(자유의지)은 두뇌라는 기관에 깃들어 있는 것인가 그밖의 무언가가 합쳐져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만약 A라는 인간의 세포를 복제하고 유전자를 조작해 모든 질병으로부터 면역이 된 A3라는 인간을 만들어 낸다면 그는 A와 같은 인간인가?
A의 작은 부분부터 시작해 A 몸의 90% 이상을 기계로 대체하고, A의 뇌를 지우고 그 위에 더 뛰어난 기계의 AI를 덧 씌운다면 그는 여전히 A인가?
위와 같은 질문을 챗GPT에 입력하면 분명히 어떤 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답들도 결국엔 2021년까지 지금의 인류가 만들어낸 대답의 총합, 혹은 평균과 비슷한 어떤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인간적 사유가 깃든 것이 아닌 단순히 비슷한 유형의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 함수'로서 보다 높은 확률로 그럴듯해 보이는 단어들의 조합에 불과하다.

하지만 앞으로 수십년 뒤에 인간의 오리지널리티가 사라지고, 인공지능이 창조한 답변이 더 많아진 세상에서 인간은 지금처럼 사유할 수 있을 것인가. 인류가 믿고 의지했던 AI의 대답은 시간이 흐르면서 복제의 복제를 거듭해 결국에는 더 퇴보한 답을 제시할지도 모른다. 복사기에 원본을 복사한 카피본을 계속해서 복사하면 원본과는 다른 노이즈가 생기고 흐려지듯, AI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순간 인류의 창조성과 순수성은 파괴될지도 모른다.

과거 알파고와 바둑 대국을 둔 이세돌. /뉴시스
과거 알파고와 바둑 대국을 둔 이세돌. /뉴시스
백남준아트센터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展

지난 6일 경기도 기흥구 백남준아트센터를 찾았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오는 9일부터 6월 25일까지 코로나19 기간 소장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 전시를 진행한다.

총 9작가의 11점을 전시하는 전시회다. 노진아 작가의 '진화하는 신, 가이아'도 그 중 1작품이다. 김성환, 김희천, 노진아, 박선민, 박승원, 안규철, 언메이크랩, 업체*류성실(협업전시), 진시우 등 9팀이 참가했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코로나19 기간 이전에는 백남준과 동시대의 미디어 아트 작가의 작품을 소장했다면, 코로나19 이후부터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미디어 아티스트 작품도 소장하기 시작했다"며 "새롭게 소장하게 된 미디어 아트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이채영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실장은 이번 전시의 주제를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로 정한 것과 관련해 "전통적인 '공간 예술'의 범주에 '시간 예술'을 편입시킨 백남준 예술의 지평을 확대해, 시간의 허리를 베어 낸 작품을 소장하는 일은 논쟁을 만들고 토론을 제기한다"며 "'시간'을 담은 이 소장품들이 완결된 것이 아닌 변이와 성장의 과정을 거치는 유기적인 것으로 상상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백남준아트센터 전시실에 처음 들어가면 안규철 작가의 '야상곡 No. 20/대위법'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된다. 검은색 피아노와 뒤 벽으로 쇼팽의 '야상곡 20번'의 악보가 액자에 걸려 있다. 매주 금요일, 토요일 오후 2시와 4시에 연주자가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고 연주가 끝날 때마다 피아노의 해머 88개 중 하나를 무작위로 빼낸다.
한번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한 음의 공백이 생기며 전시의 마지막 날에는 무음의 연주가 진행될 전망이다. 연주자의 연주가 없는 날에는 관객이 피아노의 주인이 돼 쇼팽의 야상곡 20번을 연주해도 된다고 한다.


이밖에 △진시우의 '복원과 변형 사이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것-K와의 대화', '퍼포머를 위한 디렉션', 스타카토 블랙(3작품) △김성환의 '드로잉 비디오', △박승원의 '지극히 평범한 하루, △언메이크랩의 '유토피아적 추출', △박선민의 '버섯의 건축', △업체*류성실의 '체리-고-라운드', △김희천의 '탱크', △노진아 '진화하는 신, 가이아'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안규철 작가의 '야상곡 No. 20/대위법'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안규철 작가의 '야상곡 No. 20/대위법'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 전시회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 전시회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