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송이 기자 = 케냐의 한 여성 의원이 흰 바지에 생리혈이 묻은 채로 의회에 들어서 화제를 모았다.
8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 워싱턴 포스트 등 외신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케냐 상원의원 글로리아 오워바(37)의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달 14일 케냐 의회를 지키고 있던 한 여성 가드는 오워바 의원의 피에 젖은 정장 바지를 보고 깜짝 놀라 그를 가려주기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오워바 의원은 아랑곳 않고 당당히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오워바 의원은 인터뷰에서 "생리혈이 묻은 바지를 입고 간 것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워바는 이내 생각을 바꿨다. 월경을 수치스러워하는 문화가 케냐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생리혈이 묻은 바지를 보여줌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오워바의 바지를 본 상원 동료 의원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여성 의원은 의장에게 "오르바에게 나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얘기해달라고 청했다. 남성 의원들도 이에 동의했고 오워바는 '복장 규정 위반'으로 퇴장당했다.
한 남성 의원은 오워바가 의회에 일부러 생리혈이 묻은 바지를 입고 왔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오워바의 바지 사건이 사고였든 의도한 것이었든 간에 그의 생리혈 바지 사건이 이끌어낸 논쟁은 케냐를 비롯한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여성들의 월경권에 대한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오워바 의원이 여성들의 월경권에 힘쓰게 된 계기는 2019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14세 여학생 사건이었다. 당시 생리혈이 새어 나온 여학생은 교사에게 더럽다는 말을 듣고 교실에서 쫓겨난 후 수치심에 시달리다 극단 선택을 했다.
앞서 2018년 케냐 정부는 여학생들에게 생리대를 나눠주기 위한 예산을 늘렸으나 이듬해 그 액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2020년 케냐 보건부 통계에 따르면 도시 지역 여성의 65%, 농촌 지역 여성의 46%만이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냐 여성의 절반은 일회용 생리대를 구매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인플레이션으로 생리대 가격이 2배로 뛰어오르면서 생리대 구매자가 더 줄어들었다.
생리대를 못 사는 여학생들은 생리 기간 동안 피가 새어나갈 것을 우려해 학교에 잘 가지 않기도 한다. 유엔 조사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의 여학생 10명 중 1명은 생리 기간 중 학교에 결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업에 뒤처진 여학생들은 결국 자퇴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오워바 의원은 생리혈 바지 사건 이후 공중 화장실에 생리대를 비치하고 싶어 하는 회사와 가난한 사람들이 생리대를 쓸 수 있도록 돕는 단체로부터 많은 연락을 받았다. 또 오워바 의원의 바지 사건으로 케냐 의회는 모든 여학생과 수감된 여성들에게 매년 생리대를 공급하는 법안을 만드는 데 집중하게 됐다.
오워바 의원은 "예상치 못한 생리 얼룩이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상으로 비춰질 날을 고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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