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70년 전통장터, 골목마다 MZ식객이 찾는 맛집 즐비[길 위에 장이 선다]

김기섭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3.12 16:41

수정 2023.03.12 16:41

6 원주 중앙시장
'없는게 없는' 서민들의 삶의 현장
한반도 동서내륙 잇는 교역도시 한가운데에 위치
서울 공산품, 강릉 해산물, 강원도산 농산물 집결
4년 전 화마로 방문객 줄었어도 끝없는 변화 거듭
청년창업가 모인 미로예술중앙시장
2014년 52곳 문 열어… 공방·카페 등 활기 더해져
요즘 들어 저조한 흥행 이유는 '단순기술의 한계'
복합문화공간 취지 살린 지원 전략 필요성 나타나
강원 영서내륙의 교통 중심지의 원주 중앙시장 입구 사진=김기섭 기자·원주시 제공
강원 영서내륙의 교통 중심지의 원주 중앙시장 입구 사진=김기섭 기자·원주시 제공

【파이낸셜뉴스 원주=김기섭 기자】 강원도 영서내륙의 교통 중심지 원주. 큰 축에서 동서로 서울과 강릉을 잇고 횡성과 홍천, 평창, 영월, 여주, 제천, 충주가 거미줄처럼 연결된 전형적인 사통팔달의 도시다. 오랜 시간 이어져온 교역의 중심 도시답게 도심 한가운데 중앙시장이 자리잡고 있다. 사고파는 상품의 종류와 규모도 여느 전통시장보다 큰 편이다. 12일 찾은 원주 중앙시장은 서울로부터 공산품이, 강릉으로부터 해산물이, 인근 지역으로부터 농산물이 집결하다보니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만물시장이나 다름없었다.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먹을거리도 다양하다. 시장이 개설된 지 70년이 넘으면서 서민들은 물론 관광객, 입소문을 타고 온 MZ세대들도 찾는 맛집들이 하나둘씩 늘어 점심시간과 주말에는 웨이팅이 기본인 식당들이 꽤 늘었다.
시장골목에 자리잡은 맛집들 이름도 '강릉집', '횡성집', '이천기름집', '여주집' 등 고향 지명을 넣거나 '신혼부부', '일호집', '푸른초원' 등 시골장터다운 센스(?) 있는 간판이 정겹다.

원주 중앙시장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동인구가 줄었지만 여전히 시장을 찾는 연령층도 다양하고 상인들도 젊은층이 조금씩 유입되면서 활기를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원주 중앙시장은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진화를 거듭해왔다.

원주 옛 B도로인 중앙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중앙시장과 옛 A도로 사이에 위치한 자유시장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고 미로예술시장, 도래미시장, 중원시장 등이 붙어있다. 크고 작은 시장이 붙어 있다보니 파는 품목에 따라 붙여진 골목도 다양하다. 한우골목, 돈가스골목, 순대골목, 만두칼국수골목 등이 대표적이다.

1972년 옛 원주 중앙시장 사진=김기섭 기자·원주시 제공
1972년 옛 원주 중앙시장 사진=김기섭 기자·원주시 제공

■70년 애환 쌓인 중앙시장

중앙시장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시장은 대부분 그 도시의 중심가에 있다. 그래서 인근에서 관공서, 대학, 은행, 병원, 극장 등 도시의 중추 기능을 담당하는 공공 인프라가 잘 발달돼 있다.

원주 중앙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 인근에 지금은 무실동으로 이전했지만 원주시청사가 있었고 연세세브란스 기독병원,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원주시보건소, 각종 은행과 병원들이 지금도 중앙시장 인근에 위치해 있다. 도시가 팽창하면서 원주시청과 경찰서, 원주역, 군부대 등이 외곽으로 이전했지만 예전에는 인근 도시를 포함해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으로 꼽혔다.

지금도 중앙시장과 자유시장을 잇는 도로는 평일에도 도로가 붐빌 정도로 상인들과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봄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어서인지 난장에는 봄 냄새를 담은 달래 바구니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구부정한 허리에 뽀글파마를 하고 달래를 담아내는 할머니의 무뎌진 손 끝에서 애환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인근 떡집에서는 떡을 익히기 위해 내뿜는 희뿌연 수증기가 장 보러 나온 할머니들을 반긴다.

중앙시장은 콘크리트 건물 2개동을 아케이드(햇빛가리개)로 연결시킨 1층 상점(가,나,다,라 동)들을 말한다. 이곳 2층은 미로예술중앙시장이다. 1층 중앙통로 좌우측은 대부분 의류 상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대형 쇼핑몰에서 옷을 구입하지만 옛날에는 시장통에서나 옷을 살 수 있었다. 지금도 어르신들은 값싸고 질 좋은 옷을 구입하기 위해 중앙시장을 찾는다. 의류 상가들과 함께 생필품을 파는 상가와 상인들과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는 음식점들이 중앙시장을 구성하고 있다.

자유시장에서 중앙시장을 정면으로 보고 오른쪽 일부 상가(나 동)들은 화재로 문을 닫은 상태다. 화마가 휩쓴 지 4년이 지났지만 40여개 점포는 아직도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복구비와 보상 문제로 지연되다 최근 원주시가 해결책을 내놓으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있다.

원주 미로예술중앙시장
원주 미로예술중앙시장

■젊은 창업가들 진출한 미로(迷路)예술중앙시장

미로예술시장은 중앙시장 2층을 말한다. 중앙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곳곳에 2층 미로예술중앙시장으로 연결되는 계단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시장은 2007년 원주시청사가 무실동으로 이전한 후 원도심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중앙시장이 쇠퇴기를 맞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14년 청년상인 점포 52곳이 2층에 문을 열면서 미로예술중앙시장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청년 상인들이 점포를 오픈하면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당시 창작 레지던스 사업을 통해 작가들이 2층 미로예술중앙시장을 밝고 젊은 느낌으로 꾸몄고 다양한 청년 사업가들이 공방과 카페, 문화공간 등을 열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 시장을 조성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라는 기능에 예술을 접목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지만 그 명성은 오래가지 않고 다시 침체기를 맞고 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렸지만 칼국수 집만 유명세가 이어지고 있다.

침체되고 있는 이유는 4년 전 화재로 '나 동'이 영업을 하지 못하는 탓도 있고 유동인구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청년사업가들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큰 듯하다.

40여년 전 중앙시장 2층에 점포를 얻어 '명양복점'을 연 명효성 대표(85)는 "10여년 전 중앙시장 2층을 젊은 공간으로 꾸미고 청년사업가들이 대거 들어와 점포를 열었지만 효과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며 "문제는 청년사업가들이 갖고 있는 기술이 변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명양복점 인근에는 세공방과 가죽, 자수 등 신생 공방이 명맥을 유지할 뿐 미로(迷路)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하기까지 했다. 무조건 청년들을 들여보내면 활성화될 것이란 직관(直觀)적인 계획 보다는 청년들이 기술을 갖고 업력을 쌓아가며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

원주 중앙시장 입구에서 봄나물들을 팔고 있는 할머니 사진=김기섭 기자·원주시 제공
원주 중앙시장 입구에서 봄나물들을 팔고 있는 할머니 사진=김기섭 기자·원주시 제공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자유시장

포털사이트 지도 서비스에서 '자유시장'을 검색하면 전국에 10곳이 넘는다. '평화시장'은 2~3곳 된다. 6·25전쟁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작명이 아닌가 추정된다. 원주에는 1군사령부, 1군지사 등이 주둔, 군사도시로 불렸던 적이 있어 짐작은 할 수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는다. 원주 자유시장은 1986년 지하 2층, 지상 10층의 주상 복합 상가 가운데 지하 1층과 지상 1~2층에 들어섰다.

주상복합건물 1~2층에는 중앙시장과 마찬가지로 옷가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외에도 액세서리와 주방용품, 수선집, 공방, 인테리어 소품, 미용실, 사진관 등이 영업을 하고 있다.

지하 1층은 의류와 식당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특히 지하 1층 식당코너에는 원주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음식점들이 있고 이들 덕분에 자유시장 자체에 활기가 돌 정도다.

의류코너 나머지 공간에는 각종 튀김을 파는 튀김집, 순댓국을 파는 국밥집, 돈가스와 같은 분식을 파는 분식집들이 구역을 형성하고 있고 몇몇 식당들은 웨이팅이 기본일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원주 자유시장 순대국밥집들은 일반적인 국밥집하고는 조금 다르다. 이곳 국밥집들은 한 집당 3평 남짓한 공간에서 국밥에 들어갈 고기를 직접 손질하고 구석 한쪽에서 끓고 있는 국물에 밥과 고기를 토렴해 손님들에게 내어준다. 직접 고기를 손질하면서 비계나 질이 좋지 않은 부위는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직접 도려내 버리고 사태 살코기와 오소리감투와 같은 부속물, 순대를 썰어서 넣어준다. 맛도 맵고 달고 짜지 않고 깔끔한 옛날 맛 그대로다.

그래서인지 20~30년 단골들도 많고 입소문에 요즘은 '국밥러'들의 순례지로 통한다.

원주 자유시장 지하 1층에 형성된 순대국밥집. 일부 식당은 웨이팅이 기본이다. 사진=김기섭 기자·원주시 제공
원주 자유시장 지하 1층에 형성된 순대국밥집. 일부 식당은 웨이팅이 기본이다. 사진=김기섭 기자·원주시 제공

■도래미 시장과 중원시장, 소고기 골목

원주 자유시장과 평원로 사이에 아케이드(빛가림 시설)로 연결된 시장이 도래미(道來美) 시장이다. 시설 개선 사업을 해서인지 바닥과 상점 모두 깨끗하게 조성돼 있고 먹거리를 팔거나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일명 중앙시장 만두칼국수 골목으로 불리는 이곳도 유명 음식점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만두와 칼국수, 옹심이, 부침개 등 먹거리 식당 안을 비집고 들어가면 안쪽에 식당칸이 있어 저렴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부침개에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이 정겹다.

도래미 시장은 1960년대 새벽시장, 1992년 중앙농수산물시장을 거쳐 2006년 중앙시민전통시장으로 등록했다. 그러다 2020년 도래미 시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홍보하면서 생기가 넘치는 전통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40년 전통의 소고기골목은 중앙시장 1층 '다 동'과 '라 동' 골목에 위치해 있는 로컬들만 알고 찾아간다는 노포 한우구이 골목이다.


원주시청사가 인근에 있을 때는 저렴한 가격에 한우를 먹을 수 있는 이곳으로 퇴근하는 시청 직원과 직장인들이 많았다. 때문에 소고기 골목은 저녁이면 숯불 연기가 그득했고 비좁은 점포 안에서 다닥다닥 붙은 불판을 둘러싸고 차돌박이, 부챗살, 치맛살, 업진살을 구워가며 술 한잔 기울이는 맛은 어디에도 비할 바가 안된다.
이런 전통시장이야말로 서민들의 애환과 희망을 보듬고 풀어내는 삶의 현장이다.

kees26@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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