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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SVB 사태 후폭풍 커져, '금리 동결론' 수면 위로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3.13 14:56

수정 2023.03.13 15:48

美 SVB 파산, 예금 보호로 한숨 돌렸지만 후폭풍 남아
뱅크런 우려 남아, 스타트업 돈줄 막혀
시장 유동성 부족 경고...이달 연준 금리 동결 가능성 커져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의 실리콘밸리뱅크(SVB) 본사에서 직원들 폐쇄 공지문을 보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의 실리콘밸리뱅크(SVB) 본사에서 직원들 폐쇄 공지문을 보고 있다.AF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금융 당국의 예금 보장 선언으로 한 고비를 넘겼지만 여전히 대량예금인출(뱅크런) 등 잠재적인 위기를 남겨두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로 창업초기기업(스타트업)의 자금줄이 말랐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느려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뱅크런 공포 고조, 정부 자금 공급 검토
10일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다. 미 재무부와 연준, FDIC는 12일 공동 성명을 내고 SVB 예금주들의 모든 예금을 보호하겠다며 13일 은행 문이 열리면 예금에 접근할 수 있다고 알렸다.
미 헤지펀드 퍼싱스퀘어자산운용의 빌 애크만 창업자는 1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13일 은행이 개장하면 "고객들이 13~14일에 걸쳐 최대 50%의 예금을 가져갈 것이며 나머지 돈은 약 3~6개월에 걸쳐 실현가치를 기준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만약 내말이 맞다면 13일부터 금융당국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SIB)’으로 분류하지 않은 은행에서 뱅크런이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8일 실버게이트은행 청산에 이어 실리콘벨리 최대의 지역은행이었던 SVB가 파산하자 중소형 은행들의 재정에 대한 걱정이 증폭됐다. SVB 파산 직후 뉴욕주의 시그니처은행, 캘리포니아주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 다른 중소형 은행의 주가 역시 급락했으며 미 뉴욕주 금융당국은 12일 시그니처은행을 폐쇄하고 FDIC 관리를 시작했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12일 성명에서 JP모간을 통해 추가 자금을 확보했다며 재정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현지 매체들은 같은날 관계자를 인용해 미 연준이 뱅크런 사태를 막기 위해 시중 은행에 자금 공급을 검토중이라고 전했다. 관계자는 은행이 연준에서 단기 자금을 빌릴 때 적용하는 금리인 재할인율을 언급하고 연준이 해당 금리를 낮춰 은행을 도와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은행들은 SVB에 뱅크런이 극심하던 지난 10일부터 연준에게 추가적으로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연준은 13일 오전에 비공개 이사회를 열고 SVB 대응을 논의하기로 했다.

■돈줄 막힌 스타트업 '비상'
현지 매체들은 SVB가 유서 깊은 스타트업 특화 은행이었다며 이번 사태가 스타트업 업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VB 은행이 폐쇄되면서 현금을 은행에 보관했던 스타트업들이 자금난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미 벤처캐피탈인 멘로벤처스의 맷 머피 파트너는 자사가 투자한 회사의 약 15%가 당장 지급해야 하는 임금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벤처캐피털인 제너럴카탈리스트도 SVB 폐쇄 때문에 투자한 회사의 10% 정도가 임금 지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스타트업 경영진들이 당장 필요한 자금 확보를 위해 고금리 신용카드 현금서비스까지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기업들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투자자들과 단기 대출 협상을 벌이는 상황이다.

돈이 풀리더라도 문제가 남아있다. 12일 미 뉴욕타임스(NYT)는 SVB가 단순히 예대 업무만 취급하던 은행이 아니었다며 스타트업과 각종 협업을 통해 상생을 추구하던 동반자 관계였다고 분석했다. 과거 SVB는 세계 기후 위기 대응 기술을 개발하는 1550개 이상의 스타트업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

미 최대 공동태양광 발전 업체 '아르카디아'의 키란 바트라주 최고경영자(CEO)는 "SVB는 여러 면에서 '기후 은행'이었다"며 은행 붕괴로 많은 기후 스타트업 업계에 대규모 부수 피해가 발생한다고 내다봤다. 관계자들은 스타트업이 미 정부의 예금 보호 선언으로 임금을 못 주는 사태는 피하겠지만 돈이 오래 묶일 경우 투자나 시범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예상했다.

■연준 금리 동결 가능성
SVB의 파산 원인은 연준의 금리 인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SVB는 2020년 이후 신생 IT 스타트업의 호황과 함께 덩치를 키웠고 막대한 스타트업 예금을 유치했지만 동시에 예금주에게 지급해야할 이자 부담도 늘었다. 은행의 대출 규모는 이자를 감당하기에 부족했고 이에 은행은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 채권에 투자했다. 2020년 SVB가 매입한 미 국채 등 증권 잔액은 270억달러 규모였으나 2021년 말에는 1280억달러(약 166조8480억원)로 증가했다.

SVB의 재정은 연준이 지난해 초부터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크게 악화됐다. 스타트업들은 고금리로 돈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기존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고 SVB는 예금주에게 돌려줄 현금을 구하기 위해 채권을 팔아야 했는데 채권 가격은 그동안 금리 인상으로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SVB는 지난해 채권 매각으로 18억달러의 손실을 봤고 지난 8일 자금 조달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SVB 고객들은 조달 실패 소식이 알려지자 앞 다퉈 돈을 뺐고 결국 뱅크런으로 인해 은행이 폐쇄됐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4.5~4.75% 구간이다. 연준은 오는 22일 회의를 마치고 기준금리를 결정하며 시장에서는 이달 초만 하더라도 연준이 최근 노동 지표를 감안해 0.5%p 인상에 나선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12일 보고서에서 연준이 이달 금리를 동결한다고 예상했다. 은행은 "SVB 사태로 미국 금융시장의 미래가 불안정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금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당국이 시장에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미 투자자문사 에버코어ISI의 에드 하이먼 회장도 같은 날 보고서를 통해 금리 동결을 촉구했다.
그는 "금리 동결 이후 물가가 오르면 그때 다시 긴축을 해도 된다"며 당장은 SVB 사태에 따른 금융 충격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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