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스위스의 중립주의는 빛 좋은 개살구" NYT

뉴시스

입력 2023.03.13 12:39

수정 2023.03.13 12:39

기사내용 요약
스위스 정체성 근간이라지만 지켜진 적 없어
군수산업 소멸하면 강군 통한 중립 유지 불가능

[아우구스도르프(독일)=AP/뉴시스] 독일 레오파르트 2 탱크 2023.2.24
[아우구스도르프(독일)=AP/뉴시스] 독일 레오파르트 2 탱크 2023.2.24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서방이 사용하는 무기를 생산하는 스위스에서 자국 생산 무기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금지하는 법률을 개정할 지를 두고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12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다음은 기사 요약.

우크라이나 전쟁은 동유럽 국가들에겐 코 앞의 전쟁이며 서부 유럽 국가들도 전쟁을 실감하고 있다. 유럽 한 복판에 자리한 스위스에선 고귀한 이상을 고수하려는 조바심이 일고 있다. 스위스가 자랑해온 중립 전통을 둘러싸고 의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새로운 시대에 중립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주장이 대두한 때문이다.



스위스는 유럽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무기의 탄약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지원될 예정인 독일제 레오파르트 2 탱크까지도 생산한다.

스위스는 자국 생산 무기를 우크라이나 등 분쟁 당사국에 지원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엄격한 법을 가지고 있다. 이 법이 스위스 군수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대목이 논쟁을 일으켰다. 무기 회사들이 금지법 때문에 유럽 각국 무기 수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호소하자 중립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함께 불거진 것이다.

스위스의 중립 전통은 수백 년 동안 지켜져 온 것이다. 870만 국민의 90% 이상이 지지하는 정책으로 스위스 정체성의 근간이다. 수도 제네바에 유엔과 국제적십자사 본부가 있는 스위스의 국민들은 스스로를 평화 중재자로 자부한다.

그러나 러시아 제재에 미온적인 스위스에 대해 주변 국가들은 스위스의 이상주의가 장삿속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비밀 고수로 각종 불법 자금을 유치해온 은행으로 악명이 높은 스위스에는 지금도 해외 유출 자산이 가장 많이 몰려 있다. 전 세계 유출 자산의 4분의 1에 달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 부호들의 자산이 포함돼 있다.

역사적으로 스위스가 중립 정책을 취해온 것은 전쟁에 휘말리기 않기 위해서였다. 중세 시대부터 근대 초까지 가난했던 스위스는 유럽 각지의 전쟁에 용병을 보냈다. 바티칸 스위스 경비병이 대표적이다. 스위스 중립 역사 전문가 사차 잘라 베른대 교수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당초 양쪽 모두에 참여한다는 의미였다”고 했다.

스위스에서 중립성 개념이 생겨난 것은 나폴레옹이 각종 전쟁을 일으킨 뒤다. 유럽 강국들이 강국들 사이에 중립 지대를 설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 1907년 헤이그 협약에서 명문화되면서 현재의 스위스 중립주의가 만들어졌다. 협약은 중립 국가들이 전쟁 당사국들을 똑같이 멀리함으로써 전쟁에 개입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무기를 판매하는 경우에도 전쟁 당사자 양측에 모두 팔아야만 하도록 했고 중립국은 자국 영토가 전쟁에 이용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했다. 이 때문에 스위스에선 강력한 군사력을 갖춰야 중립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지금 논란이 벌어지는 핵심이다.

군수 산업 지지자들은 이 부문 근로자수가 1만4000명에 불과하고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1%도 생산하지 못하지만 군사력 유지를 위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군수 산업이 수출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스위스 탄약회사 외를리콘-뷔를레는 독일제 자주대공포 게파르트가 사용하는 탄약을 생산하는 유일한 회사다. 독일이 게파르트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자 스위스는 탄약 수출을 중단했다.

그러자 유럽 각국의 군수 업체들이 스위스에서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다. 외를리콘-뷔를레의 모회사인 독일 기업 라인메탈이 국내에 탄약 공장 설립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스위스 군수 산업이 2-3년 뒤 수출 물량을 생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올해 초 스위스의 친 기업 정당인 자유민주당이 수출금지법을 우회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의원들 대부분이 받아들였다. 스위스의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에게 스위스제 무기를 재수출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지난주 최대 정당인 스위스인민당이 노골적인 우크라이나 지원법이라며 중립 주의에 위배된다고 반발했다.

이후 의회에서는 6가지의 다른 방안이 논의됐지만 어느 하나도 올해 안에 스위스 생산 탄약이 우크라이나에 전달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서방국들은 스위스의 무기 전용 허용이 상징적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스위스가 수십 년 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혜택을 입어 왔으면서 돕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스위스 곳곳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펄럭인다. 지원에 반대하는 의원들조차 러시아를 침략국이라고 비난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중립성을 완화하는데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보수적 의원들은 헌법에 엄격한 중립성을 명기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스위스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스위스는 80억 달러 상당의 러시아 자산을 압류했다. 스위스 당국에 따르면 스위스에 있는 러시아 자산이 493억 달러지만 다른 나라들은 2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본다.

스위스의 중립성은 철저하게 지켜진 적이 없다. 2차 대전 당시 스위스는 나치 독일의 편의를 봐줬고 냉전 시대에는 소련과 교역을 중단했었다.


역사학자 잘라는 역사적으로 스위스의 중립성이 명확한 개념인 때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중립적이라고 말하는 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독실한 신자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고 중립성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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