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학생도 학부모도 학교도…'방과 후 아카데미' 중단에 아쉬움

뉴스1

입력 2023.03.17 08:55

수정 2023.03.17 08:55

아산 송남중 유재흥 교장이 '방과 후 아카데미' 활동이 이뤄지던 교내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송남중은 청소년 돌봄 공백해소 등을 위해 지난해부터 5년 동안 아카데미를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아산시의 사업 중단으로 1년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 2023.3.13. ⓒ 뉴스1 이시우 기자
아산 송남중 유재흥 교장이 '방과 후 아카데미' 활동이 이뤄지던 교내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송남중은 청소년 돌봄 공백해소 등을 위해 지난해부터 5년 동안 아카데미를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아산시의 사업 중단으로 1년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 2023.3.13. ⓒ 뉴스1 이시우 기자


송남중학교 학생들이 방과 후 아카데미에 참여해 활동하는 모습. 학생들에게 방과 후 학습지원은 물론 진로 체험, 주말활동 등 체험 기회와 급식, 귀가 지원 등 다양한 돌봄 서비스가 제공된다. (송남중학교 제공)
송남중학교 학생들이 방과 후 아카데미에 참여해 활동하는 모습. 학생들에게 방과 후 학습지원은 물론 진로 체험, 주말활동 등 체험 기회와 급식, 귀가 지원 등 다양한 돌봄 서비스가 제공된다.
(송남중학교 제공)


박경귀 아산시장은 지난 9일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경비 예산 집행 중단 배경 등을 설명했다. ⓒ 뉴스1 이시우 기자
박경귀 아산시장은 지난 9일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경비 예산 집행 중단 배경 등을 설명했다. ⓒ 뉴스1 이시우 기자


(아산=뉴스1) 이시우 기자 = 충남 아산 송남중에 재학 중인 박모양(3년)에게 새 학기는 달갑지 않은 변화로 찾아왔다. 지난해 알차게 짜여 있던 방과 후 계획표가 올해는 텅 비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박양은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부족한 학업을 보충하고 다양한 체험 활동도 했다. 저녁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먹었다. 오후 7시께 활동이 끝나면 귀가 지원 차량을 이용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허투루 흘러가는 시간이 없었다. '방과 후 아카데미(이후 아카데미)'의 도움이 컸다.

올해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개학 후,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교를 나선다. 집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두번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버스를 놓치면 40~50분을 기다려야 한다. 집에 돌아가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한 해 동안 몸에 배었던 습관도 흐트러졌다. 멍하니 휴대전화만 바라보기 일쑤다. 결국 박양은 지난해 중단했던 학원을 다시 다니기로 했다.

◇방과 후 '종합선물세트' 내던진 아산시

아산시가 송남중학교 '방과 후 아카데미 사업'을 돌연 중단하면서 학생과 학부모, 학교가 혼란에 빠졌다.

방과 후 아카데미는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 사이 청소년들의 방과 후를 국가가 돌보는 정책지원 사업이다. 전문 강사진의 학습 지원은 물론 진로 체험, 자기 개발, 심리 상담, 주말 활동 등 다양한 체험 활동 기회가 주어진다. 급식과 귀가 차량까지 제공된다. 방과 후 학생들에게 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춘 종합 선물 세트와 같다.

청소년 수련관이나 청소년 문화의집 같은 공공시설이 운영을 맡고 여성가족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비를 절반씩 부담한다. 학부모 부담금은 '0'원이다. 2005년 시범 운영한 뒤 사업에 참여 기관이 꾸준히 늘어 올해는 전국 355곳에서 운영된다.

송남중은 지난해 학생들의 교육복지 실현을 위해 아산시와 협약을 맺고 5년 동안 아카데미를 운영하기로 했다. 학교 내에서 방과 후 아카데미가 운영된 곳은 송남중을 포함해 전국에서 단 4곳 뿐이었다. 학교장의 의지와 교육 구성원들의 협조가 있어 가능했다.

사업 첫 해,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올해도 38명의 학생이 참여하기로 했다. 아산시도 올해 예산을 편성해 의회 의결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1월 아산시가 돌연 사업 중단을 선언하면서 사업은 지난달 종료됐다. 5년 간 운영하기로 하자는 업무협약은 쓸모없는 종이가 됐다.

학생들은 허탈했다. 안모양(3년)은 "아카데미 덕분에 친구들과 사이도 좋아졌고, 학업에 대한 흥미도 생겼는데 갑자기 없어져 학원을 다녀야 한다"며 "왜 없어진 거냐"고 반문했다.

학부모들도 반발했다. 박병구 송남중 학부모 대표는 "아카데미를 보고 송남중으로 전학 또는 진학하려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있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며 "교육 구성원들의 입장을 들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중단해 돌봄 공백이 우려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형평성 어긋난다?…신청 학교가 적을 뿐

박경귀 아산시장은 지난 9일 아산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업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사업 자체가 특정 학교의 특수한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형평성에 어긋난 사업"이라고 밝혔다.

학교 밖 시설의 경우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모여 지원을 받지만 송남중학교는 한 학교 학생들만 지원을 받아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업 중단으로 인한 국비는 반납하고 자체 예산을 확보해 송남중을 포함해 5개 학교에 고르게 배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송남중 유재흥 교장은 "아카데미 사업을 신청하는 학교가 적을 뿐이지 송남중만 특별한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업 중단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유 교장은 "아카데미 사업의 운영 주체는 학교가 아니다. 외부 기관이 학교에 들어와서 업무를 하는 구조다. 안전 사고 등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학교가 참여하기 어려운 이유"라며 "교내에 유휴공간도 필요해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학교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사업을 주관하는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도 "학교 내 방과 후 아카데미 운영을 확대하고 싶지만 학교와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며 학교 참여가 늘어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동의했다.

특히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대해서 유 교장은 "학교 소재지가 아닌 타 읍면에 거주하는 학생들의 참여 비율이 더 높다. 특정 지역이 아닌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사업의 목적에도 부합해 시가 설명한 중단 사유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수한 프로그램'이라는 지적도 사실과 달랐다. 아산시에서는 송남중 외에도 3곳에서 방과 후 아카데미가 운영 중이다. 운영 기관은 아산시 청소년문화의집과 청소년교육문화센터로 모두 아산시 출연 기관인 아산시청소년재단 소속이다. 운영 주체가 같다보니 프로그램도 동일하게 적용, 운영돼 왔다.

◇아이 키우는 일, 온 사회가 나서야

여가부는 아산시의 결정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지원한 국비를 반환한 사례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아직 아산시로부터 사업 취소 및 사유 등을 전달받지 못해 자료 제출을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1개교가 추가돼 5개 학교에서 방과 후 아카데미가 운영될 예정이었다"며 아산시의 결정을 아쉬워한 관계자는 "여가부는 학교 내 방과 후 아카데미 사업이 확대되길 바라고, 희망하는 학교가 있으면 지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유 교장은 여전히 방과 후 아카데미의 지속 추진을 바랐다.

그는 "송남중은 문화재 보존 및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어려운 송악면에 위치해 있다"며 "학령 인구 감소로 2025년도에는 인근 송남초에서 진학할 학생이 1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농촌의 인구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아이 키우기 좋은 정주 여건을 조성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청소년 돌봄 공백 해소와 정주 여건 조성에 기여할 수 있는 방과 후 아카데미를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