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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와 첨단제품, 中과는 범용제품 협력… K반도체 투트랙 전략 필요 [김홍재의 이슈인사이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3.19 18:30

수정 2023.03.19 18:30

스페셜 리포트
패권경쟁에 낀 K반도체 해법은
美반도체지원법發 딜레마
보조금 받을 경우 10년간 대중 투자 제한
中 추가투자 없으면 공장생산 20% 감소
中, 美 맞서 공급망 무기로 추가 제재 우려
어느쪽도 놓을 수 없는 K반도체
독보적 기술력 같은 우위 확보 카드 만들어야
동병상련국과 네트워크 구축 공동대응 필요
용인 대규모 투자·한일 관계개선 잇단 희소식
美와 첨단제품, 中과는 범용제품 협력… K반도체 투트랙 전략 필요 [김홍재의 이슈인사이드]
美와 첨단제품, 中과는 범용제품 협력… K반도체 투트랙 전략 필요 [김홍재의 이슈인사이드]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대응 방안과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 가이드라인은 390억달러(약 50조원)의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기업 민간정보 공개, 초과이익 환수, 대중국 투자제한 등을 내걸면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들 모두 수용하기 힘든 조건으로, 특히 향후 10년간 대중 추가 투자가 제한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중국 공장 생산이 약 20%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미국의 보조금을 받으면 이 같은 불이익과 함께 중국 시장을 잃게 되고, 보조금을 안 받으면 미국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돼 앞으로 미국 주도의 차세대 반도체 로드맵 및 표준 제정 참여는 물론 최첨단 장비 구입 등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마지막 선택의 순간까지 어느 한쪽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가능한 한 한미동맹과 대중협력을 오랜 기간 병행하면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장기적으로 첨단기술 제품은 미국과, 범용제품은 중국과 협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중 경쟁에서 유사 입장국과 정책 협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공동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美 반도체지원법 득인가, 실인가

당초 390억달러 규모의 미 반도체법이 발효되면 미국 현지 공장을 잇따라 짓고 있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에 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미 반도체법 가이드라인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번에 보조금을 받기 위한 세부 지원기준이 나왔는데 1억5000만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초과 수익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하고, 미 안보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접근권을 제공해야 한다. 향후 10년간 중국 또는 관련 국가에서 반도체 설비 증설 등 신규 투자도 제한된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임진 원장은 "보조금을 받을 경우 미국 정부의 초과이익 환수, 사업기밀 공개 요구 등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다만 초과이익 반납규모와 기밀공개 범위에 따라 손익 규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미국과의 협상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류성원 산업혁신팀장은 "미국의 보조금 지급 조건이 과도해 보조금을 받는 게 유리한 것이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비용적으로 득실을 나누기는 어렵지만 국내 기업들에 과도한 부담이라는 점은 명백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4월 26일 미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반도체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현안 논의 과정에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中 투자 제한시 피해 예상 규모

무엇보다 미국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향후 10년간 대중 투자가 제한돼 국내 반도체 기업의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플래시의 약 4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디램의 46%, 낸드플래시의 25%를 생산하고 있어 사실상 중국 시장을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도체 공정의 특성상 세대 교체에 따른 지속적인 장비 유지·보수 및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인데 보조금 수령으로 대중 투자가 제한되면 중국 공장은 노후화로 인해 장기적으로 가동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국내에서 첨단공정을 거친 뒤 중국 공장으로 옮겨야 할 수도 있어 단기적으로 추가 운송비용이나 관리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류성원 팀장은 "피해 규모를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추가적인 투자가 없을 경우 중국 공장 생산이 20% 내외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중국 반도체 공장 건설에 들어간 막대한 투자 비용까지 감안하면 우리 기업의 피해 규모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반도체 기업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 대중 투자제한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달 중에 발표될 것으로 알려져 사전에 국내 기업들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정부가 미국 당국과 적극적인 협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中 추가제재 나설 가능성과 영향

미국이 반도체 등 첨단기술과 제품에 대해 대중 제재를 갈수록 강화하면서 중국도 추가 제재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은 지난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를 통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으나 2021년 기준 16.7%에 불과한 실정이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자국의 기술을 사용한 반도체 및 장비의 대중 수출을 막고 있어 중국이 자력으로 첨단공정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높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조치에 당장 맞대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후공정(14%)을 제외한 나머지 부문에서 점유율이 10% 미만으로 낮다. 아울러 반도체 장비 및 소재에서는 미국, 일본, 유럽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과 대만은 전공정 및 후공정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배터리, 희소금속, 의약품 분야에서는 전 세계 공급망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어 미국의 반도체 기술통제에 맞서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 조상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과거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처럼 중국이 자원을 무기화한 전례가 있고 미·중 간 갈등이 심화될 경우 공급망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에 따라 중국의 대응을 예의주시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대중 자원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K반도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이처럼 도를 넘은 미국의 반도체법과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미국을 비롯해 일본, 네덜란드 등은 반도체 장비 및 소재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어 우리 입장에서는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국가들이다. 실제로 2021년 기준 반도체 공급망 구조를 보면 반도체장비 부문에서는 미국, 네덜란드, 일본이 전체 수입액의 77.5%를, 소재에서는 일본과 미국이 전체 수입의 49.4%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네덜란드에 대한 의존도가 100%이며, 도핑용 이온주입기는 미국 의존도가 84%,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의존도가 79%에 달해 이들 국가와 등을 질 경우 핵심 반도체 장비 및 소재를 공급받을 수 없게 된다.

반면 미국의 보조금 혜택 등 동맹 구도에 참여할 경우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2년 반도체 관련 품목별 수출구조를 보면 시스템(32.5%), 메모리(43.6%) 등 전 부문에서 대중 수출 비중이 가장 높다. 2018년 기준 홍콩으로 수출된 우리 제품 중 82.6%가 중국으로 재수출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류 팀장은 "한국은 기술을 미국에 의존하고 시장은 중국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중 간 대결이 강대강으로 가더라도 우리 기업은 마지막 택일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한 쪽을 버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가능한 한 한미동맹과 대중협력을 오랜 기간 병행하면서 독보적인 기술력과 같이 양측에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첨단기술 제품은 미국과, 범용제품은 중국과 협력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임진 원장은 "미·중 경쟁에서 우리나라는 유사 입장국과 정책 협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동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면서 "무엇보다 미·중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내 반도체기업들이 반도체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를 따라잡기 위해 용인 클러스터에 향후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하고, 정부도 용인에 710만㎡ 규모의 산업단지를 조성키로 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대만 등 주요 국가들이 반도체산업에 대규모 지원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한일 경제인들을 만나 "디지털 전환,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미래첨단 신산업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의 여지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며 한일 기업 간 경제협력 비전을 제시한 것도 의미가 크다. 미국의 반도체법,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 등이 잇따라 발표되는 상황에서 한일간 협력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회복 시 무역적자 해소되나

무역적자의 주범이 반도체인 것은 맞지만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1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동월 대비 44.5% 감소한 60억달러로 6개월 연속 감소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은 13.0%로 급감했으며, 총수출 감소분에서 반도체 수출 감소분이 차지하는 비중도 52.4%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 감소가 무역적자의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요 반도체 전망기관들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 반도체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무역적자의 주요 원인이 에너지 가격 상승이라는 점에서 반도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무역흑자 전환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원유, 천연가스, 석탄 등 3대 에너지의 1월 무역적자는 2021년 평균(89억달러 적자) 대비 71.8% 증가한 153억달러로 전체 무역적자(127억달러)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3대 에너지를 제외하면 무역수지가 흑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조상현 원장은 "올해 1월 반도체를 제외한 무역적자는 135억달러로, 지난해 상반기 반도체 평균 무역흑자(56억달러)를 기록했다고 가정하더라도 79억달러의 적자가 발생한다"면서 "무역수지 흑자 전환을 위해서는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고 원유, 천연가스, 석탁 등 에너지 원자재 가격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hjkim@fnnews.com 김홍재 산업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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