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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십병구담(十病九痰)’, 10가지 병 중 9가지는 바로 O 때문이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3.25 06:00

수정 2023.03.25 06:0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본초강목>에 그려진 청몽석(靑礞石), 대황(大黃) 그리고 황금(黃金).
<본초강목> 에 그려진 청몽석(靑礞石), 대황(大黃) 그리고 황금(黃金).

먼 옛날 왕규(王珪)라는 의원이 있었다. 왕규는 어려서부터 지조와 행실이 고결했다. 그런데 유독 단 것을 좋아해서 항상 엿을 입에 물고 살았다. 어느 날 엿을 먹다가 엿 속에 지렁이가 머리를 쳐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서는 그 뒤로 차마 엿을 입에 대지도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왕규의 부모가 아들이 단맛에 집착하는 것을 끊고자 만든 묘법(妙法)이었다.
왕규는 이 경험으로 모든 일에 있어 마음의 정(定)함이 행동을 결정하는데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일시적으로 관직에 몸담았다가, 40세에 관직을 버리고 다시 고향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갑자기 속세의 허물을 버리고 우산(虞山)의 기슭에 은거하면서 움집에서 30년을 살았다. 그가 저잣거리를 돌아다니지 않으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서 사람들은 그를 왕은군(王隱君)이라 불렀다.

왕규의 눈동자는 항상 빛이 났고 탐구하는 능력이 탁월했고 실험정신 또한 뛰어났다. 궁금한 것은 뭐든지 해 봐야 성이 풀렸다. 움집에 사는 동안 도(道)를 닦고 의서를 읽는데 몰두했다.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은거하는 동안 광물질 약재들을 이용해서 다양한 환을 제조하는 환단술(還丹術)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기존에 없는 의론과 처방을 만들어내는데 골몰했다.

왕규는 의도를 깨우치면서 모든 병은 담(痰) 때문에 생긴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십병구담(十病九痰)’이라고 설파했다. 즉, 10가지 병 중 9가지는 바로 담(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담(痰)에는 화(火)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

담(痰)자는 병질(疒) 부에 불꽃 염(炎)자가 더해져서 만들어진 것으로 염(炎)자는 역시 불화(火)자 두 개가 모여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그래서 담(痰)은 요즘의 염증(炎症)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왕규는 담인론(痰因論)에 관해 대단한 신념이 있었다. 심지어 ‘의서에 보이지 않는 증세는 모두 담증(痰證)으로 귀결된다.’라고 할 정도였다. 왕규는 환단술에 몰두한 결과, 담을 치료하는 환약을 만들어 환자들에게 처방하기 시작했다.

제자들이 물었다. “이 환약은 어떤 약입니까?”
그러자 왕규는 “이 환은 습담(濕痰)과 담화(痰火)를 치는 약이다. 이 환은 청몽석, 황금, 대황, 침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때 청몽석(靑礞石)은 담을 치료할 때 반드시 습을 제거하기 위함인데 망초(芒硝)와 함께 항아리에 넣어 구워서 수치를 해서 사용해야 하고, 황금(黃金)은 가슴에 쌓인 무형(無形)한 모든 열을 식히기 위함이고, 대황(大黃)은 위와 장 속의 실질적인 화(火)를 제거하기 위함이고, 침향(沈香)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기를 돌려주고자 하는 의미로 담(痰)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火)를 식혀야 하기 때문이다. 이름은 곤담환(滾痰丸)이라고 지었다.”라고 했다.

내용을 보면 쉽게 만들 수 있는 환약이 아니었다. 그러자 한 제자가 “곤담(滾痰)이란 어떤 의미입니까?”라고 물었다.

왕규는 “곤(滾)자는 꿈틀거려 흐른다는 의미다. 즉, 쌓이고 뭉친 담(痰)을 흐물거리게 해서 장을 통해 빼내는 것이다. 오래된 담(痰)의 소굴을 직접 공격하여 담으로 인한 노폐물과 독(毒)을 신속히 쓸어버리고자 한 것으로 그래서 곤담(滾痰)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라고 했다.

왕규의 곤담환(滾痰丸)이 신묘한 효과가 나타낸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다양한 환자들이 곤담환으로 효과를 봤다. 습열(濕熱)과 담적(痰積)이 변해서 생긴 온갖 병, 극심한 변비로 인해 독이 쌓인 것, 온몸의 알 수 없는 통증, 전간(癲癎), 사기(邪氣)로 인한 제반 실증(實症), 무릇 오래된 병에 안팎으로 여러 잡증(雜症), 기존 의서에 처방이나 병증이 적혀 있지 않은 증상들, 그래서 변증을 할 수 없는 병들에도 모두 모두 효과가 있었다. 이처럼 담(痰)으로 인한 병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담병(痰病) 또한 많았던 것이다.

의원들은 자신들이 치료하지 못하는 환자를 왕 의원에게 진료를 부탁하기도 했다. 어느 날, 한 의원이 부인을 한 명 데리고 왕 의원을 찾아왔다.

부인을 데리고 온 의원은 “이 부인 평소 열담(熱痰)이 있고 또 월경이 고르지 않아 칠제향부환(七製香附丸) 같은 울체(鬱滯)를 풀고 혈(血)을 조절하는 처방을 매년 먹여 왔지만 끝내 효과가 없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왕 의원이 진맥해보니 육부(六腑) 맥이 모두 활삭(滑數)하였다. 바로 열담(熱痰)이 원인인 것이다.

“이것은 적담(積痰)과 울열(鬱熱)이 있는 것인데, 오직 어혈(瘀血)을 푸는 약으로 쓴다면 어떻게 효과가 나겠습니까?”라고 하고 곤담환으로 씻어내니 그 후에 월경이 고르게 되었다.

그런데 곤담환을 복용하고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환자들도 있었다.

“나는 의원님이 주신 환약이 효과가 하나도 없었소이다. 아무런 반응도 없으니 어찌 된 것이요?”하면서 따져 물었다.

그러자 왕 의원은 “어떻게 복용한 것입니까? 뭉글거리는 설사가 나왔습니까?”하고 묻자, “대변은 그냥 평소와 같소이다.”라고 답했다.

왕 의원은 “곤담환은 따뜻한 물로 반드시 잠자리 들기 전에 삼켜야 하고, 목으로 넘어가면 누워서 움직이지 말고 약효가 담이 막힌 곳으로 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다음 날 먼저 술지게미 같은 것을 설사하고, 그 다음에 담연(痰涎)을 설사하는데, 설사가 나오지 않으면 용량을 늘려서 다시 복용합니다. 용량을 늘려서 다시 드시기 바라오.”라고 설명했다.

정말 그랬더니 다시마 진액이나 끈적거리는 침 같은 대변을 보고 나서 몸이 가벼워지고 원래 있었던 증상이 점차 사라졌다. 왕 의원은 그때서야 용량을 줄여서 복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곤담환을 찾는 환자가 늘어가면서 부작용도 있었다. 어떤 사람이 위가 약하고 담(痰)이 성하여 입과 혀에 창(瘡)이 생겨 곤담환을 먹었더니 증상은 더 심해지면서 설사가 멎지 않았고 식욕이 떨어지고 기운이 없었다.

다른 의원을 방문해서 곤담환을 먹었다고 하자, 의원은 “당신은 위기(胃氣)가 상한 것이 원인입니다. 곤담환을 먹으면 안되는 사람이 먹은 것이요.”라고 하면서 향사육군자탕과 이어서 보중익기탕에 복령과 반하를 추가해서 처방하니 회복되었다.

이 환자는 위허(胃虛)로 인한 것으로 곤담환이 맞지 않는 증상이었다. 사실 이 환자는 곤담환이 좋다고 해서 진찰을 받지 않고 누군가로부터 얻어서 복용한 것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많은 의원들이 모여 왕규와 그의 처방인 곤담환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 의원은 “왕은군의 곤담환은 담병(痰病)에 특효지만 만병통치약이 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이요?”라고 했다.

또 다른 의원은 “왕은군은 내외백병(內外百病)이 모두 담(痰)에서 생긴다고 해서 곤담환을 만들었지만 담을 치료할 때 허실(虛實)을 구별하지 않고 공격만 한다면 역시 눈앞의 것만 알고 추후 발생할 해를 모르는 것이니 애석할 따름이요.”라고 했다.

또 다른 의원은 “오직 왕은군만은 담(痰)의 실상을 깊게 알아서 그 오묘한 뜻을 얻었고, 사람의 질병이 모두 담에서 생긴다고 하여 앞선 의원들이 알지 못했던 것을 밝혀 놓았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병에는 한열(寒熱), 허실(虛實)과 표리(表裏)가 있으니 이 점에 대해서는 구분을 소홀히 한 면이 있겠습니다. 당연히 담병(痰病)에도 한열과 허실의 차이가 있을 터, 어찌 모든 담병을 곤담환만으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정녕 곤담환을 창제한 왕규가 죽은 후였다.

왕규는 자신의 의술을 후세에 남기고자 <태정양생주론(泰定養生主論)>라는 의서를 저술했다. 책의 제목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태정(泰定)’ 즉,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된 사람만이 자연의 빛을 발한다는 구절과 ‘양생주(養生主)’편의 편명에서 단어를 뽑아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곤담환은 <태정양생주론>에 수록되어 있다.

왕규는 담병(痰病) 치료를 자신하면서 곤담환의 주의사항을 이미 명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습열(濕熱)과 담적(痰積), 담화(痰火)라는 적응증에 사용한다고 분명히 적어 놓았으니, 반대로 이러한 증상이 아니면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바로 허한증(虛寒症)에는 금해야 한다. 또한 십병구담(十病九痰), 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담(痰)이 많다 할지라도 담이 원인이 아닌 질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제목의 ○은 담(痰)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의부전록> 按古今醫統 :王珪, 字均章, 號中陽老人, 吳郡人. 志行高潔, 見道真明, 尤邃於醫學. 屏世慮, 隱居吳之虞山, 人稱隱君. 所著方書, 超出羣表. 自幼及壯至老, 調攝有序, 論證有旨, 至於諸痰諸飲挾火爲患, 悉究精詳. 製有滾痰丸, 最神效. 名泰定養生主論. (고금의통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왕규는 자가 균장이고 호는 중양노인이며, 오군 사람이다. 지조와 행실이 고결하였고, 도를 보는 것이 진실하고 명철했으며 또한 의학에 조예가 깊었다. 세상 근심을 끊고 오 땅의 우산에 은거했으므로 사람들이 왕은군)이라 불렀다. 그가 저술한 방서는 매우 출중하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장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조섭의 질서를 갖추었고 증을 논함에는 이치를 갖추었으며, 갖가지 담음이 화를 끼고 병을 일으킨 경우에 대해 정밀하고 상세하게 빠짐없이 연구하였다. 창제한 처방 중 곤담환이 실려 있는데 효과가 매우 신묘하다. 제목은 태정양생주론이다.)
<동의보감> 治濕熱痰積, 變生百病. 大黃(酒蒸)ㆍ黃芩(去朽) 各八兩. 靑礞石 一兩(同焰硝一兩入鑵內盖定, 鹽泥固濟曬乾, 火煆紅, 候冷取出, 以礞石如金色爲度), 沈香 五錢. 右爲末, 滴水和丸梧子大, 茶淸, 溫水任下四五十丸. 服藥必須臨睡, 送下至咽, 卽便仰臥, 令藥在咽膈之間徐徐而下. 漸逐惡物入腹入腸, 方能見效. (습열로 인한 담적이 변해서 된 모든 병을 치료한다. 대황. 술에 찐 것), 황금. 썩은 부분을 제거한 것 각 8냥. 청몽석 1냥. 염초 1냥과 함께 단지에 넣고 뚜껑을 덮어서 소금기 있는 진흙으로 단단하게 발라서 볕에 말린 후, 청몽석이 금색이 될 정도로 불에 벌겋게 달구었다 식혀서 꺼낸 것, 침향 5돈. 이 약들을 가루내어 물을 떨어뜨리면서 반죽하여 오자대로 환을 만든다. 찻물이나 따뜻한 물로 40~50알씩 먹는 데 반드시 잘 때 먹어야 한다. 약을 삼킨 후에도 곧 반듯이 누워 약이 목구멍과 흉격 사이에서 천천히 내려가도록 한다. 점차 나쁜 것들을 배와 장으로 몰아내면 효과를 보게 된다.)
<단곡경험방> 滾痰丸. 凡荏苒之疾, 內外諸般雜症, 百藥無效, 方書未嘗載其疾, 医者不能變其證, 服之無不效. 按此方, 以大黃 黃今, 大瀉陽明胃中濕炅盛, 礞石以墜下積痰, 沈香則因諸氣, 上而百至天, 下而至泉也. (곤담환은 무릇 오래된 병에 안팎으로 여러 잡증이 있어 어떤 약도 효과가 없고, 처방서에도 그런 병이 쓰여 있지 않아 의사도 변증을 할 수 없는 그런 병에 이 약을 복용하면 모두 효과가 있다. 이 처방을 살펴보면, 대황 황금으로 위의 습열이 넘치는 것을 크게 사하고, 청몽석으로 담적을 내리고, 침향은 모든 기를 머리꼭대기까지 올리기도 하고 발바닥까지 내려가게도 한다.
)
<동의보감> 惟王隱君, 論人之諸疾, 悉出於痰, 此發前人所未發, 可謂深識痰之情狀, 而得其奧者矣. 製滾痰丸一方, 總治斯疾, 固爲簡便, 較之仲景三因有表裏內外, 而分汗下溫利之法, 則疏闊矣. 況又有虛實寒熱之不同者哉. (오직 왕은군은 ‘사람의 질병이 모두 담에서 생긴다’고 하여 앞선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것을 밝혀 놓았으며, 담의 실상을 깊게 알아서 그 오묘한 뜻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곤담환이란 처방을 만들어 이 질병을 두루 치료한 것은 간편하기는 하지만 중경이나 삼인방에서 표리, 내외의 구분을 두고 한법, 하법, 온법(溫法), 이법(利法)으로 나누어 치료한 것에 비하면 소홀한 면이 있다.
더구나 담병에는 허실과 한열의 차이도 있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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