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결과는 대주주 완승...흥행 이끌었지만 연기금 벽은 높았다

김태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4.05 14:16

수정 2023.04.05 18:31

[첫발 뗀 주주행동주의···절반의 승리, 절반의 패배 上]
국내 시장에 행동주의 바람 일으켜...표 대결에선 패배
'반쪽짜리 승리' 평가...'완전히 패하진 않았다'는 해석도
다음 주총에선 전략 새롭게 짜야할 필요성도 제기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올해 주요 행동주의 펀드 주주제안 결과
기업 행동주의펀드 안건 결과
JB금융지주 얼라인파트너스운용 1주당 900원 현금배당 부결
김기석 사외이사 선임
KT&G 플래쉬캐피탈파트너스 1주당 1만원 현금배당
차석용, 황우진 사외이사 선임
자사주 소각 및 취득
안다자산운용 1주당 7867원 현금배당
이수형, 김도린, 박재환 사외이사 선임
BYC 트러스톤운용 1주당 1만7500원 현금배당
감사위원 선임
태광산업 1주당 1만원 현금배당
자사주 취득
남양유업 차파트너스운용 감사위원 선임 가결
1주당 1만원 현금배당 부결
에스엠 얼라인파트너스운용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 등 정관 변경 가결
한국알콜 트러스톤운용 감사위원 겸 사외이사 선임
1주당 500원 현금배당 부결
(각 사)
[파이낸셜뉴스] 행동주의펀드들이 시장에 존재감을 톡톡히 각인시켰다. 다만, 주요 주주들의 몸집에 밀려 실질적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행동주의펀드에서 시작된 '바람'을 미풍으로 치부하기엔 이르다는 평가와 함께 변화된 모습으로 제2막을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1차전은 ‘패배’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펀드가 주주제안을 하거나 특정 안건을 지지한 9개 기업 가운데 해당 안건이 통과된 곳은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와 남양유업, 한국알콜 3곳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대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3%룰’이 만들어준 감사·감사위원 선임 등 일부 안건에 그쳤다. ‘승리’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이들은 '행동주의(Activism) 바람'을 일으키는 등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표 대결에서 패배했다. 배당금 산정과 사외이사 선임을 놓고 맞붙은 지난달 30일 JB금융지주 주총이 대표적이다.

얼라인파트너스운용 지분(14.04%)은 최대주주 삼양사(14.61%)와 불과 0.57%포인트 차이였음에도 무력했다. 회사 측이 제시한 보통주 주당 715원의 배당과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가결됐다. OK저축은행(11.14%)과 국민연금(8.57%) 등 주요 주주가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KT&G 역시 최대주주인 국민연금(8.03%)을 자기편으로 내세워 승리를 챙겼다.

과감함 덜고, 합리성 얹고
국민연금의 힘이 막강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밀렸다기보다 행동주의펀드의 설득력이 부족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과감함이 과도함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는 게 핵심이다.

남양유업 주총에서 차파트너스는 ‘보통주 2만원, 우선주 2만50원 배당’을 안건으로 내놨다. 회사 측이 제시한 ‘보통주 1000원, 우선주 1050원’과는 무려 20배나 차이가 난다. 글로벌 의결권자문사 ISS는 회사 측에 섰다.

ISS는 이 밖에 얼라인(JB금융지주), 밸류파트너스운용(KISCO홀딩스), 트러스톤운용(태광산업) 등이 올린 안건에도 모두 '반대'를 권고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도 주주제안에 힘을 실어주기 힘든 환경이 조성됐고, '실패'로 그 무리함이 입증됐다는 지적이다.

주주가치는 명분이 아니라 제안이 의결돼야 제고될 수 있다. ‘이기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고, 행동주의펀드도 소액주주를 비롯해 지지세력을 끌어 모으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장에선 지분 대결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성원 트러스톤운용 부사장은 “미국에서도 처음부터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어거나 위임장 대결을 벌이는 대신, 비공개 대화부터 시작하는 사례가 많다”며 “해외 투자자들이 통상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을 따르는 만큼 이들과의 소통을 늘려야 할 필요성도 높다"고 말했다.

5%와 20%의 차이
행동주의는 지배구조 문제를 지닌 회사를 개선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고, 주주들이 단순 투자를 넘어 대상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가졌다. 남양유업 사례처럼 총수 일가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도 확인했다.

이에 따라 국내 증시에 행동주의가 안착될 여지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8년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재도약 기회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행동주의 캠페인 시장에서 한국의 비중(건수 기준)은 지난해까지 2% 미만이었으나 올해는 10%를 웃돈다.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양일우 삼성증권 ESG연구소 팀장은 “한국증시의 저평가가 유독 두드러져 디스카운트 요인이 해소되지 전까지 행동주의 캠페인은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라며 “해당 펀드의 수익률 상승으로 자금 유입이 지속된다면 더 큰 기업을 대상으로 영향력이 증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행동주의펀드가 표 대결에서 이기지 못했다고 해서 그 의미가 폄하돼선 안 된다”며 “이를 통해 주주들이 기업에 목소리를 내는 당연한 권리가 행사될 수 있는 흐름이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이어 “5%로 지는 것과 20%로 패배하는 일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며 “후자의 경우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은경완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단기 수익률 확보를 위한 무리한 요구는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영·재무 안정성 악화, 사회적 역할 축소 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운용사 광고 및 홍보, 운용자산(AUM) 확대 등을 목적으로 자극적이고 사익 추구 성격이 강한 활동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zoom@fnnews.com 이주미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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