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에 맥주가 소개된 것은 1871년 신미양요 때다.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배에 오른 문정관이 맥주 대접을 받은 일이 최초라고 한다. 이후 1933년 무렵 일본 맥주기업들이 서울에서 '소와기린맥주'와 '조선맥주'를 설립했다. 그러니까 올해는 국내 맥주산업 탄생 90주년이 되는 셈이다. 둘 다 영등포에 공장이 있었다. 광복 후 소와기린은 적산기업으로 미군정에 귀속되었고 상호도 동양맥주로 바뀌었다. 동양맥주를 인수한 사람은 1896년 출범한 한국 최고(最古) 기업 '박승직 상점'(현 두산그룹)의 후계자 연강 박두병이었다. 1952년 5월 민간기업으로 재탄생한 동양맥주(오비맥주)는 한국 맥주의 최강자가 됐다. 조선맥주도 광복 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월창 박경복 가계가 인수했다. 전쟁으로 맥주공장이 파괴돼 당시 맥주는 매우 귀한 술이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불법 맥주를 요정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 1953년 8월 공장이 재건돼 서울 명동과 을지로 1가에는 비어홀이 생겼다. 주한미군에도 납품됐고 요즘의 와인처럼 연말연시 선물로도 쓰였다.
오비와 크라운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져 갔다. 독일에서 맥주 제조 전문가를 초빙해 조언을 받고 광고모델로도 썼다. 오비맥주는 독일에서 루돌프 쇼테 박사를 초청, 생맥주를 개발해 광고를 냈다(사진·경향신문 1955년 5월 13일자). 생산한 지 하루만 지나면 변질되는 생맥주를 20일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1991년 두산전자의 페놀 방류사건이 맥주 업계의 판도를 뒤집었다. 오비맥주까지 치명타를 입은 것이다. 만년 2위였던 크라운맥주는 암반수로 만들었다는 '하이트'로 오비를 눌렀다. 이후 오비맥주는 주인이 네 번이나 바뀌는 비운을 겪었다. 옛 진로그룹도 무너졌고 소주는 하이트가, 맥주는 오비가 인수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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