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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약방을 비운 아비는 딸의 OOO 덕분에 죄를 면했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4.15 16:03

수정 2023.04.16 03:01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상소문의 종류들. 조선시대의 상서(上書, 작자 미상)(왼쪽)와 1881년에 진주 유생들이 연명하여 진주목사에 올린 품목(稟目)(가운데), 그리고 1842년 경상 우도 유생들이 암행어사에게 올린 진정서(오른쪽).
상소문의 종류들. 조선시대의 상서(上書, 작자 미상)(왼쪽)와 1881년에 진주 유생들이 연명하여 진주목사에 올린 품목(稟目)(가운데), 그리고 1842년 경상 우도 유생들이 암행어사에게 올린 진정서(오른쪽).

먼 옛날 제나라에 순우의(淳于意)라는 의원이 있었다. 그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면 낫지 않는 이가 없었고, 생사(生死)를 판단하면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순 의원이 명의로 소문이 나자 주위의 많은 권세가들이 왕진을 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먼 곳으로의 왕진 때문에 장기간 약방을 비우기 일쑤였고, 약방을 찾은 병자들이 그를 원망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투서(投書)가 날아들었다.
내용인즉슨 자신의 노모가 의원이 약방을 자주 비우는 통에 지속적인 처방을 받지 못해 결국 죽게 되었느니 벌을 내려달라는 것이다. 이런 투서가 한두 장이 아니었다.

순 의원은 장안(長安)으로 압송되었다. 그에게는 다섯 명의 딸이 있었는데, 딸들은 포박되어 압송되는 아비를 뒤따르면서 울부짖었다.

순 의원은 울고 있는 딸들에게 “자식을 낳아도 모두 딸 뿐이니 이럴 때 쓸만한 아들이 없음이 애석하구나! 그 울음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하면서 울음을 그치도록 했다.

아비의 호통에 딸들은 울음을 그쳤다. 아비가 역정을 내서이기도 했지만, 아비의 말을 듣자 하니 딸인 자신들의 울음이 의미가 없는 듯 해서였다. 그러나 막내딸만은 마음이 아파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아비의 말을 애달파하며 아비를 따라서 장안까지 가서 상소를 올렸다.

상소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저의 아버지는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치료를 행하신 것이 죄라면 죄입니다. 지금 투서에 의해 형벌을 받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제 아버지가 죽게 된다면 그 목숨은 다시 살릴 수가 없고 팔다리가 잘린다면 다시 이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비록 제 아비가 허물을 고쳐 새사람이 되고자 하여도 끝내 도리가 없어 그리하지 못함이 몹시 애통합니다. 제가 아비 대신 관비로 들어가 아비의 형벌을 갚고자 하오니 제 아비에게 선처하여 기회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제 아비를 살려두시는 것이 병자들을 위한 선(善)이 되실 겁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딸의 상소문 내용이 알려지지 알려지자 황상(皇上)이 순 의원을 불렀다.

황상은 “네 딸의 상소문을 읽어 보니 너를 살려두는 것이 병자들을 위한 선(善)이라고 했는데, 내가 너의 의술에 대해 알지 못하니 몇 가지를 묻겠다. 너는 의술을 어떻게 익혔고 누구에게서 배웠느냐? 남김없이 대답하도록 하라.”라고 명했다.

순 의원은 잠시 눈을 감더니 지금까지의 일들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순우의는 젊을 때부터 방술(方術)을 좋아해서 의서를 익히고 환자들을 치료함이 뛰어났다. 아주 젊어서부터 이름을 날려 문왕이 치료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문왕의 병을 고친다면 자신에게 관직을 줄 것이 분명했고, 관직이 싫어서 부름을 거절하고 호적을 옮기면서까지 거처를 떠돌았다.

이렇게 여기저기 떠돌던 중에 공손광(公孫光)이란 의원을 만났다. 그는 공 의원이 의술이 뛰어남을 알고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공 의원은 “나의 의술은 이미 다 전했네. 나는 이미 노쇠해서 가르치는 것도 힘이 들고 이미 더 이상 나에게 배울 것이 없네. 이것은 내가 젊었을 때 전수한 묘방(妙方)들인데 모두 자네에게 줄 테니 남에게 가르쳐주지 말게.”라고 했다.

사실 비전(祕傳)이란 것들은 예부터 이렇게 개인적으로 전수되었다. 순 의원 또한 말년에 누군가에게 ‘자네에게만 전해 주는 것이네.’라면서 전수할는지 모를 일이다.

순 의원의 당시 나이는 26세였다. 이후로 약방에 나오지 않는 공 의원 대신 순 의원 혼자서 환자를 보면서 전수한 방술을 더욱 깊이 연구하여 백세(百世)의 정묘한 의술이라는 평판을 얻기 시작했다.

공 의원은 기뻐하면서 “자네는 반드시 나라에서 손꼽는 명의가 될 걸세. 그런데 나보다 의술이 뛰어난 의원이 한 분 계시네. 바로 양경(陽慶)이라는 분이지. 내가 중년 시절에 그의 방술을 전수하고자 한 적이 있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네. 양경의 나이도 벌써 70이 다 되어 이미 늙었으니 자신의 의술을 전해 줄 이를 찾고 있을지도 모르네.”라고 했다.

사실 양경은 의술이 뛰어났지만 남의 병을 치료하려고 하지 않아서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던 중 마침 양경의 아들이 말을 헌상(獻上)하러 왔다. 헌상이란 임금에게 진상품을 바치는 일인데, 알고 보니 공손광은 태의원 출신으로 왕실과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에 공손광을 통해 말을 왕에게 바칠 수 있었다.

공 의원은 이 아들에게 순 의원을 부탁하면서 “순 의원은 의술에 뛰어나니 자네는 그를 자네의 집에 잠시 머물게 하면서 정중하게 대우해야 하네. 그리고 이 편지를 아버님께 전해 주게나.”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순 의원은 양경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양경의 집은 부유했다. 그래서 먹고 사는데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아들도 아버지의 대를 이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경 또한 순 의원의 사람됨과 의술을 높이 평가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의술을 전수해 주었다.

사실 순 의원은 양경이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보지 못해 그 의술을 직접 평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양경 곁에 3년 동안 머무르며 양경의 방서(方書)와 금서(禁書)를 모두 사사하니 처방은 정묘했으며 직접 처방을 시험해 보니 그 효험이 놀라울 정도였다. 순 의원은 이처럼 황상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고했다.

황상이 “너는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라고 묻자, “스승님이 작고하신 지 10년이 되었으니 제 나이는 이제 39세가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아직 젊었다.

그러자 황상은 “너는 누구를 어떻게 치료해 봤느냐?”하고 물었다.

순 의원은 “어느 날 제나라 왕의 희첩의 오라비의 집에서 주연을 베풀어 손님을 청할 때 저를 불렀습니다. 초청된 손님들이 앉고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았을 때 저는 왕후의 동생을 보고, 그에게 ‘군(君)에게는 병이 있습니다. 지금 허리가 아프고 소변도 시원하지가 않습니다.’라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왕후의 동생은 ‘아니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는 지금 요척통(腰脊痛)이 있습니다. 몇 년 전 동무들과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놀이를 하다가 그날 저녁부터 허리와 등줄기가 아프고 소변을 볼 수가 없더니 지금까지 낫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병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그의 안색을 보니 태양혈 부위의 색택이 건조하고 귀가 초췌하게 말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팔미환을 복용시켰더니 보름만에 병이 나았습니다.”라고 했다.

또한 “치천왕이 극심한 두통이 생겨서 저를 불렀습니다. 진맥한 결과 담음(痰飮)으로 생긴 담궐두통(痰厥頭痛)으로 머리가 아프고 몸에 열이 나며 환자는 번거롭고 답답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세상 사람들이 흔하게 겪는 위장형 두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족양명위경의 족삼리혈, 함곡혈, 해계혈 좌우 혈자리 각 3군데에 자침하자 두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습니다.”라고 했다.

순 의원은 “그 밖에도 진찰하여 기일을 예측하고 생사를 판단한 일,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한 일이 많으나 오래되어 거의 잊어버리고 다 기억하지 못하므로 감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황상은 “그렇다면 자네가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하는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으니, 순 의원은 “제가 병자를 치료할 때는 반드시 그 맥(脈)을 짚어 보고 나서 치료하는데, 맥이 병정에 어긋나는 경우는 치료할 수 없고 순(順)한 경우라야 치료합니다. 허나 마음을 집중하여 진맥하지 못하면 생사를 예측하거나 치료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 때때로 틀리게 되니, 아직 의술이 완벽하지 못한 것이 한입니다.”라고 했다.

황상은 다시 “겸손하구나. 그렇다면 너에게 의술을 사사하는 제자가 있느냐?”라고 묻자, 순 의원은 “지금 약방에 함께 기거하는 제자들이 몇 명 있고 그 중 명석한 의원이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얻었듯이 제가 죽기 전 저의 모든 방서를 그 의원에게 전해 주려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때 갑자기 신하 중 한 명이 급히 문서 꾸러미를 가지고 나타났다. 순 의원이 장안으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에 순 의원으로부터 치료를 받아서 완치된 자들의 탄원서들이었다.

“순 의원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또는 “순 의원이 아녔다면 저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벌하지 말아 주소서.”라는 내용들이었다.

황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은 잠시 내신들과 상의를 하더니 “내가 너를 벌해서는 안 되겠구나. 앞으로 의술에 더욱 매진하도록 하거라. 네 딸의 말처럼 너를 살려두는 것이 병자들을 위한 선(善)이 될 것 같구나. 그리고 앞으로 왕진을 금하니 그 어느 권세가가 불러도 약방을 비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네 의술이 뛰어남을 알았지만 나도 너를 부르지 않겠다.”라고 했다.

순 의원은 딸의 상소문 덕분에 벌을 받지 않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막내딸에게 “네 덕분에 아비가 살았구나. 네가 아들보다 낫다.”라고 하면서 앞으로 약방에서 함께 자신의 진료를 돕도록 했다. 그날부터는 순 의원은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왕진을 사양하면서 약방에만 머물며 자신을 찾는 환자들의 치료에 집중했다. 환자들이 아파 약방을 찾으면 순 의원은 항상 그곳에 있어 다행이었다.

* 제목의 ○○○은 상소문(上疏文)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의부전록> 醫術名流列傳. 淳于意. 按史記本傳, 太倉公者, 齊太倉長, 臨菑人也, 姓淳于氏, 名意. 少而喜醫方術, 高后八年, 更受師同郡元里公乘陽慶. 慶年七十餘, 無子, 使意盡去其故方, 更悉以禁方予之, 傳黃帝扁鵲之脈書, 五色診病, 知人死生, 決嫌疑, 定可治, 及藥論甚精. 受之三年, 爲人治病, 決死生, 多驗. 然左右行遊諸侯, 不以家爲家, 或不爲人治病, 病家多怨之者. 文帝四年中, 人上書言意以刑罪, 當傳西之長安. 意有五女, 隨而泣, 意怒罵曰:“生子不生男, 緩急無可使者!” 於是少女緹縈傷父之言, 乃隨父西, 上書曰:“妾父爲吏, 齊中稱其廉平. 今坐法當刑, 妾切痛死者不可復生, 而刑者不可復續, 雖欲改過自新, 其道莫由, 終不可得. 妾願入身爲官婢, 以贖父刑罪, 使得改行自新也.” 書聞, 上悲其意, 此歲中亦除肉刑法.)
(의술명류열전. 순우의. 본전에 의하면 태창공은 제나라 태창장을 지냈으며, 임치 사람으로 성은 순우씨이고 이름은 의이다. 젊을 때부터 의학의 방술을 좋아하였으며 고후 8년에 같은 군원리의 공승인 양경에게서 다시 가르침을 받았다. 양경은 나이가 70여 살이었으나 후계자가 없었으므로 순우의로 하여금 알고 있던 방술을 다 버리도록 하고 대신에 금방을 모두 그에게 내주었으며, 황제와 편작의 맥서, 오색으로 병을 진찰하여 사람이 죽을지 살지를 알고 의심스러운 것을 결단하며 치료할 수 있는지를 판정하는 법, 그리고 매우 정묘한 약론을 전해 주었다. 3년 동안 전수받고는 남을 위해 병을 치료하거나 사생을 판단하여 들어맞은 것이 많았다. 그러나 이리저리 제후(諸侯)들에게로 나다니느라 집에 머무르지 않아, 혹 남의 병을 치료해주지 않기도 했으므로 병자들의 집에서 그를 원망하는 자가 많았다. 문제 4년에 어떤 사람이 투서를 올려서 순우의가 형벌 받을 죄를 지었다고 하여, 서쪽으로 압송되어 장안(長安)에 가게 되었다. 순우의에게는 다섯 딸이 있었는데, 뒤따르면서 울자 순우의는 성을 내며 꾸짖었다. “자식을 낳아도 아들을 낳지 못했더니 급할 때 쓸 만한 녀석이 없구나!” 이에 막내딸 제영이 아버지의 말을 애달파하여, 마침내 아버지를 따라 서쪽으로 장안까지 가서 상소문을 올렸다. “저의 아비가 관리로 있을 때 제 땅 사람들은 그의 청렴함과 공평함을 칭송하였습니다.
지금 법에 걸려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가 없고 형벌로 잘린 몸은 다시 이을 수가 없으니, 비록 허물을 고쳐 새사람이 되고자 하여도 그리할 도리가 없어 끝내 되지 못하는 것이 저는 몹시 애통합니다. 제가 관비로 들어가 아비의 형죄를 갚아서 그가 행실을 고치고 새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 상소가 알려지자 황상이 그 마음을 가엾게 여겨, 이 해에 또한 육형의 법률을 폐지하였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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