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대로 가면 큰일..연봉격차 심해" 고대 김동원 총장

윤홍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4.18 08:54

수정 2023.04.19 09:01

노사, 경영석학의 한국사회에 제언


김동원 고려대 총장이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서울캠퍼스 본관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김동원 고려대 총장이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서울캠퍼스 본관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이대로 가면 큰일이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노동 양극화 문제를 해소해야 합니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63)이 노사 관계 개선방안에 대해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갈수록 커지는 노동계 격차를 줄여야 지금의 경제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총장은 "양극화는 국가의 위험 요소이자 공멸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일 고려대 제21대 총장으로 취임한 김 총장은 국내 고용·노사관계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을 비롯해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회장,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14일 김 총장을 만나 노사 문제 해법, 대학의 위기, 고려대의 미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노사정 대타협으로 위기 극복해야"
김 총장은 노사 문제와 관련해 과거와 달라진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 총장은 "1990년대 말에는 노조가 약하고 사용자들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게 이슈였지만 지금은 다르다"면서 "일부 정유사 노동자는 평균 연봉이 1억5000만원에 이르는 반면, 아주 열악한 상황에 처한 노동자도 있는 게 문제"라고 분석했다.

이어 "대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해 연봉을 꾸준히 올리는데, 영세 기업은 연봉을 올리기 어렵다"라며 "미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연봉차가 1.5배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3배 정도 차이가 난다. 고액 연봉자의 연봉을 더 높이는 것을 자제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총장은 "이대로 가면 나라가 위험하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노사정 대타협을 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단 한번 노사정 대타협이 있었다. 위기가 아니면 대타협이 이뤄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자신이 기아자동차 사외이사를 맡으며 체득한 경험에 대해선 "현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라며 "교과서에 없는 답이 현장에 있는 경우가 많다. 현장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발견했고 이를 토대로 논문을 쓰기도 했다"고 답했다.

김 총장은 국가가 위기일수록 대학의 역할이 중요해진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4차산업 혁명이 진행되면서 사회가 급격히 바뀌고 있다"며 "기업은 새로운 변화를 좇기 마련인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을 전수해 줄 곳은 대학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과거에는 기존 지식이 불필요해지는 '반감기'가 40년쯤 됐다면 이제는 7~9년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사람이 평생동안 직장을 3~4번씩 바꿔야 하는 시대이다 보니 새로운 지식을 습득시킬 대학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학 규제 완화 바람직…속도 내야"
김 총장은 대학이 사회에서 충분한 역할을 하기 위해선 투자와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15년간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재정난이 악화되는 대학의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라며 "우리나라는 사람이 경쟁력 그 자체인 나라인데 사람을 키우는 대학이 쇠퇴하면 국가에 도움이 되겠나"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대학에 대한 투자가 너무 부족해서 지방대의 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대학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에 대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대학이 살아나기 위해선 관련 규제가 완화되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현 정부가 대학의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했다. 다만 단순히 발표에 그치지 않고 보다 과감히 속도를 내야 한다고 첨언했다.

그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부터 교수, 등록금까지 촘촘한 규제가 있다. 학교마다 인재상이 다른데 선발에 지나치게 규제를 두는 것은 똑같은 인간형을 찍어내라는 것"이라며 "입시 제도에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정부도 다양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취임 이후 대학 규제가 완화되고 있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라며 "내놓은 계획을 조금 더 속도감있게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고려대의 등록금과 관련해 "당장 인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다양한 수익 모델을 마련해서 새로운 운용 모델을 만들고 등록금 의존비율을 낮추려고 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계의 문제가 되고 있는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선 노동 시장의 불균형이 만들어 낸 하나의 병리 현상이라고 짚었다. 사회 불안정성이 심화되면서 비교적 안전한 미래를 보장받는 전문직에 대한 선호가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총장은 "의대 쏠림 현상은 교육 문제같지만 사실은 노동 시장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며 "과거에는 의대가 지금만큼 높진 않았다. 우리 학교만 해도 화학공학과가 의대보다 높던 시절이 있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IMF 시절 많은 월급을 받던 봉급쟁이들이 구조조정 당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 사회 풍토가 전문직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며 "첨단분야 인재를 양성하고자 한다면 엔지니어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엔지니어에 대한 처우가 지금 보다 높아진다면 재능 있는 학생들이 의대로 몰릴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스타트업 연구원 통해 교내창업 지원
고려대는 지난 2016년 창업가 양성 플랫폼인 '스타트업 연구원'을 경영본관 2층에 마련하며 학생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아이디어 공유와 협업의 장을 제공한다는 의도다.

김 총장은 "지난 30년간 국내 대기업 순위를 보면 네이버와 카카오를 제외하고는 크게 변한 게 없다"라며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이 나와야 하는데 나라의 전망이 정체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려대는 학생들의 창업을 도와 발전 정체 흐름을 개선하는 데 앞장 서겠다"라며 "대기업 총수 가운데 고려대가 길러낸 인물이 수없이 많지 않나. 우리에겐 사업을 키우는 DNA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고려대 세종캠퍼스의 발전 가능성도 빼놓지 않고 언급했다. 그는 "세종캠퍼스의 과학기술대와 약학대에서의 발전이 두드러지고 있다"라며 "상업수도인 서울에는 안암캠퍼스가 행정수도인 세종에는 세종캠퍼스가 자리잡아 균형을 맞추는 모양새"라고 평했다.

고려대는 최근 국내 대학 최초로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김 총장은 국내외 기업들이 이미 AI시장에 뛰어든 만큼, 학생들이 생산적으로 챗GPT를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김 총장은 "과거에는 수업 중 계산기 사용여부가 논란이 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많은 대학에서 계산기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라며 "학생들이 보다 차원 높은 문제를 푸는 데 에너지를 할애하게 된 것. 챗GPT도 학생의 창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또 다른 교육 도구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복적 영역은 AI기술을 수용해 해결하고, 추가 확보된 인력은 창의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쓰면 된다"면서 "앞으로 교수의 역할도 기존 지식전달자의 역할에서 연구의 조력자로 더욱 빠르게 변화할 거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고려대는 GPT 등 AI모델을 대학 운영에도 활용할 예정이다. 학생들이 수강신청, 진로, 규정 등의 키워드를 검색할 시 AI가 이에 즉각 응대해 편의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이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서울캠퍼스 본관 앞에서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김동원 고려대 총장이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서울캠퍼스 본관 앞에서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개교 120주년에 고대 인프라 완성
고려대는 최근 학생들에게 단돈 1000원에 아침밥을 제공하는 '천원의 아침밥' 행사를 확대 시행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사업은 김 총장이 취임 후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중 학생들의 물가 관련 고충을 전해 들으면서 확대중이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아침밥을 든든히 먹을 수 있게 하겠다는 김 총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천원의 아침밥' 행사는 시행 후 나흘간 평균 900명의 학생이 몰릴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김 총장은 "학생들 중에는 스포츠카를 끌 정도로 부유한 학생도 있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학생들도 많다"라며 "아침에 식사를 하려고 해도 이른 시간에 영업하지 않은 식당이 많은데, 학교가 아침밥을 싸게 제공하니 반응이 좋은 것 같다"며 미소를 띠었다.

행사 예산과 관련해선 "6000원 수준의 아침식사를 학생들에게 1000원에 제공하는 건데, 전체적으론 정부에서 5600만원을 지원하고, 학교에서 4억원 정도를 투입하고 있다"며 "학교 예산 4억원은 고려대 동문들이 기부했다. 선배들이 후배를 위해 아침밥을 마련해주는 개념이라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고려대는 김 총장 재임 기간 중인 2025년에 개교 120주년을 맞이한다.
김 총장은 이 시기에 맞춰 학교의 연구·교육 인프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총장은 "정보, 바이오, AI 등 새로운 학문의 개발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이를 연구하기 위한 인프라도 꾸준히 늘려가야 한다"며 "현재 인문관 건립을 위한 자금도 거의 확보됐고 자연계 중앙광장을 지을 계획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을 위한 인프라는 완성하고 대학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대담: 김경수 전국부 부장· 정리: 윤홍집 기자 banaffle@fnnews.com
◆김동원 고려대 총장 약력 △1960년생 △고려대 경영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교 노사관계학박사 △뉴욕주립대 경영대학 교수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한국ILO협회 상임이사 △중앙노동위원회·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고려대 경영대학원장 겸 경영전문대학원장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회장 △고려대 제21대 총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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