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한국 현대사를 오롯이 목격한 공간, 예술로 그 기억을 소환하다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4.24 18:28

수정 2023.04.24 18:28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기억·공간展'
국내외 작가 9명이 23개 작품으로 참여
회화·사운드·조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관 안팎에서 과거·현재의 경험 표현
"시대와 함께 계속 변화하겠다는 선언"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미술관이 주제기획전 '기억·공간'을 오는 7월 23일까지 개최한다. 사진은 문승현 작가의 '미술관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2023)'. 뉴시스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미술관이 주제기획전 '기억·공간'을 오는 7월 23일까지 개최한다. 사진은 문승현 작가의 '미술관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2023)'. 뉴시스
이번 전시에서는 시대에 따른 사회 변화를 목격한 아르코미술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양한 결의 '기억'에 주목해 역사 연구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간의 역사를 사유하고 기록하는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고찰한다. 뉴시스
이번 전시에서는 시대에 따른 사회 변화를 목격한 아르코미술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양한 결의 '기억'에 주목해 역사 연구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간의 역사를 사유하고 기록하는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고찰한다. 뉴시스
"지난 2015년 유방암 수술을 받고 걸어서 이곳 아르코미술관에 왔어요. 그때 살아남은 저와 달리 죽은 여류작가가 여럿 있었어요. 이번 '기억·공간'전을 준비하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김경민 작가)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이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미술관이 주제기획전 '기억·공간'을 오는 7월 23일까지 개최한다.
미술관의 공간·장소성을 동시대 작가들의 경험·사회적 기억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고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조명하는 무료 전시다.

■ "사회와 함께 변화하겠다는 선언적 전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 있는 붉은 벽돌 건물 아르코미술관은 바로 옆 아르코극장과 함께 오늘날 대학로의 대표적 상징물이 됐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경성제국대에 이어 서울대 문리대가 자리했으며, 1960년 4.19혁명이 시작된 곳이다. 1979년 한국 최초로 동시대 미술을 위한 공공 전시장으로 완공됐으며, 1960~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1990년대 이후 청년문화와 소비문화가 주도한 사회 변화 등을 목도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임근혜 관장은 개막을 앞두고 "지난 3년간 아르코미술관은 환경, 생태, 지역, 경계, 이동 등 첨예한 삶의 주제를 전시 주제로 발굴하고 많은 호응을 받았다"며 "올해는 예술위 설립 50주년을 앞두고 미술관이 사회와 맺는 새로운 관계들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술관 파사드에서 반짝이는 눈을 봤냐"고 물었고 "건물의 네모난 창에 박민하 작가의 페인팅 그림(작품명 눈)이 붙어있다. 이 자리에서 사회 변화를 목도하고, 시대와 함께 호흡한 미술관이 앞으로도 함께 변화해나가겠다는 선언적 전시"라고 부연했다. 박민하 작가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반, 이곳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그때의 기억이 아주 강하게 남아있다"고 돌이켰다.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퍼포먼스, 영상, 사운드설치 등 국내외 작가 9명(팀)의 신작 23점으로 구성됐다. 비단 전시장뿐만 아니라 아카이브라운지, 통로, 화장실 등 미술관 곳곳에 작품이 전시·설치됐다. 야외 로비에 설치된 이현종 작가의 '아마데우스 의자'는 공원을 향해 앉아 소리로 미술관의 과거와 현재를 경험하게 한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환대받지 못한 다양한 소리들, 일테면 외국어, 추상적 소리, 정치적 메시지, 동물의 언어 등을 채집·샘플링하고 믹싱한 그는 전자음악, 힙합, 테크노가 어우러진 사운드로 미술관 안팎과 시간의 경계를 넘나든다.

전지영 큐레이터는 "작가들은 미술관 주변에 대한 기억을 파노라마로 연결하고(김보경),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온 문화적 에너지를 1990년대 사이버 문화의 이미지로 표현하고(박민하), 미술관에 대한 개인의 기억과 장소의 서사를 텍스트에 기반한 이미지로 재구성(윤향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관의 시간을 기록한다"고 설명했다. 또 마로니에 공원을 정치적 시위와 거리 문화의 열기가 교차하는 '광장'으로 바라보고(안경수), 유기적인 이미지를 중첩시켜 모더니즘 건축물의 견고함에 균열을 낸다(황원해).

■ 건축을 통해 바라본 장애 담론

전시장 2층에는 입구가 두 개인 흰색 가벽이 세워져있다. 그곳에 들어서면 두 개의 화면에 서로 다른 영상이 흘러나온다. 오른쪽에는 아르코미술관을 상징하는 빨간 벽돌 건물을 중심으로 계단 이미지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다른 한쪽에선 장애가 있는 한 남자가 미술관의 여러 공간에서 이상한(?) 행위를 한다. 로비 바닥을 쓰다듬거나 옥상에서 점프를 하는 식이다. 비디오 속 주인공은 화가이자 기획자, 퍼포머, 작곡가 그리고 시인으로 활동 중인 문승현 작가다. 문 작가의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담은 이는 미디어아티스트 김경민 작가다. 태어날 때부터 뇌병변 장애가 있었던 문 작가와 달리 김 작가는 30대 초반 유방암 절제술과 항암 치료를 계기로 장애 담론에 관심을 갖게 됐다.


김 작가는 "권위가 중시되는 시기에 만들어진 아르코미술관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 아니다. 유리창도 안쪽으로 향해 있어 내부를 보여주지 않고 가린다는 느낌이 있다.
문승현 작가와 이 건축물의 폐쇄성을 격파하고 싶었다"며 신작 '전시장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2023, 2채널 비디오)에 대해 설명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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