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

[재팬 톡] "부의 대물림이라도..." 일본 정부의 호소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서는 '부의 대물림'이 되지 않는 것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의 대물림을 흔히 빈부 격차와 계층별 갈등을 부추기는 죄악의 관점으로 보지만, 일본에서는 수명이 늘어난 노인들이 대부분의 부를 꿰차고 앉아 더 큰 사회·경제적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잃어버린 30년' 동안 "오로지 절약 만이 최고의 재테크다"라고 학습한 일본 노인들은 임금을 소비하지 않는 게 오랜 습관이 됐다. 긴 불경기에서 저축은 생존을 위한 정답이 맞았다. 그러나 소비 진작으로 성장을 꾀하는 최근에는 일본을 '돈맥경화' 상태에 빠지게 한 원인으로 취급받고 있다.

확실한 생존 경험이 있는 노인들의 행동은 바뀌기 어렵다. 실제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65세 이상 근로자 가구(2인 이상)가 지난해 저축으로 돌린 금액은 월평균 11만엔으로 10년 전의 3배가 넘었다. 이들 가구의 월 수입은 약 45만5000엔인데 소비지출과 사회보험료 등의 납부 금액 35만2000엔을 뺀 여웃돈을 모두 저축에 사용했다.

또 재산을 남기고 숨진 피상속인이 80세 이상이었던 비율은 72%까지 높아졌다. 상속을 받은 자녀의 나이는 통상 50세가 넘었다. 초고령층이 고령층에게 부를 이전하고, 20~40대 젊은 층은 부양의 책임만 지는 구도가 됐다.

노인들의 금융 자산은 대부분 예금과 현금으로 은행 통장과 장롱 속에서 늙어 가고 있다. 주식 시장에서도 일본 개인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의 67%를 60세 이상 고령자가 갖고 있다. 더 이상 투자 리스크를 떠안을 필요가 없는 고령자들은 투자금이 남아돌고, 기꺼이 리스크를 떠안으려는 젊은이들은 투자할 돈이 없다.

일본 언론에서는 고령자의 저축이 소비나 투자로 돌려 세대 간 부의 이전을 유도하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주문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금융 자산은 60세 이상이 전체의 60%를 초과하는 1200조엔을 안고 있다"며 "금융 자산이 일정 이상의 고령층에서만 계속 돌면서 젊은 층에는 퍼지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부의 대물림이 중단돼 국가적 돈맥경화 상태에 놓인 일본의 상황이 남 일처럼만은 안 보인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본이 겪은 문제는 크든 작든 10~20년 뒤 우리의 문제가 된다. 초고령화 사회도 우리에게 멀지 않은 미래인 건 마찬가지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먼저 길을 떠난 일본이라는 네비게이션이 있다.
갈 길이 뻔하다면 준비해야 한다. 생전 증여를 촉진하는 세제를 재검토하거나 고령 자산가들의 소비와 투자를 유도하는 세제 및 사회보장제도를 손보는 방식 등을 고민해야 한다. 10~20년 뒤 '부의 회춘' '부의 이전'이라는 철 지난 일본의 슬로건을 부랴부랴 찾고, 그조차 겨우 답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