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전세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갭투자 대상이 없어져 집값을 밀어올리는 부작용은 줄게 된다. 전세사기로 피눈물을 흘리는 피해자들도 없을 것이다. 반면 세입자들이 유일하게 갈 곳은 월세뿐이다. 뭐든 한곳으로 집중되면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선진국처럼 도심지 한달 임대료가 수백만원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내집마련의 꿈도 멀어져간다. 한 가구가 최저생계비로 월세를 감당하면서 집을 사기 위해선 얼마나 걸릴지 따져보자.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올해 3월 기준 수도권의 아파트, 연립, 다세대, 단독주택을 포함한 종합주택의 평균치는 집값 5억5419만원, 월세와 보증금은 각각 93만3000원, 8733만원이다. 통계청의 지난해 4·4분기 전체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83만원이다. 현재 법적으로 정한 최저생계비(1인가구)는 약 124만원이다. 소득에서 월세와 최저생계비를 제외하면 한달에 저축할 수 있는 돈은 266만원으로 연간 3200만원가량이다. 집값과 보증금의 차액인 4억6686만원을 만들기 위해선 약 14년6개월간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하지만 전세가 없어지면 월세 쏠림으로 임대료는 오를 게 자명하다. 더구나 10년 이상 월세와 집값, 물가 등이 제자리에 있을리 만무하다. 월세부담이 커지면 목돈 모으기는 요원해지고, 내집마련 시기도 장담하기 어렵다. 주세와 월세가 일반화된 서구에서 자가로 이동하기 쉽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세가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과 오랜 기간 함께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전세사기는 우리가 방심한 사이 시스템을 뚫고 들어온 바이러스나 다름없다. 즉 관리의 문제다. 근본적으로 임대사업자가 수백채를 보유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맞는 건지 되짚어봐야 한다. 기업들도 문어발식 확장에 제약을 받는 마당에 개인은 부동산시장에서 사실상 무한대로 임대사업이 가능한 구조다. 한채당 전셋값이 1000만원씩만 떨어져도 100채면 10억원이다. 이만 한 돈을 제때 내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아니면 연쇄부도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 몫이다. 당장 전세를 없앨 수 없다면 제도를 탓하기보단 순기능은 극대화하고, 역기능은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서민 주거안정의 기여도를 높이는 게 최선책이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건설부동산부장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