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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 칼럼] 100년 후 근로시간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5.08 18:35

수정 2023.05.08 18:51

[최진숙 칼럼] 100년 후 근로시간
"지금 우리는 옳지 않은 경제적 비관주의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20세기 경제학의 거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에세이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을 쓴 때가 1930년이다. 케인스는 살벌했던 대공황 한복판에서 현실을 넘어 100년 후 미래를 봤다. 2030년쯤엔 생활 수준이 여덟 배로 높아질 것이며 생존보다는 잘사는 것에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생산성은 급격히 좋아져 주당 근로는 15시간으로 족할 것이라는 게 케인스가 본 미래다.

세계가 멸망할 것 같던 시기 눈이 휘둥그레질 대담한 예측이었다.
전망은 기막히게 들어맞은 것도 있고 완벽히 빗나간 것도 있다. 케인스 후예를 자처한 세계 경제석학 10명은 케인스를 돌아보며 미래보고서 '새로운 부의 시대(2013년)'를 펴냈다. 이들은 케인스의 놀라운 안목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주 15시간은 거의 공상과학에 가깝다"는 평을 했다. 그렇다면 다시 앞으로 100년 후면 근로시간이 확 줄어들까. 석학들은 여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주목한 것은 부의 팽창과 커지는 노동의 대가다. 사람들의 욕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강력한 인센티브가 일의 양을 줄이지 못하게 한다고 본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회의적인 시각은 어찌 보면 미국적이다. 미국에서 풀타임 근로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세기 전반기 계속 줄다가 후반기로 갈수록 하향세는 뚜렷하지 않거나 아예 사라진다. 유럽의 경우 주 40시간 체제가 미국보다 늦었지만 지금은 미국보다 연간 300시간가량 근로가 적다. 로버트 솔로 미국 MIT 명예교수는 미국인들의 출세지향적 성향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인, 일본인도 같은 범주에 넣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정 정규근로시간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주요국 대부분이 주당 40시간으로 비슷하다. 연장근로의 경우 미국에선 상한선이 없다. 노사가 알아서 정하는 게 룰이다. 영국, 호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일본은 연간 360시간 이내로 허용한다. 사업장별 시즌특수를 감안해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운용하는 게 대부분 국가들 트렌드다. 업무가 고도화되고 있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근로시간 개편안은 이 기조를 반영한 게 핵심이었다. 주 단위로 허용했던 연장근로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선택의 폭을 넓힌 것인데 근로 총량은 동일하다. 산술적으로 주 최대 근로 가능한 시간은 69시간이다. 하지만 크게 의미 있는 숫자로 볼 필요는 없다. 급한 게 지나간 뒤 일한 만큼 쉬면 정산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주 69시간 프레임에 갇혀 꼼짝을 못하는 것은 야당과 노조가 정부 맹점을 파고들어 이제는 개편작업이 이념 논쟁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장근로에 대한 대가를 정부가 보다 명확히 적시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실책이다. 지금도 법정 휴가를 다 쓰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다. 미리 쓴 근로에 대한 후불 보상은 하늘이 무너져도 떼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할 방책이 그렇게 없었을까. 스스로 원칙을 뭉갠 대통령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실근로시간이 길고 생산성이 낮은 근로문화도 풀어야 할 과제다. 그렇다고 급히 서두르면 저숙련 근로자의 밥줄이 끊길 수 있다.
이 모두를 아우르는 게 노동개혁일 것이다. 100년 후엔 여러 가지로 나아질 수 있기를.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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