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겹겹이 덧발라 쌓이는 시간… 옻칠은 기다림의 미학이죠" [인터뷰]

노주섭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5.08 18:56

수정 2023.05.08 18:56

천병록 옻칠 공예 명장
오동나무 옻칠방법 등 특허 보유
찻상 ·접시 등 日 관광객에 입소문
옻칠로 고택 보존·복원에도 앞장
후암 천병록 옻칠 공예 명장이 경남 김해 대성동에 있는 대성옻칠공방에서 자신이 만든 오동나무 접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노주섭 기자
후암 천병록 옻칠 공예 명장이 경남 김해 대성동에 있는 대성옻칠공방에서 자신이 만든 오동나무 접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노주섭 기자
"전통의 친환경 옻칠 공예는 '기다림의 미학'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알맞은 습도를 유지한 가운데 많게는 열번 정도 덧칠을 하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남 김해에서 대성옻칠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후암 천병록 옻칠 공예 명장은 8일 "모든 것이 빨리빨리로 통하는 현대 사회에서 오직 우리 전통의 옻칠만은 기다림의 연속으로 이뤄지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천병록 옻칠 명장은 '오동나무의 옻칠방법과 이를 이용한 생활용품'과 '가구용 경량패널 및 그의 제조방법'이라는 특허도 보유 중이다.


천 명장이 손수 제작한 천연 옻칠 오동나무 연잎모양 접시와 직사각 접시, 차 받침, 자그마한 찻상 등은 소품을 모으는 마니아층과 커피나 전통차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물론 여행을 온 일본 관광객에게까지 소문이 나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정도다.

부산을 찾은 일본 관광객들은 지난달 초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전시회'에 대성옻칠공방이 부스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까지 찾아 30여가지에 이르는 천 명장의 오동나무 옻칠 공예품을 골라 대거 구매해 간 것으로 전해졌다.

천 명장은 "하나의 오동나무 옻칠 소품의 경우 나무를 직접 깎아 디자인하고 모양을 낸 뒤 살균을 위해 겉을 불에 살짝 태워 깨끗하게 씻은 다음 보름에서 길게는 20일 정도에 걸쳐 옻칠을 해 말리고 하는 과정을 반복해 만들어진다"면서 "가볍고, 시간이 가도 변질이 없는 데다 까만 소품에 맛깔스러운 음식을 올려놓을 때 새로움을 더해 준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명장이 손수 만든 옻칠 공예품은 무엇보다 친환경 생활을 즐기려는 애호가들의 기호에도 안성맞춤으로 마니아층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알록달록한 색감이 특징인 옻칠 팔찌
알록달록한 색감이 특징인 옻칠 팔찌
천 명장은 "오후 8시부터 새벽까지 주로 저녁시간을 이용해 갖가지 오동나무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는 정해진 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익혀온 감각을 바탕으로 작게는 네번에서 여섯번, 많게는 열번까지 울지 않도록 가급적 얇게 옻칠을 반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천 명장은 오동나무 소품·공예품 제작뿐만 아니라 수집된 옛날 장롱이나 반다지, 대바구니 등을 옻칠을 통해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작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옻칠 공방을 통해 거듭 태어난 옛 대바구니는 도자기나 빵 같은 간단한 음식 종류를 담는 소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무형문화유산 옻칠장으로 등록돼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천 명장은 오래된 고택을 옻칠을 통해 문화재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천 명장은 "종택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고택의 경우 페이트를 칠하고 벗겨지면 또 칠하는 작업보다 곰팡이를 방지하는 살균 효과까지 뛰어난 전통방식의 옻칠을 통해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이 좋다"면서 "이 같은 목조 건축물은 옻칠하기에 적합한 습도가 유지되는 여름철에 해서 3년 간격으로 세번 정도하면 걱정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대성옻칠공방을 운영하는 천 명장은 옻칠을 한 알록달록한 예쁜 팔찌와 신발 깔창에다 옻잎을 말려서 만든 옻차까지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옻이 가진 특유의 독성을 특허기술로 제거해 만들어 본격적인 시판에 앞두고 있는 옻차는 마시기에 부드럽고 위장질환과 혈액순환 개선에도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 명장은 "지금까지 김해에 있는 공방으로 직접 찾아오는 고객이나 관련 전시회에 참여해 만든 소품을 주로 판매해 왔다"면서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면세점 입점 등을 통해 판로를 넓혀 나가는 방안도 모색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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