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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주막의 O가 사나우면 술이 쉽게 쉰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5.13 06:00

수정 2023.05.13 06:0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였던 한비(韓非)의 초상화(왼쪽)와 구맹주산(狗猛酒酸) 이야기가 실려 있는 한비자(韓非子).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였던 한비(韓非)의 초상화(왼쪽)와 구맹주산(狗猛酒酸) 이야기가 실려 있는 한비자(韓非子).

옛날에 술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주막이 있었다. 주막 주인은 항상 매달 초하루에 맞춰서 술을 빚었다. 어느 달 초하루가 되면 가장 최근에 수확한 좋은 쌀과 누룩을 이용해서 술을 빚었다. 빚은 술은 항아리에 넣고 자신이 직접 파 놓은 흙 동굴에 보관했다. 이렇게 하면 술맛이 변하에 않아 두 세달을 두고도 마실 수 있었다.


주막의 주인은 술을 푸는 되박을 속이는 경우가 없이 양을 항상 정직하게 했다. 손님을 맞는 태도도 매우 공손했고 인심도 좋았다. 빚은 술의 맛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술이 익으면 주막의 깃발을 아주 높게 달아서 동네방네 소문이 났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술은 다 팔릴 만큼 손님이 많지 않았고, 결국 술은 쉬기 일쑤였다.

주막 주인은 자신이 정성스럽게 빚은 술이 쉬어버려 팔리지 않는 이유를 기이하게 생각했다. 어느 날은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노인에게 묻고자 집으로 모셨다. 그 노인은 마을에서 지혜롭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노인이 주막에 도착하자 갑자기 주막에 있는 개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면서 ‘컹컹’하고 짖어댔다.

주막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노인에게 “어르신, 제가 술을 정성스럽게 빚어서 팔고 있는데, 이상하게 제 집의 술이 잘 팔리지 않고 쉽게 쉬는 이유가 궁금합니다.”라고 물었다.

주인이 노인에게 묻는 동안 옆에서 개가 계속 으르렁했다. 노인은 불쑥 “혹시 이 개가 사나운가?”하고 물었다. 주인은 “사납기는 하지만 그래도 물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안심을 시켰다.

노인은 대뜸 “이 개가 술을 쉬게 하는 것이네! 개사 사나우면 술이 쉽게 쉬는 법이라네.”라고 했다. 주인은 깜짝 놀라면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쉽게 쉬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거요?”라고 물었다.

노인은 “옛말에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고 했네. 주막의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쉽게 쉰다는 것이지. 어른들이 주막에 와서 술을 마실 때야 어른들은 개를 무서워하지 않겠지만,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아이들을 시켜 돈을 품속에 품고 술병을 들려 술을 사 오라고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개가 으르렁대니 어찌 아이들이 안심하고 술을 사갈 수 있겠는가. 또한 어른들조차도 겁이 많고 심약해서 개를 무서워한다면 술을 마시러 오지 않을 것 아닌가. 이렇게 술이 팔리지 않으니 남은 술이 쉬지 않고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주막 주인은 “그럼 술이 쉬어버린 것은 버려야 합니까? 양이 너무 많아 아깝습니다. 어찌 되살릴 방법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이미 쉬어버린 술은 식초로 사용하면 될 것이네. 식초 또한 술에서 시작된 것이니 쓴맛이 있어 고주(苦酒)라고 부른다네. 그리고 식초는 음식에 조미료로 넣거나 약으로 사용할 수 있네. 의서에 보면 식초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시며 독이 없다고 했네. 주로 옹종(擁腫)을 삭이고 혈훈(血暈)을 없애며, 징괴(癥塊)와 단단한 적(積)을 깨뜨리는 효능이 있지. 또한 모든 물고기, 고기, 채소의 독을 풀어주기도 하고 말이야. 약에 넣을 때는 2~3년 묵은 쌀식초가 좋은데, 그 정도 되면 곡기가 완전하기 때문이네. 그러니 오래전에 쉬어버린 것도 잘 보관해 놓으면 훗날 건강에 도움이 되면서 큰 재물을 얻게 될 것이네.”라고 했다. 주인은 노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당장 쉬고 있는 술들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냥 쉬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자 노인은 “술맛이 시어지는 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네. 술독마다 팥 2되를 볶아 명주 자루에 담아서 술 항아리 안에 넣어두면 신맛이 바로 없어질 것이네.”라고 했다.

주인이 “팥이 술의 신맛을 없애다니요?” 하고 물으니 노인은 “술이 신맛을 내는 것을 술이 되어가는 과정을 넘어서서 술의 약성이 극에 달한 것이네. 술과 팥인 적소두(赤小豆)는 서로 상극이니 따라서 주독(酒毒)을 풀어주는 팥을 넣어주면 신맛이 되어가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이네.”라고 했다.

그때 갑자기 어떤 사내가 주막에 왔다. 그 사내는 주막의 나무문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며 “주인장 어디 있소? 주인장 계시오?”라고 화가 난 듯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주인이 “도체 무슨 일인데 이렇게 호들갑이시오?”하고 묻자, 사내는 “내가 한 달 전에 술을 사가지고 갔는데, 그 때 맛이 너무 좋아서 아껴 두고 조금씩 먹고 있었건만 이제는 맛이 셔서 못 마시겠으니 새 술로 바꿔주시오.”하고 따지는 것이다.

그러자 주인은 “아니 술이 시간이 지나면 시어져서 신맛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요. 술을 사 가지고 갔을 당시에는 술맛이 좋았을 텐데. 이렇게 한 달 동안이나 마시지 않고 놔두면 그 어떤 술이 쉬지 않고 배긴단 말이요?”라고 하면서 거절했다.

이 둘의 대화는 말싸움으로 이어져 결국 관아에까지 가서 결판을 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주인은 노인에게 잠시 주막을 맡아 달라고 부탁을 하고 사내와 함께 관아를 찾았다. 그런데 이들의 목적은 관아의 수령에게 아뢰고 판결을 받으려고 한 것이었는데, 이방만이 나서서 자신에게 정황을 말하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이방은 판결권이 없었기에 그들은 수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방은 화를 내면서 이들을 내쫓자 버렸다. 주인과 사내는 결국 수령을 만나지도 못하고 관아를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주인은 사내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주막에 머물러 있는 노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서는 시비를 가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노인은 ‘껄껄껄~’ 웃으며 “관아에도 사나운 개가 있구려. 아랫것들이 마치 사나운 개처럼 으르렁대며 물어대는구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관아에도 이런 사나운 개가 있으니 아무리 도덕성이 높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수령이라 할지라도 백성들에게 어찌 시비를 가려줄 수 있겠는가. 수령이 총명하면 뭐하랴. 이방같은 것들이 백성의 고달픈 내용을 수령에게 전함에 있어도 수령의 비위를 맞추고 아첨만 해대며 이리저리 둘러대며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 뻔하건만. 제 아무리 성인군자의 총명함이라도 드러내지 못하면 무용지물인 것을....”라고 했다.

노인은 이방과 같은 간신배들을 사나운 개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그러자 사내는 “아니 뭐라고 하시는거요? 어르신. 제 신맛이 나는 술을 주막에서 새 술로 바꿔줘야 마땅한 것 아니요?”라고 언성을 높였다.

노인은 사내의 얼굴을 잠시 보더니 “자네의 얼굴을 보니 혈색이 위황(萎黃)한 것이 비위가 약하고 혈허로 인한 어지럼증이 있는 형상이네. 그 신맛이 나는 술을 잘 보관해 놓으면 자네가 앓고 있는 속앓이를 고칠 수 있는 좋은 약이 될 것이니 잘 보관해 놓았다가 완연한 초(醋) 맛이 나면 약으로 사용하도록 하게나.”라고 했다.

노인의 말은 새 술로 바꾸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고 어찌보면 처방까지 해 준 셈이었다. 사내는 노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자신의 속병을 얼굴만 보고 알아 맞힌 것이다. 사내는 주인이 새 술로 바꿔준다고 할까 봐서 가져온 술병을 가슴 품에 꼬옥 움켜쥐고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부리나케 향했다.

노인이 떠나고 나자 주막 주인은 사나운 개를 치웠다. 사나운 개가 없어지자 주막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술 심부름을 온 아이들도 안심하고 드나들었다. 주막에 사나운 개가 없어지자 주막의 술맛은 항상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제목의 ○은 개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한비자(韓非子)> 宋人有酤酒者, 升槪甚平, 遇客甚謹, 爲酒甚美, 縣幟甚高, 然而不售, 酒酸. 怪其故, 問其所知閭長者楊倩. 倩曰, 汝狗猛耶, 曰狗猛則酒何故而不售, 曰人畏焉. 或令孺子懷錢挈壺罋而往酤, 而狗迓而齕之, 此酒所以酸而不售也. 夫國亦有狗, 有道之士, 懷其術而欲以明萬乘之主, 大臣爲猛狗迎而齕之, 此人主之所以蔽脅, 而有道之士所以不用也. (송나라 사람 중에 술을 파는 사람이 있어서 술을 되는 양이 매우 공평하고 손님을 맞는 태도가 매우 공손하며 빚은 술의 맛이 매우 좋고 주막의 깃발을 아주 높게 달았다. 그런데도 술이 팔리지 않아 술이 쉬어버렸다. 그 까닭을 괴이하게 여기어 그가 잘 아는 마을의 장노인 양천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양천은 “너의 집 개가 사나우냐?”라고 물었다. 그는 “개가 사나우면 술이 무슨 까닭으로 팔리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양천이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어린아이를 시켜 가슴에 돈을 품고 술병을 가지고 가서 술을 사오도록 했을 때에 사나운 개가 맞서면서 물기도 하니 이것이 술이 쉬도록 팔리지 않는 원인이다.”라고 하였다. 나라에도 이런 사나운 개가 있으니 도덕을 갖춘 현사가 법술을 가슴에 품고 만승의 군주에게 이를 분명하게 밝히려고 해도 대신들이 사나운 개처럼 맞서면서 물어버리니, 이것이 군주의 총명이 가려지고 협박을 당하는 원인이며 도덕을 갖춘 현사가 중용되지 못하는 원인이다.)
<동의보감> 醋. 性溫, 味酸, 無毒. 主消癰腫, 破血暈, 除癥塊堅積. 治産後血暈, 及諸失血過多血暈. 止心痛咽痛. 殺一切魚, 肉, 蔬菜毒. 醋亦謂之醯, 以有苦味, 故俗呼爲苦酒. 入藥, 當取二三年米醋, 良, 穀氣全故也. 小麥醋不及. (식초.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시며 독이 없다. 주로 옹종을 삭이고 혈훈을 없애며, 징괴와 단단한 적을 깨뜨린다. 모든 물고기, 고기, 채소의 독을 풀어준다. 초는 혜라고도 한다.
쓴맛이 있어 민간에서는 고주라고 부른다. 약에 넣을 때는 2~3년 묵은 쌀식초가 좋으니 곡기가 완전하기 때문이다.
)
<의방합부> 救酸酒法. 每甁, 以小豆二升燋炒, 用絹袋盛, 浸於甁內, 酸味卽止. (술맛이 신 것을 해결하는 방법. 술독마다 팥소두 2되를 볶아 명주 자루에 담아서 술 독안에 담그면 신맛이 바로 없어진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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