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1) 노경민 조아서 기자 = 초등학교 등굣길 안전을 책임지는 모범운전자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고령화에 따른 '은퇴 러시'와 봉사 수준에 못 미치는 혜택으로 인해 학교 앞 든든한 안전지킴이를 잃어갈 위기에 처했다.
16일 오전 8시쯤 부산 영도구 중리초 어린이보호구역. 학생들은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사이좋게 등교하고 있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는 푸른색 유니폼 위에 형광색 조끼를 껴입고 정모까지 착용한 모범운전자들이 교통 안전 활동에 한창이었다.
이들은 보행자들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안전봉을 들어 올리며 혹시 모를 사고 위험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다만 일부 차량은 학생들이 횡단보도를 오가는데도 속도를 높여 정지선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모습이었다. 대형버스들도 비좁은 학교 앞 도로를 자주 오갔다.
도로교통법상 운전자들은 교통경찰을 보조하는 모범운전자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강석산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영도지회장은 "모범운전자들은 아침 출근 시간이 손님이 제일 많은 시간인데도 이를 포기하고 나오는 사람들"이라며 "새벽까지 일하고 아침에 나와서 봉사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또 "출근 시간에 안전을 위협하는 운전자들이 꽤 많다"며 "모범운전자를 모르는 운전자들도 많아 신호 위반을 왜 잡느냐는 항의도 자주 들어온다"고 말했다.
모범운전자는 스쿨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시니어 순찰대, 학부모 안전요원들과 달리 수신호로 차량 통제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다.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와 있어도 차량 통제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통제할 수 있고 위반 차량에 대해선 범칙금 부과도 가능하다.
모범운전자는 2년 이상 사업용 자동차(택시 등) 운전에 종사하면서 교통사고를 낸 전력이 없어야 선발될 수 있다. 주로 택시 기사들이 모범운전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에는 스쿨존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날로 높아져 모범운전자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부산에서는 52개 초등학교에서 등하교 시간대 차량 통제가 실시되고 있는데, 교통경찰은 주요 교차로에서 교통 단속을 하고 있기 때문에 투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모범운전자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고령화에 모범운전자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부산지부에 따르면 회원수는 2019년 1911명→2020년 1875명→2021년 1835명→2022년 1727명→2023년 1655명 순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부에서 집계한 2005년 회원수(2580명)에 비해 1000명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원래 10년 이상 무사고 운전자에 한해서만 지원 가능했으나, 지원자수가 계속해서 감소하면서 2년으로 기준을 완화했다. 하지만 모범운전자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모범운전자들은 교통안전 수칙은 매년 강화되고 있는 반면 혜택은 줄어들고 있는 점을 감소 원인으로 지목했다.
회원 연령대도 대체로 60대 이상이다. 이들의 은퇴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아 영도지회에서는 1~2년 안으로 회원이 20%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강 지회장은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회원 20명이 탈퇴했다. 신규 회원은 4명뿐이다"며 "혜택이 별로 없고 근무 시간도 뺏기니 요새는 잘 지원을 안 한다"고 걱정했다.
박문오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택시 기사의 연령대도 높아지고 있어 선뜻 봉사에 나서는 사람들은 앞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며 "모범운전자들에게 봉사 시간에 대해선 수당을 소액이라도 지급하거나 복지 혜택을 부여해 지원자를 늘리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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