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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진 칼럼] 죽은 공권력과 사기 공화국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5.22 18:38

수정 2023.05.22 18:55

[손성진 칼럼] 죽은 공권력과 사기 공화국
권위주의 시대의 국가 수사력은 최강이었다. 여론용이었을지언정 국민은 시원했다. 급조된 '특별수사본부' '합동수사본부'가 수사력을 총동원, 폭력이든 뇌물이든 짧은 기간에 때려잡았다. '범죄와의 전쟁'은 실제 전쟁을 하듯 조폭 졸개까지 소탕했고 마약전담수사부는 마약쟁이들을 싹쓸이해 청정국 소리를 듣게 됐다.

민주화의 진전은 범죄 대응에서는 후퇴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기강 확립이 민주화에 역행한다고 오판한 탓이다.
간첩은 조직 속에 파고들어 공공연히 날뛰었고, 부정과 비리도 제 세상을 만난 듯 활개를 쳤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권력은 땅에 떨어지다 못해 파묻혔다. 불법시위를 보고도 경찰은 멀뚱거리기만 했다. 흉악범을 잡아야 할 경찰이 되레 같은 경찰에게 112 신고를 한 적도 있다.

'검찰의 칼' 대검 중앙수사부는 '권력의 시녀'라는 조롱 속에 종언을 고했다. '검수완박'은 검찰 무력화를 완결시켰다. 비대 권력의 다이어트란 미명 아래 검찰은 손발이 묶였다. '살아 있는 권력'을 잡으란 임무를 넘겨받은 공수처는 눈치만 보며 '시녀'의 옷을 벗지 못했다.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거악은 음모를 꾸밀 텐데 무슨 수사를 하고 있는지 감감무소식이다.

숨어 있던 범죄자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발호하기 시작했다. 허울 좋은 '전쟁 선언'이 이어지지만 나약해진 수사력은 기를 못 쓴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한 게 작년 10월이다. 반년이 지났어도 마약꾼들은 콧방귀를 뀐다.

잃어버린 지갑을 4시간 만에 찾아주는 경이로운 한국에 외국 관광객들은 감격한다. 택배 물건을 쌓아두어도 훔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택시강도나 아리랑치기, 빈집털이범, 소매치기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한국의 치안이 최고라고 생각할 만하다. 과연 그런가. 한국에서 범죄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외국인들은 한쪽만 본 것이다.

도둑과 강도들은 이득도 적고 CCTV에 찍히는 '위험한' 범죄에서 떠났다. 컴퓨터를 배워 디지털 범죄의 소굴로 찾아들었다. 세상을 디지털이 지배하면서 범죄의 판도도 바뀌었는데 당국은 변신하지 못했다. 국민을 위협하는 범죄는 강절도보다는 디지털 사기범들이다. 스미싱과 보이스피싱은 갈수록 악랄해지며 당국을 우롱한다. 독버섯처럼 우리 가족들에게 파고든다.

아는지 모르는지 당국은 속수무책이다. 일반인에게도 쉬 눈에 띄는 대규모 주가조작을 감독관들은 까막눈처럼 알아채지 못한다. 주식시장이 온통 사기판인데도 눈뜬 장님, 천하태평, 모르쇠다. 이해 불가의 책임 해태는 능력부족에 의지박약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금융증권범죄수사부를 없애버린 전 정권도 힘을 보탰다.

전세사기로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범죄는 누구 책임인가. 이 지경이 되도록 당국자는 눈곱만큼의 정보도 없었다. 도둑과 강도가 없어졌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전셋집에 도둑이 들어 패물을 훔쳐 갔다 해도 목숨까지야 버리겠는가. 강도·폭력보다 지능범죄가 더 무서움을 이제야 알아채고 있다.

통계적으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사기범죄 1위국이다. 수사체계를 가다듬어 지능범죄, 디지털사기로 집중해야 한다.
공권력 회복은 한시가 급하다. 공권력 강화를 민주화의 후퇴와 동일시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범죄를 몰아내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게 바로 민주화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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