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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수요예측 실패가 부른 '지옥철'

이설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5.24 18:25

수정 2023.05.24 18:25

[테헤란로] 수요예측 실패가 부른 '지옥철'
1960년 말 당시 정부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한 뒤 적지 않은 반대론에 부딪혔다. 6·25전쟁 후 불과 20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라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기도 했고, 고속도로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저 자동차가 빠르게 다니는 길에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자본이 집중된 서울과 국내 최대 수출항인 부산을 빠른 시간에 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발간된 '경부고속도로의 수송 및 물류 기여효과 고찰'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경부고속도로 건설 전 15시간 이상 걸리던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시간이 개통 후 4시간 반으로 단축됐다.
고속도로를 통한 물류비 감소는 수출입 물동량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형성했으며, 우리나라 산업구조를 중화학공업과 수출 중심으로 근대화했다. 1960년대 후반 3억달러에 불과하던 수출액은 2018년 기준 6000억달러를 넘겼는데, 경부고속도로가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많다.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축적한 건설기술은 1970년대 중동건설 수출에 기여했다.

이처럼 교통계획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요구한다. 철저한 계획을 수반하지 않으면 건설하는 비용보다 유지·보수·확장에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달리 수요예측에 실패한 사례로 최근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서울 지하철 9호선이다. 지하철 9호선은 서울 한강 이남을 횡으로 연결하는 노선으로 환승역만 전체의 3분의 1 이상인 13개에 이른다. 급행이 있다는 이점이 더해지며 출퇴근 시간은 그야말로 '지옥철'이 됐다. 2009년 1단계 개통 후 3년이 지나 서울시는 문제 해결을 위해 국비를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개통 당시엔 객차 4개(4량)를 붙여 운행하다 그나마 2019년에 6량으로 늘었다. 그럼에도 일반적인 서울 지하철 8~10량보다 터무니없이 적다.
지하철은 시민 삶의 질과 직결돼 있다. 특히 서울 지하철은 수도권을 오가는 지하철들과 종횡으로 촘촘히 연결돼 있어 도시계획과도 맞물려 있다.
수요예측에 실패하는 순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이 떠맡는다.

ronia@fnnews.com 이설영 전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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