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동산일반

"구태의연한 건축법 많이 바뀌어야"…임형남 새건축사협의회 회장[인터뷰]

뉴스1

입력 2023.05.25 06:40

수정 2023.05.25 13:24

임형남 새건축사협의회장(가온건축 대표)이 19일 서울 강남구 가온건축사무소 사무실에서 열린 뉴스1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터뷰 대담=김희준 건설부동산부 부장, 정리= 최서윤 기자.. 2023.5/19 ⓒ News1 권현진 기자
임형남 새건축사협의회장(가온건축 대표)이 19일 서울 강남구 가온건축사무소 사무실에서 열린 뉴스1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터뷰 대담=김희준 건설부동산부 부장, 정리= 최서윤 기자.. 2023.5/19 ⓒ News1 권현진 기자


임형남 새건축사협의회장(가온건축 대표)이 19일 서울 강남구 가온건축사무소 사무실에서 열린 뉴스1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터뷰 대담=김희준 건설부동산부 부장, 정리= 최서윤 기자.. 2023.5/19 ⓒ News1 권현진 기자
임형남 새건축사협의회장(가온건축 대표)이 19일 서울 강남구 가온건축사무소 사무실에서 열린 뉴스1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터뷰 대담=김희준 건설부동산부 부장, 정리= 최서윤 기자.. 2023.5/19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건축법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가 뭐냐면 일제 강점기에 만든 일본 건축법 잔재가 지금까지 오고 있거든요. 일본에선 폐기된 게 많아요. 지금 시대가 많이 바뀌었잖아요. 그래서 없어진 게 많은데, 오히려 우리나라는 옛날 법을 그대로 가져가는 부분이 좀 많이 있거든요. 제도가 시대를 못 쫓아가는 측면을 개선하자는 게 저희 취지죠."

어느 사회든 업계든 오랜 시간을 거쳐 자리 잡으면 혁신적 발전을 위해 기존 질서 타파를 추구하는 반골(反骨)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건축업계에서는 새건축사협의회가 그렇다. 해방 이후 한국에 형성된 모든 것이 '새천년 새 시대'를 맞이하던 2000년대 들어 소수의 건축사를 중심으로 모였다.

새건축사협의회 회원들은 이른바 건축 3단체로 통하는 △대한건축사협회(1965) △한국건축가협회(전 한국건축작가협회·1957) △대한건축학회(1945)에 속한 이도, 속하지 않는 이도 있다. 회원은 1000명 남짓으로, 법정단체가 된 국토교통부 산하 대한건축사협회 회원 수에 비하면 10분의 1이다.



그러나 좀처럼 융화하기 어려운 건축업계 그 어떤 단체보다 '끈끈하고 진하다'고 말하는 임형남 제8대 새건축사협의회 회장을,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소재 가온건축 사무실에서 만났다. 가온건축은 임 회장이, 부인이자 동료인 노은주 건축학 박사와 공동대표로 운영하는 건축사사무소다.

임 회장은 "건축가들은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돼야 창작을 할 수 있지, 법규·허가 등 너무 제도화되면 자율성이 침해되는 측면이 있다"며 "그런 문제를 공유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차원에서 새건축사협의회가 만들어졌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공동의 노력으로 건축업계에 변화는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건축법상 정북방향 일조권 사선제한이 일부 완화된 성과도 있다. 임 회장은 "사선제한 같은 규제는 설계를 어렵게 하고 현실성도 떨어져서 앞으로 바뀌어야 할 게 너무나 많다"면서 "협의회 내 정책위원회에서도 정책제언을 하는 등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임 회장과의 일문일답.

◇"지역 건축 튼실해져야 업계 전체 발전"

-새건축사협의회는 새로운 건축문화를 추구한다. 차세대 건축가를 위한 업계 환경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우선 지역 건축이 살아나고 튼실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설계 일이 서울에만 몰리다 보니 지역 건축사들은 감리나 특별검사원 역할을 하면서 설계에서 본의 아니게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지역 설계마저 서울 건축사가 가서 하는 상황이다. 이런 형편을 개선해서 지역 분들도 일할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외국인 건축사가 와서 서울에 아주 좋은 건물 몇 개 짓는다고 우리 건축 수준이 올라가는 게 아니지 않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건축을 대형 건설사들이 주도해 왔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압축성장하던 시기엔 그게 맞았다. 강남개발도 하고 고속도로도 뚫었다. 그런데 건설회사가 주도하다 보니 건축을 하나의 산업으로, 물량 위주로 취급하게 된 거다. 건축가란 존재에 대한 '이미지'가 없고, 설계를 공짜로 보기도 한다. 건축의 기본은 설계이고, 좋은 설계가 있어야 좋은 집이 나온다. 건축을 소프트웨어이자 문화적 측면으로 여기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올해 3월 회장 취임 이래 어떤 방향성을 갖고 협의회를 이끌고 있나. 변화를 위한 구체적 노력은?

▶우선 설계하는 사람들을 위한 좋은 환경, 맑은 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다음이 외연 확장이다. 건축가와 일반인이 친근하게 만날 여러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가칭 '건축다방'을 6월부터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건축가와 일반인이 특정 공간에서 만나 차 마시며 건축 얘기를 나누고 상담하고 집 짓는 얘기도 해주는 아이디어다.

제도적으로는 법 개정 노력이다. 지난해 대한건축사협회 의무가입이 법제화된 데 대한 헌법소원을 냈다. 당시 대외명분은 (안전 논란에서 촉발한) 건축사 윤리였는데, 과연 법제화 후 지난 1년간 어떻게 지켜졌는지 실효성에 대한 얘기다. 이 밖에 사용승인 특검, 건축사 특검, 지역감리 같은 제도에서 건축사의 자율과 선택권이 없어지는 문제도 제기하려 한다. 지역감리 때 설계자가 배제되는 제도가 있는데, 일종의 이권이다. 업계 내부 이견이 많다.

◇"600년 수도 서울, 가치 살리면서 변화해야"

-지역건축 활성화라는 제도적 측면 외에도, 건축과 관련해 서울이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혁신과 문화의 관점에서 서울의 도시계획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서울은 정말 특별한 도시다. 전 세계에 600년간 유지된 수도가 몇 개 없다. 일본 도쿄도 200년 정도다. 옛날부터 서울 도시계획은 정말 유니크(unique·독특)하다. 보통은 평지에 직교하는 기하학적 길을 만드는데 조선은 물길과 골목길을 지형 그대로 살려 도시를 조성했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가졌던 독특한 미학이다. 기본적인 자연관이자 도시관이다. 연교차가 60도라 버티는 재료가 별로 없고, 산지는 70%가 화강암이다. 유니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서울이고 그에 맞는 도시계획을 해야 한다. 서양 사람이 와서 한번 휙 보고 건물을 세우면 땅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런 점에서 노포나 오래된 골목도 지나치게 개발적 측면보다는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예지동(종로 1·2·3·4가) 골목길이나 피맛길(종로 1~6가를 잇는 뒷골목) 같은 곳이 없어지는 건 슬픈 일이다. 조선 초기 숭례문과 비슷한 시기에 생겨난 길이었다. 길이 없어지는 건 도시가 없어지는 것과 똑같다. 서울 골목길은 옛 지도에도 다 나와 있다. 잘못하면 구한 말 집에 있는 청자병을 스테인리스로 바꾸는 셈이 될 수 있다. 나중에 후손들이 '왜 다 허물어버렸냐'고 책임추궁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특수성에 맞는 건축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꼭 받기 위해서보다, 좋은 건축을 하자는 생각이 우선이다.

-현대 건축에서 주거 선호도나 경향 중 바뀌고 있는 건 무엇인가.

▶모계사회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거실이 작아지고 주방이 커졌는데, 집의 중심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주방에 모이다 보니, 식탁이 커지고 싱크대가 화려해진다. 냉장고도 드러난다. 사회가 조금씩 여성 중심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전통 건축은 여성 중심이었다.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집을 가보면 '안사랑채'라고 해서 여성들의 사랑채가 따로 있다.

거실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 중에는 핵가족화도 있다. 옛날엔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이고 제사도 지내고 해서 대청마루가 필요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모이지 않고 명절에 외식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 그런 공간이 없어지는 거다. 집을 지키는 남자신 '성주신'과 부엌을 지키는 '조황신' 중에서 조황신이 성주신을 밀어내고 있는 격이다(웃음).

◇"건축가는 땅과의 소통을 돕는 영매…건축다방 등 소통 계기 늘릴 것"

-건축작가로서 건물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건축은 3개의 에고(Ego·자아)가 부딪히는 현장이다. 건축주와 건축가, 마지막이 땅이다. 우리 건축의 특징이기도 하다. 땅을 이해하고 타협해야 한다. 건축가는 땅과 건축주 사이에서 통역하는 영매와 같다. 옛날엔 풍수지리가 그런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사이트(site) 분석이다.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과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땅과도 오랫동안 대화해 주변을 살피고 물길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건축가는 잘 듣는 직업이다.

-우리 건축물 중 최고의 건축물을 하나 꼽자면.

▶건축가 이희태 선생이 설계하신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공원과 절두산 성당이 최고라고 늘 얘기한다. 잠두봉을 보면, 가만히 두면 저절로 퇴적되고 나무가 쌓여서 '저런 모양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스럽다는 의미다. 건물을 무겁게 앉혔지만 무겁지 않게 보인다. 전통건축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다. 그분이 설계하신 국립경주·공주박물관도 그렇다. 전통건축의 심성과 모던한(modern·현대적인) 기법이 담겼다. 철거 논란이 있었던 남산 힐튼호텔도 그렇다. 모던건축으로 커튼월(curtain wall)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됐는데, 어떻게 해석하고 정립할지 하는 고민이 거기 있다. 그런 건 살려둬야 한다. 우리 건축이 이렇게 갔다는 일종의 '좌표'다.

어떻게 우리 건축의 좌표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갈지가 바로 새건축사협의회의 고민이다.
임 회장은 "항상 회원들에게 '우리를 위한 협회가 되면 안 된다'고 말한다"면서 "1980년대생이 설계사무소를 열기 시작했고 조금 있으면 1990년대생도 만들 것이다. 그들을 위한 협회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축사들이 건축다방으로 일반과 소통하고, 무인촌 의료봉사처럼 소외계층 집도 고쳐주면서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하면 좋겠어요. 낡은 화장실과 보일러를 고치고 기능적으로 편리하게 바꿔주는 거죠. 전 국민이 좋은 집에 살게 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예산이 드는 일이 아닙니다. 건축가뿐 아니라 사회도 움직일 때가 됐어요."

임형남 새건축사협의회 회장 프로필

△홍익대 건축학 학사 △2011 문화체육관광부 공간디자인대상 △2012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 △2020 아시아건축사협의회(ARCASIA) 선외 가작(Honorable Mention) 수상 △2019~ EBS 건축탐구 집 출연 △1998~ 현 가온건축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