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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리스크에 비상걸린 재계…협력사 새우등 터질라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5.26 06:00

수정 2023.05.26 08:13

자료: 한국경제연구원
자료: 한국경제연구원

[파이낸셜뉴스] 우리나라 기업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수록 협력기업에 대한 ‘부당한 경영간섭’ 수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협력사에 대한 원청기업의 관리·감독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경영간섭 여부를 둘러싼 충돌을 막기 위해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ESG 해외소송과 기업 리스크 관리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에서 폐선박 판매를 중개한 영국 기업이 선박해체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피해자로부터 소송을 당한 사례를 소개했다.

해당 중개기업은 영국 항소법원에 자신은 피해발생에 직접적 관련이 없어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소송 자체가 각하돼야 한다는 소를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거부했다.

영국 항소법원은 최근 기업의 주의의무 확대 경향을 고려할 때 중개기업도 ‘위험의 생성’에 관여했는지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있으므로 이 소송을 막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보고서는 기업의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의 경계가 상당히 확대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모회사가 해외자회사와 그룹 차원의 정책을 공유하고 해외자회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시행한 경우 해외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해 영국 법원에서 모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가능하다는 영국 대법원의 판결을 소개했다.

이 판결은 회사법 상 독립법인격을 이유로 해외 자회사의 불법행위에 대한 모회사의 자동적인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하급심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보고서는 ‘유럽연합(EU) 공급망 실사 지침’이 요구하는 바는 ‘기업은 자회사는 물론 협력기업에 대해서도 ESG 리스크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글로벌 규제에 충실할수록 피해 발생 시 법률적 책임은 커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보고서는 글로벌 ESG 규제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해외시장 접근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어 한국기업에게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세계적 규제변화의 추이는 순응하면서 기업은 ESG 관련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협력기업과의 강도 높은 협력적 관계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ESG 리스크 관리의 성패는 지분관계가 없는 협력기업에 대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강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협력기업과 원청기업과의 협력적 관계의 정도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ESG 리스크에 대한 기업의 법률적 책임이 커질수록 협력기업에 대한 리스크 관리·감독의 강도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협력기업은 부당한 경영간섭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규제당국이 ESG 리스크 관리와 경영간섭 금지 규제 간의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태규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규범 준수에 따른 유무형 비용이 너무 크다고 느낄 경우 규범을 회피하려는 인센티브가 생길 수 있다”며 "이 경우 ESG 리스크 관리의 강도도 더욱 강화될 것이고 이는 부당한 경영간섭을 금지하고 있는 국내 규제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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