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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벚꽃 같았던 한 시대의 몰락…연극 '벚꽃 동산'

뉴스1

입력 2023.05.27 05:01

수정 2023.05.27 05:01

연극 '벚꽃 동산'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연극 '벚꽃 동산'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연극 '벚꽃 동산'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연극 '벚꽃 동산'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연극 '벚꽃 동산'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연극 '벚꽃 동산'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귀족 계급이 몰락하고 신흥 자본가가 성장하던 19세기 러시아 혁명기. 한때 막대한 부를 누렸던 귀족 가문의 라네프스카야는 모든 것을 잃은 뒤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으로 돌아온다.

가문 소유의 벚꽃 동산이 눈 앞에 펼쳐지는 고향은 행복한 기억만 가득한 곳이다. 벚꽃 동산은 과거의 영광을 상징한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어려워진 형편 탓에 벚꽃 동산이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다.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28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벚꽃 동산'은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4대 희곡이자 유작으로 유명하다.
김광보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 연출 데뷔 30년 만에 처음 체호프 작품 연출에 도전했다.

영광의 시대까진 아니더라도 귀족의 체면을 유지할 대안은 분명 있었다. 집안 농노 출신으로 사업을 통해 부자가 된 로파힌이 별장을 지어 빚을 갚자고 수없이 제안한다. 라네프스카야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되레 '될 대로 돼라'는 식으로 행동한다. 은행 빚을 갚을 돈도 없는 처지에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고, 파티까지 연다. 라네프스카야는 압박감이 커질수록 오히려 행복한 추억 속으로만 회귀하는 듯했다. 대가는 뼈아팠다. 결국 벚꽃 동산을 잃고 가족 모두가 고향을 떠나야 하는 비극만이 남는다.

김 예술감독은 허황된 라네프스카야의 모습이 강조됐던 이전 작품과 달리 주인공의 정서를 따라가며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지점에 주목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가 속한 법무법인의 대표를 연기했던 백지원이 라네프스카야를 맡았다. 5년 만의 무대 복귀작이다. 고상한 의상에 품위 넘치는 말투와 행동을 보이다가도 돌연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모습은 불안에 잠재된 라네프스카야 그 자체였다.

독특한 무대도 볼거리였다. 라네프스카야의 고향 저택을 거대한 투명 유리 구조물로 표현한 것인데, 한 시대의 몰락을 암시하듯 공허하고 차가운 느낌을 준다. 라네프스카야 가문이 떠나고 어두워진 무대에서 마주하는 유리 구조물은 씁쓸함을 배가시킨다.


라네프스카야 가족이 떠난 뒤 저택에 홀로 남은 늙은 하인 피르스는 읊조린다. "다 떠나버렸군.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피르스의 독백과 함께 벚꽃 잎이 흩날린다.
원작에는 없는 내용인데, 한 시대의 퇴장을 마냥 씁쓸하게만 표현하지 않으려 한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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