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반도체 新냉전]⑤동맹 구분않는 美 자국우선주의…정보·로비력 절실

뉴스1

입력 2023.05.27 07:00

수정 2023.05.27 07:00

(서울=뉴스1) 김민성 기자 = 지난해 9월쯤 미국 상무부가 대중(對中) 반도체 장비·기술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릴 것이란 정보가 돌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대관 담당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첨단 반도체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들의 주력 상품인 고성능 메모리반도체도 제재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1분1초가 급한 상황이었다. 같은해 10월7일 미 상무부의 제재가 관보를 통해 발표된 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11일, 삼성과 SK에 대해선 신규 수출 제한 조치 적용을 1년간 유예한다는 답변을 받아내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런 예외 조치를 얻어낸 건 기업들의 대미(對美) 로비 활동이 한몫했다. 우리나라에서 로비라고 하면 불법 정치자금, 뇌물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미국에서 로비는 합법화된 영역이다. 넓은 의미에서 기업이나 업계를 대표하는 이익단체가 정책 결정자와 정치인을 만나며 여러 채널을 통해 의견·정보를 제공하는 활동 모두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반도체, 배터리, 스마트폰 등 미국에서 대규모 사업을 하는 국내 기업 입장에선 로비 활동은 필수다.

◇ IRA 이어 반도체 지원법 '2연타'…자국 우선주의 앞에 냉혹한 현실

냉엄한 국제 현실 속에서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가 미국에 대한 대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됐다. 지난해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법안이 극비리에 준비되고 빠른 속도로 미 의회 문턱을 넘는 모습을 보면서, 반도체 관련 규제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초과이익 공유 등 '독소조항'에 가까운 조건까지 끼워 넣자 "동맹국도 졸면 죽는 게 비정한 현실"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앞으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가 강해지면서 우리 기업들은 미국 사정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중 수출 유예 조치나 보조금 가드레일(안전조치) 조항 등도 매듭이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불확실성 또한 여전하다. 한 대관 담당자는 "미국에서도 자국 우선주의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여론에만 기댈 순 없는 노릇"이라며 "대중 견제가 지속될 텐데 우리 기업들은 미국 사정에 안테나를 세우고 부지런히 접촉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前 주미 대사 영입·1000만 달러 로비…아쉬운 정부의 외교력

그렇다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미 로비 활동 규모가 줄어든 건 아니다. 오히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역대 최고 수준의 로비 자금을 투입했다. 미국 정치자금 추적 단체 '오픈시크릿' 자료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해 대미 로비자금으로 579만 달러(약 76억원)를, SK하이닉스 미국법인과 솔리다임(옛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은 527만 달러(약 69억원) 등 1106만 달러(약 135억원)를 썼다. 올 1분기도 삼성은 167만5000달러(약 22억원), SK하이닉스 미국법인도 118만달러(16억원)을 집행하며 1분기 역대 최대 로비 금액을 사용했다.

인력과 조직도 강화됐다. 지난해 2월 삼성전자는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를 북미 지역 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임원(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리퍼트 전 대사는 오바마 전 대통령과 같은 당(민주당)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미국 정치권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북미 대외협력사업 강화를 위해 부회장직까지 신설했다. 삼성전자 미국 대관 담당자 수는 약 30명, SK하이닉스는 약 25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로비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정부의 지원없이 사실상 미국 정부와 협상을 직접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게 현실이다. IRA나 반도체법 모두 세부사항이 나오기 전에 정부가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선 대미 접촉 라인이 끊기면서 일종의 접촉부터 매듭까지 온전히 기업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외교력이 좀 더 힘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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