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금융의 BTS'를 만들겠다." 새 정부의 당찬 포부에 발맞춰 국내 금융사들이 '해외진출'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세계 12위 수준인 한국의 경제규모에 비해 'K-금융'의 글로벌 경쟁력은 미미한 실정이지만 그만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세계적으로 가속화되는 금융의 '디지털화'는 'IT 강국'인 한국에 절호의 기회다. 동남아시아 등 신흥경제국가를 중심으로 입지를 확대하고 있는 'K-금융'의 글로벌 성과를 조명해본다.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KB부코핀은행은 단순히 국민은행의 해외 자회사가 아닌 KB금융그룹 글로벌 전략의 핵심입니다. KB부코핀은행은 KB의 '미운 오리새끼'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며, KB금융그룹의 가장 성공적인 해외사업 사례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우열 KB부코핀 은행장의 영어 이름은 '미스터 리'가 아닌 '미스터 톰'이다. 부코핀은행의 이사회 의장의 이름이 '제리'인 점에 착안해 "'톰과 제리'처럼 딱 붙어 다니면서 시너지를 내겠다"는 의미에서다. 현지인과 힘을 합쳐 KB부코핀을 정상화하고 나아가 인도네시아에서의 '리딩 뱅크'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KB부코핀은행은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을 딛고 올해 본격적인 정상화 작업에 돌입한다. 1조원 규모의 증자를 통해 인도네시아에 KB의 강점인 '디지털 리테일' DNA를 이식하겠다는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인도네시아에 'KB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기대 한 몸에 받았지만 '아픈 손가락'…'30년 베테랑' 이우열 행장 소방수 등판
KB금융은 인도네시아를 글로벌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증권·손해보험·카드·캐피탈·자산운용 등 계열사를 적극 진출시키고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에 이은 제2의 모국 시장(Mother Market)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싱가포르가 선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라면 신흥 시장은 인도네시아가 중심이 되는 식이다.
인도네시아를 점찍은 이유는 '잠재력'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으로 중위연령이 28.6세인 젊은 국가다. 특히 금융 시장에서의 가능성이 크다. 반면 전체 인구 중 은행 이용률이 베트남(65~70%) 등 주변 국가에 비해 낮은 55~60%라는 점, 1인당 보유 신용카드가 0.1개에 그치는 등 아직 깃발을 꽂을 영역이 넓다.
그간 KB금융은 부코핀은행을 인도네시아 전략의 핵심 전력으로 점찍고 꾸준히 지분을 늘려왔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18년 부코핀은행의 지분 22%를 취득해 2대 주주로 올라선 데 이어 2020년엔 두 번의 증자로 지분율 67%까지 올리면서 경영권을 가져왔다.
지난 1970년 설립된 KB부코핀은행은 인도네시아 내 115개 상업은행 중 자산 규모 19위의 중대형 은행이다. 412개의 지점과 835개의 자동입출금기(ATM) 등 인도네시아 전역을 아우르고 있으며 연금대출·조합원대출·SME대출 등 리테일 상품을 통해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 이슬람 샤리아은행까지 자회사로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87%는 무슬림이다.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모두 갖춘 셈이다.
하지만 부코핀은행은 KB의 기대와 다르게 인수 이후 줄곧 내리막 길을 걷고 있다. KB가 지분을 처음 취득한 2018년 88억원이었던 순손실은 지난해 8021억원까지 확대됐다. 올 1분기에도 336억원으로 확대됐다. 이우열 행장은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KB 인수 전에 취급됐던 여신의 부실화가 이어졌다"며 "인수 후 진행됐어야 할 작업들이 팬데믹으로 지연되면서 정상화 속도도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기대했던 유망주에서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지만, KB는 부코핀을 포기할 계획이 없다. 이 행장은 "인도네시아는 높은 경제성장률, 내수중심의 경제구조, 풍부한 자원은 물론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금융서비스 침투율 등 금융업 측면에서 매력적인 시장"이라며 "부코핀 같은 전국망 채널을 통해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을 인수할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부코핀의 신속한 정상화를 위해 지난해 5월 이우열 행장을 소방수로 등판시켰다. KB국민은행에서 북부지역영업그룹 대표, 지주 IT총괄(CITO), HR총괄(CHO), 전략총괄(CSO) 부사장까지 탄탄대로를 걸어온 은행 전문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은행원이지만, 부코핀은행장은 여간 부담스런 자리가 아니다. 그간 쌓아온 화려한 이력에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행장은 오히려 기쁘게 인도네시아 비행기에 올랐다고 한다. 그는 "KB국민은행을 비롯한 KB금융그룹 내에서 30여년간 쌓아온 다양한 업무 경험을 부코핀은행의 성장을 위해 발휘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사실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이 행장이 취임한 후 KB는 부코핀의 정상화를 위해 고삐를 당기고 있다. 현재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차세대 전산시스템을 구축해, 디지털 시스템을 활용한 소매금융 마케팅을 적극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대규모 손실을 야기했던 부실 여신에 대해선 충당금 적립을 마쳤다.
전기차 등 미래 산업 관련 금융도 확대할 계획이다. 부코핀 은행은 지난 11일 인도네시아 전기차 기업 '인디카'와 전기차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전기차 구매 금융뿐만 아니라 전기차 운영에 필요한 장비 도입·전기차 충전소 설치 등 전기차 운행, 배터리 재활용 등 인디카 그룹의 전기차 사업과 관련한 종합적인 금융 지원에 나선다.
이 행장은 "인도네시아 은행으로서 인도네시아 경제와 인도네시아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역할을 하려 한다"며 "'부코핀'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로 '미래 산업의 생태계'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현지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KB가 경영을 맡고 있지만 현지인인 '인도네시아 직원'이 인도네시아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여러 방면에서 차이가 큰 나라다. 열명 중 여덟명은 이슬람교를 믿을 정도로 무슬림 비중이 높으면서도, 화교의 영향으로 '꽌시(관계) 문화'가 깊숙하게 박혀 있다. 좀처럼 자신의 의견을 내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있다.
이 행장은 인도네시아에 오자마자 인도네시아어 과외를 받았다. 지금은 현지인과 어지간한 대화는 할 수 있을 정도다. 3일 동안 한국말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인도네시아어 습득에 '진심'이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청(OJK)의 고위 관계자가 상을 당했을 때는 오지까지 직접 문상을 갔다. 그 덕에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OJK와도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최근 이 행장이 주목하고 있는 건 '한류'다. 실제 인도네시아에선 현재 한국 드라마와 음악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주요 거래처를 만나서 할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의무적으로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고 한다. 이 행장은 "주요 고객과 미팅을 할 때면 항상 K팝이나 한국 드라마가 주요 대화 내용이 되곤 했다"며 한국에 있었을 땐 드라마를 볼 기회가 없었지만, 여기 와서는 고객과의 대화를 위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25년에는 흑자 전환 예상"…부코핀 통해 'KB 유니버스' 만든다
부코핀이 처한 여건은 우호적이진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고성장을 이어오던 신흥국도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올해 인도네시아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5.3%에서 5.0~5.1%로 소폭 낮아질 전망이다. 성장률이 둔화되면 부코핀을 괴롭히던 부실 리스크가 더 확대될 수 있다.
그런데도 KB는 부코핀의 정상화를 자신한다. 이른 시일 내에 흑자전환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조남훈 KB금융지주 글로벌전략총괄은 지난 3월 KB금융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부코핀은행은 현재 완전 정상화 단계는 아니지만, 2025년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한 바 있다.
장기적으로 KB는 부코핀 은행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에 'KB 생태계'를 꾸린다는 계획이다. KB증권의 인니 자회사 발버리증권 증권연계계좌 개설을 통해 부코핀은행의 핵심 예금을 확대하는 한편, 부코핀은행 지점을 복합점포로 운영해 다른 계열사 영업 채널로 활용할 예정이다. 또 KB캐피탈의 신차 대출 상품을 은행 채널을 통해 판매하는 방안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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