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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독립지사가 세운 동아연필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01 18:23

수정 2023.06.01 18:23

[기업과 옛 신문광고] 독립지사가 세운 동아연필
하야카와 도쿠지는 일본 최초로 기계식 연필을 발명했는데 제품 이름이 '에버-레디 샤프'였다. 샤프펜슬로 불리게 된 기계식 연필을 만들던 회사는 나중에 '샤프전자'로 발전했다. 샤프펜슬의 등장으로 국내 연필 제조업체는 큰 타격을 받았고, 설상가상 중국산 연필도 몰려왔다. 그래도 연필 업체들은 꿋꿋이 버텼다. 중장년층이 또렷이 기억하는 동아연필도 건재하다. 동아연필은 1946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필기구 기업으로 국내 문구산업의 시발점이다.
문화연필은 1949년, 모나미는 1960년에 창립됐다.

동아일보 1956년 1월 4일자에 동아연필 창립 10주년 기념 광고가 실렸다(사진). 동아연필을 독립운동가 김노원 선생이 세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김노원(1895~1975)은 1919년 대전 인동장터에서 시작된 3·1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신흥 학우단 폭탄 사건에 가담했으며 1921년 4월 신한민보에 실린 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독립지사다. 중국에서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귀국했다. 동아연필이 지난해 김구, 유관순, 윤동주 등 독립운동가들의 말씀을 새긴 광복절 기념 연필을 한정판으로 발매한 것도 그런 인연에서다.

1945년 광복이 되면서 일본 미쓰비시연필은 적산(敵産)으로 남았다. 김노원은 이를 불하받아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귀국한 아들 김정우와 동아연필을 설립했다. 김노원은 초대 회장을 맡았다. 아들 우송 김정우(1916~2005)는 동아연필을 크게 키웠다. 그는 몽당연필을 쓰며 절약하던 국내에서는 한계를 느끼고 직접 연필이 든 가방을 메고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등 해외로 돌아다니며 팔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종업원들의 밀린 임금을 해결하곤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동아연필의 국내 점유율이 70%에 이르렀다. 김정우는 연필 공장을 운영하면서 1961년 초대 민선 대전시장을 지냈고 육영사업도 함께 펼쳤다. 우송대학과 우송정보대학(옛 대전농업고등전문학교), 우송고(옛 대전상고) 등 여러 학교를 세웠다. 우송대 총장도 지냈다. 뒤를 이은 김정우의 3남 김충경은 3대 대표이사를 맡아 중성펜을 만들고 디자인 개선에 힘쓰며 고급화를 주도했다.
4대 김학재는 국내 생산을 고집하면서 전산화와 자동화로 생산성을 20% 높였다. 현재 동아연필은 70여개국에 제품을 수출할 만큼 탄탄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2017년에는 '명문 장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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