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아파트 이름, 길어야 있어 보인다?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01 18:23

수정 2023.06.01 18:23

[기자수첩] 아파트 이름, 길어야 있어 보인다?
"개포 블레스티지?" "아니 개포 프레지던스… 몇 번을 말하냐." 얼마 전 30대인 친구들과 나눈 대화다. 블레스티지, 프레지던스가 무슨 뜻인지 아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혹여나 타지에서 온 어르신들은 택시 안에서 아파트 이름을 두고 스무고개할 것만 같다. 친구가 말한다. "오히려 까치마을, 장미아파트가 더 힙하지 않냐."

아파트 이름이 길어지고 있다. 동시에 어려워지고 있다.
아파트 기사 쓰는 기자도 헛갈린다. 신도시 및 재건축 아파트는 단지명이 길고 외래어가 들어가 기억이 쉽지 않아서다. 가장 긴 아파트 이름은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빛가람 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로 25자이다. 1990년대 아파트명은 평균 4.2자였는데 2019년 9.8자까지 늘었단다. 서울시 조사에선 시민 약 70%가 '공동주택 명칭이 길고 어렵다'고 답했다.

최근 아파트 이름이 어려운 이유는 펫네임(별칭) 때문이다. 아파트명은 '지역명+건설사명+브랜드명+펫네임'으로 지어진다. 펫네임에 외래어가 붙은 이유는 '있어 보여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을 주도하는 50대 이상 주민들이 의사결정을 주도하다 보면 어느새 외래어가 붙는다. 영어 안 들어가면 아파트 값 떨어지는 줄 안다"며 "나이 든 감각에는 외국어가 들어가야 고급스러운 느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젊은 세대는 브랜드명까지 범벅된 아파트 이름을 두고 촌스럽게 느낀다는 점이다. 뉴트로를 찾는 2030이 느끼기에 써밋, 힐 같은 명칭은 특색이 아니라 틀에 박힌 말이다. 낡은 공장 단지에서 숨은 카페를 찾는 감각을 가진 세대에게 외래어는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리버뷰보단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 더 멋진 느낌이다.

물론 주민 의견인 아파트명을 강제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아름답고 부르기 쉬운 이름'이 외래어보다 의미가 있다는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4월 토론회에선 서울시가 아름다운 아파트명 모범 사례를 뽑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동시에 외래어 대체 단어를 찾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지명과 적절히 조화되는 버들, 보라매 등 예쁜 초등학교 이름을 참고하면 어떨까.

junjun@fnnews.com 최용준 건설부동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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