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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생명 구하다 사망한 '의사자', 현충원 안장은 ‘될수도 안될수도’…왜?

정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06 14:54

수정 2023.06.06 14:54

마우나리조트 붕괴때 구조하다 숨진 양성호씨는 현충원 안장
고속도로 사고 구조하다 사망한 회사원 A씨는 현중원 안장 불가 통보
국가보훈처 심사 통해 결정되지만 '안장 가능여부'만 통보돼
불가 통보받은 유족, 법원에 탄원서 제출하기도
현충일을 이틀 앞둔 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현충일을 이틀 앞둔 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 지난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 당시 후배들을 구하려 붕괴 현장에 뛰어들다 목숨을 잃은 양성호씨는 국가로부터 의사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후 국가보훈부가 양씨를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로 결정함에 따라 양씨는 지난 4월 서울 현충원에 안장됐다.

#. 회사원 A씨는 지난 2018년 동료들과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교통사고로 멈춰있는 차량을 발견했다. A씨는 자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고자를 구하기 위해 정차해 구조 활동을 하던 중 고속도로를 달리던 다른 차량의 2차 사고에 휘말려 사망해 이후 의사자로 인정됐다.
그러나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는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다.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의사자' 가운데 국립묘지 안장을 신청했다 국가보훈부(옛 국가보훈처)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아 소송이 걸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의사자 유족으로부터 국립묘지 안장심사 요청을 받을 경우 심사를 통해 결과를 통보한다. 하지만 심사 결과에는 국립묘지 안장 가능 여부만 통보될 뿐 세부 사유도 적시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보훈부 "심의 기준은 공개 대상 안돼"

6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의사자 국립묘지 안장을 심사하는 보훈부 심의위원회 심의 기준은 베일에 쌓여있다. 보훈부는 “내부규정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의사상자라고 해서 무조건 국립묘지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심의 기준은 공개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구조중 사망한 사람에 대해선 구조행위 동기 등 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을 정도인지 ‘영예성’을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심사 세부기준이 공개되지 않자 유족들이 국가보훈부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국립묘지 안장의 심의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석민 변호사는 “법률이 국립묘지법에서 안장심사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는데 위원회의 심사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국민의 알 권리는 물론 얼마나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안장 심사가 이뤄지는지 관련해서도 신뢰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1장짜리 문서에 '안장 비대상' 통보" 법원, "처분기준 구체적으로 정해 공표해야"

법원도 이 같은 점을 문제 삼은 바 있다. 지난해 서울고법 행정 1-1부(심준보 김종호 이승한 부장판사)는 의사자 아버지인 B씨가 국가보훈처장을 상대로 국립묘지 안장 거부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며 이러한 점을 지적했다.

당시 재판 과정에서도 보훈부는 “세부 심의 기준은 위원회의 독립적.자율적 심의 보장을 위해 외부에 비공개하고 있다"며 문서 제출을 거부하다 법원의 제출명령을 받고서야 이를 제출했다.
B씨는 ”보훈부에서는 달랑 1장짜리 문서를 보내며 ‘안장 비대상’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을 뿐, 어떤 사유로 아들이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며 법원에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보훈부가 행정절차법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행정청은 처분 기준의 공표가 곤란하거나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해치는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처분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해 공표해야 한다”며 “피고(국가보훈처장)는 법령상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one1@fnnews.com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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