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중국 알리바바는 빼고, 토종 네이버 카카오만?..공정위 역차별 규제 논란

정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05 17:38

수정 2023.06.05 17:39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네이버·카카오 등의 온라인 플랫폼을 법으로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중국 알리바바 등 해외 기업들보다 네이버나 카카오 등 토종 기업들을 중점적으로 규제할 경우 역차별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대만·미국 등 주요 국가들이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를 폐기하는 글로벌 흐름에서 한국만 '나홀로 역차별 규제'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온라인 플랫폼 사전 규제법 한국에도 등장
5일 플랫폼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태스크포스(TF)는 지난달 말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사전 규제'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에 규제 대상과 의무 사항을 정하기 때문에 기업 투자와 혁신에 대한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 문제가 있을 때만 제재하는 사후 규제와 비교해 기업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
이에 대해 국민의 힘 등 정치권에서는 이달 중 법제화 논의를 거쳐 법률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TF에서 나온 결론을 토대로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안을 조만간 공개할 방침이다.

공정위의 플랫폼 사전 규제안은 유럽의 디지털 시장법(DMA)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DMA는 대형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게이트 키퍼'(Gatekeeper)로 분류해 이들의 자사우대 등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문제는 이 DMA가 유럽 전역에서 독과점으로 논란을 일으킨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등 시가총액 750억유로(약 105조원) 이상의 미국 기업이 주요 대상이고, 유럽연합 3개국에서 사업을 운영해야 규제를 받는다는 점이다. 27개 회원국을 둔 EU의 인구는 5억명에 달한다.

업계에 따르면 유럽의 DMA에 해당하는 유럽 기업은 거의 전무하고, 미국 기업들만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겉으로는 '빅테크 산업 규제법'을 만들었지만, 실상은 유럽 토종 플랫폼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기업의 독과점을 근절하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미국은 지난해 말 '플랫폼 독점 종식 법률' 등 빅테크 규제 법안을 줄줄이 폐기했다. 중국과 대만도 자국 플랫폼 규제를 중단했거나 철회했다. 임용 서울대 교수는 최근 플랫폼 규제에 대한 세미나에서 "미국에서 더 이상 플랫폼 규제를 위한 새로운 입법이 불필요하고, 기존 법으로 규제가 가능하다는 여론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재 온라인 플랫폼 사전 규제가 이른바 '네카오' 등 국내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황에서 사전 규제가 실제 시행될 경우 해외 기업과의 '역차별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직구 시장의 절반 가까이 점유하는 알리바바가 대표적인 사례로 뽑힌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직구 주문 건수 1,2위는 알리바바그룹의 알리익스프레스와 타오바오로 두 업체 합산만 43%에 달한다. 넷플릭스(38%), 구글(35.3%) 등 다른 해외 공룡 플랫폼들도 빠르게 국내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추세다. 이들 해외 기업들도 국내 시장점유율을 키우면 독과점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만큼, 해외 기업 역차별 등의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전 규제가 추진되는지는 미지수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 교수는 "현재 추진되는 규제는 해외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는 오히려 악화해 규제 역차별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 3년 만에 '제2의 타다 금지법' 또 생기나
플랫폼 기업 규제가 정부 부처의 '밥그릇' 싸움 때문에 졸속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 뿐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도 부처들도 플랫폼 규제 개정안 등을 준비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네카오 등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명분으로 풀이된다. 이 상황을 고려해 당초 공정위는 오는 7월쯤 규제안을 공개할 계획을 이달 초로 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정권 때도 '온플법'을 두고 부처간 갈등이 커져 논란을 키웠는데, 이번 정권에서도 같은 문제가 답습되고 있다"고 했다.

플랫폼 업계에선 공정위의 '독과점 방지법'이 '제2의 타다 금지법' 같은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 서비스를 금지한 타다 금지법(개정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으로 1만2000명의 타다 운전기사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실직 위기에 놓이면서 카카오T 중심의 호출 택시 독과점을 키웠다. 전국 택시 운송조합연합회에 따르면, 타다 금지법 여파로 법인 택시 운전자는 2019년 말 10만2320명에서 지난 3월 7만1066명으로 3만명 이상 감소했다. 최근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웅 전 쏘카 대표가 소송 4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타다금지법의 효용성 논란은 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한 상태다.

플랫폼 업계에선 대형 온라인 플랫폼을 사전 규제하면 신규 투자는 물론 기업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온라인 플랫폼 사전 규제→투자·신사업 위축→일자리 감소 및 사업 철수→스타트업 협업 및 창업 위축 등 부작용이 특정 기업에서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다.


최 교수는 "타다 금지법은 새로운 기업 성장과 투자, 진입을 장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졸속 법안이 어떤 부작용을 만들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며 "정치권과 정부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로 국민과 기업 혁신 생태계가 망가질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