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고용부 직원에게 제주한달 살기를 허하라 [기자수첩]

김현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15 14:52

수정 2023.06.15 14:52

고용부 직원에게 제주한달 살기를 허하라 [기자수첩]

[파이낸셜뉴스] "고용노동부가 전 부처 가운데 가장 휴가를 못 가지 않나요?"
"나중에 몰아서 가겠죠."
고용부 고위 관계자가 기자의 질문에 남일처럼 한 대답이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개 정부 부처의 2022년 연차 휴가 평균 미사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미사용일이 많은 부처는 고용부로 집계됐다.

고용부는 일반직 9급부터 고위공무원까지 지난해 말 기준 평균 연차휴가일 수가 18.44일이었고 이 중 9.81일만 사용했다. 연차휴가 미사용일 비율이 46.8%로 개인별로 주어진 법정 연차휴가 중 거의 절반을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의 현실이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고용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발표 당시 한주에 69시간을 몰아서 일하면 여유가 있을 때 한달 제주살기도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지난해 휴가 미사용 현황을 보면 개편안을 만든 고용부가 정작 직원들에 대해서는 인색하다는 냉소가 나온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오히려 "우리 직원들은 연휴 때도 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가 개편안을 발표하자 국민들은 아우성을 쳤다. 69시간 일만 죽도록 하고 정작 휴가는 못 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에서다. 청년층에서는 '과로사 조장법'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고용부는 휴가를 보장하는 안전장치로 '근로자 대표제'를 내세웠지만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반발만 키웠다. 개편안을 만들면서 충분히 국민들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진행한 결과다.

최근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노동개혁은 멈춰섰다.
만약 한국노총이 극적으로 다시 대화에 참여한다 해도 입법 과정에서 거대야당을 넘어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용부 직원들이 그동안 노동개혁에 필요한 정부안을 만드느라 휴가를 가지 못했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금이 연차를 소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부가 일단 모범을 보여야 국민들도 믿고 따라갈 것 아닌가.

언젠가 고용부 직원들 입에서 "올해는 우리 부가 연차 소진 1등을 했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honestly82@fnnews.com 김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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