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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하늘의 그물은 결국엔 걸러낸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19 18:58

수정 2023.06.19 19:54

[구본영 칼럼] 하늘의 그물은 결국엔 걸러낸다
정치·미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일찍이 명저 '트러스트'에서 갈파했다. "신뢰 기반이 없는 나라는 사회적 비용 증가로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할 것"이라고. 그는 1990년대 중반 한국을 저신뢰 사회에서 약간 발전된 유형으로 규정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한국의 최근 현실을 보자.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차장 등 고위직들의 자녀 채용 비리를 보고 그의 탁견에 새삼 놀랐다.

후쿠야마가 저신뢰 사회의 징표로 삼은 건 과도한 가족주의만이 아니었다. 그는 공직사회에 부패와 거짓이 난무하는 한 고신뢰 기반 선진사회로 갈 수 없다고 봤다. 요즘 우리 정치권에서 꼬리를 무는 추문이 그래서 불길하다.


하긴 이 땅에서 정치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직업이 된 지는 오래다. 여야 의원들이 사법 리스크에 노출되긴 다반사였다. 근래엔 더불어민주당 측의 구설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의혹은 제쳐두자. 얼마 전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건으로 송영길 전 대표와 의원 여럿이 입길에 올랐다.

이에 혹자는 "진보는 깨끗하지만 무능하고, 보수는 부패해도 능력은 있다"는 도식이 깨졌다고 한다. 진보 논객 진중권의 분석이 이보다 더 그럴싸하다. "권력이 없어 부패할 기회가 없었을 뿐, 진보라고 특별히 도덕적이었겠는가"라는, 그의 반문이 맞는다면 "집권을 못해 능력을 기를 기회도 적었을 것"이란 역도 성립할 게다.

그런데도 거야는 자성은커녕 외려 '야당 표적사정'이라고 방어막을 친다. 김남국 의원은 거액 가상자산 거래 의혹이 드러나자 "'한동훈 검찰'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궤변이다. 그 누구도 국회 상임위 도중 화장실로 달려가 코인 거래를 하라고 그의 등을 떠밀진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전설의 주먹(백윤식)은 주인공에게 "싸움에 반칙이 어디 있어? 싸움엔 룰이 없는 거야"라고 충고한다. '김남국류'의 대응이 영화 속 대사보다 더 리얼하다. 비위 정황이 드러나도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 되치기로 진위를 모호하게 덮는다는 점에서다. 이에 관한 한 이재명 대표 측도 법정에서 '신공'을 보여줬다. 대장동 사업 실무자 고 김문기씨와 해외에서 같이 골프 치고 큰 나무 둘레를 손잡고 잰 사진까지 공개됐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아 모른다"고 우길 정도로.

고위층의 비리와 거짓이 없어져야 사회 저변의 아랫물도 맑아지게 된다. 문제는 법망이 '정략에 능한 미꾸라지'들은 걸러내지 못한다는 현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이 얼마 전 직원 대상 청렴 특강에서 했다는 말이 위안거리다. 즉 "하늘나라의 CCTV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라"란 주문이 그랬다.


그렇다. 노자도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성기어도 놓치는 법은 없다)라고 했다.
정치인들의 평균적 도덕성이 공직사회나 일반 시민의 그것보다 높지 않아 보이는 지금 여야 정치권이 되새겨야 할 경구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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