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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부총리 경고장보다 무서운 건 소비자 분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19 18:59

수정 2023.06.19 18:59

[강남시선] 부총리 경고장보다 무서운 건 소비자 분노
"밀 가격이 내렸으니 라면 값도 내려라."

실제 반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입에서 나온 저 얘기는 라면 생산업자들이 듣기에 반말보다 더 무서운 협박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한 방송에 출연한 추 부총리가 지난해 라면 업체들이 밀 가격인상을 이유로 가격을 올린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원재료 값이 올랐다고 제품 가격을 올렸으니, 이제는 재료 값이 내려간 만큼 판매가를 다시 되돌려 놓으라는 것이다.

소매시장에서 한번 올라간 값은 좀처럼 내려오기 힘들다. 소비자의 저항감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기 마련이고, 일시적으로 줄어든 판매량은 곧 회복되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2000원 넘게 올랐던 담배 가격 인상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업체로서 굳이 올린 가격을 내릴 이유는 없다.

경제부총리가 라면 가격을 콕 집어서 좋게 말할 때 내리라는 얘기를 했으니, 업체들로서는 무턱대고 버틸 순 없게 됐다. 그래도 내심 부글거리는 불만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하는 모양새다.

사실 시장경제의 틀 속에서 국가전략물자도 아닌 일반 소매상품 가격을 놓고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모양새는 썩 정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업체들의 불만은 일견 타당하다.

그런데 과연 생필품 가격에 정부가 개입하는 게 난데없는 일일까? 멀지도 않다. 불과 몇 년 전 마스크 사태를 떠올려 보자.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마스크 값과 자가진단키트의 값이 오르자 업자들이 사재기하고 폭리를 취하는 등의 시장교란 사태가 일어났다. 몇백원짜리 마스크는 가격이 1만원을 넘어가고, 3000원이면 살 수 있던 진단키트는 1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정부가 신속히 나서 판매 수량과 가격을 제한하지 않았다면, 국민들은 비뚤어진 상인들에게 폭리를 뜯겨가며 마스크를 사야 했을 것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부유층과 서민 간에 마스크 불평등도 벌어졌을 것이다.

물론 정부의 가격통제가 부정적 결과를 내기도 한다. 18세기 프랑스 정치인 로베스피에르는 물가상승을 막으려고 생필품 최고가격을 제한했는데, 이는 결국 생산 감소를 불러왔고 시민들은 더 비싼 값을 내고 암시장에서 식료품을 사야 하는 엉뚱한 상황으로 번지기도 했다.

사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정부의 인위적 가격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시장이 균형을 잃거나 비정상적 독점구조가 발생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해서다. 대표적인 예가 최저임금제 같은 것이다.

외식물가 상승이 무서울 정도다. 그중에서도 라면 값은 1년간 13%나 올랐다고 한다. 가장 인기 있는 라면은 한 봉지에 900원에 육박한다. 물가안정을 위기극복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보고 있는 정부는 이미 시장에 적극 개입하기로 결심한 듯 보인다.


이제 남은 것은 업체들의 선택이다. 원재료 값과 시장 논리를 내세워 버틸 수도 있겠지만, 그다음엔 정부의 압박보다 큰 문제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곡물가 파동을 틈타 호주머니를 채우는 데 급급했다는 프레임이 씌워진다면 소비자의 분노가 라면 업체들을 향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