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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연 소아과 어디 없나요?"..펄펄 끓는 아이 안고 발만 동동

홍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22 05:00

수정 2023.06.22 05:00

갑자기 아프면 어쩌죠? 애타는 부모들
어린이 의료 붕괴 이제 시작
서울 소아과 5년간 10곳 중 1곳 문 닫았다.자료사진 연합뉴스
서울 소아과 5년간 10곳 중 1곳 문 닫았다.자료사진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둘째를 낳고 싶은데 소아과 걱정 때문에 도저히 엄두가 안납니다. 아이 데리고 잠깐 어디라도 나가려면 근처에 있는 소아응급실 위치부터 확인해요."
"아이가 아픈데 치료 받을 수 없을까봐 너무 무서워요. 소아과병원 오픈런은 기본입니다. 저출산 대책에 관련 내용이 포함됐으면 좋겠습니다."

'소아 의료 대란'에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대형병원 곳곳이 야간에 소아응급실 운영을 중단하거나 운영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소아과 병원 '오픈런'은 아예 일상이다.

문제는 이게 시작일 뿐 앞으로가 더욱 암울하다는 점이다. 소아과는 그야말로 소멸 위기에 처했다. 저출산 장기화, 고착화된 저수가 등으로 소아과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전공의 수는 매년 줄고 있다.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갑자기 아프면 어쩌죠? 애타는 부모들

22일 서울연구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통계'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개인병원(의원) 중 소아청소년과는 456개로 2017년 521개보다 12.5% 줄었다.

지역 소아청소년과 개원 의사들이 주축인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3월 말 기자회견에서 "저출산과 낮은 수가 등으로 수입이 계속 줄어 동네에서 기관을 운영하기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폐과'를 선언하기도 했다. 부모들이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받으러 병·의원이 문을 열기 전에 줄을 서는 평일 아침 '오픈런'은 일상이 됐다.

자료사진.연합뉴스
자료사진.연합뉴스


응급실 상황도 심각하다. 소아응급실 운영을 중단하거나 축소한 병원은 한두곳이 아니다. 지난해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소아응급실 야간 진료를 중단했고 이대목동병원도 외상 환자가 아닌 소아 응급환자를 받지 않고 있다. 한강성심병원 응급실은 화·목·토·일에만 야간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상주한다. 동탄성심병원 응급실은 아예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중단했다.

국내 첫 아동전문병원이었던 서울 용산구 소재 소화병원은 근무 의사 부족으로 이달부터 휴일 진료를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다른 병원들이 소아응급실 운영을 중단 또는 단축하면서 국립대병원 응급실을 소아청소년 환자 수가 급증했다. 중증 소아 환자 뿐 아니라 경증 소아 환자가 국립대병원을 찾는 사례가 많아졌다. 국립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소아청소년 환자 수는 3년 간 약 70% 증가했다. 하지만 국립대병원 소아과 전공의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어린이 의료 붕괴 이제 시작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실이 전국 국립대병원 10곳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 국립대병원 10곳 중 6곳이 소아청소년과(소아과) 전공의를 한 명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연속 전공의가 '0'명인 국립대병원도 3곳에 달한다.

국립대병원 소아과 전공의 수는 2020년 29명, 2021년 26명, 2022년 22명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특히 올해는 14명으로 3년 만에 절반 이하로 확 줄었다.

올해 전국 국립대병원 소아과 전공의 정원은 44명인데, 지원자는 14명에 불과했다. 서울대병원 10명, 전남대 2명, 충북대·전북대 각 1명이다. 충남대 등 전공의를 3년 연속 아예 받지 못한 국립대병원도 3곳에 달한다.

소아과 의사 부족 현상 심화로 국립대병원의 응급실 소아 진료에도 차질이 빚어지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책 속속 내놓고 있지만…
[세종=뉴시스] 이연희 기자 =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 표지석. 2022.09.01. photo@newsis.com /사진=뉴시스
[세종=뉴시스] 이연희 기자 =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 표지석. 2022.09.01. photo@newsis.com /사진=뉴시스

상황이 심각하자 정부가 속속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모들에게 체감도 높은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3월 긴급대책반을 구성한 상황이다.

복지부는 제5기(2024∼2026년)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되는 기관에 대해 내년 1월부터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에 대해 '상시 입원환자 진료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준수사항을 추가했다. 내년부터 상급종합병원들의 소아과·산부인과 입원진료 실적이 지속적으로 있는지를 중간 평가해 정당한 사유 없이 준수사항을 어기면 시정명령을 거쳐 지정 취소 조치까지 할 예정이다.

또 주산기(출산 전후 의료),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의 전문병원 지정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전문병원의 지정 등에 관한 고시를 개정해 소아 분야 등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고시가 개정되면 전문의 수 기준은 주산기와 산부인과가 8명에서 5명으로, 소아청소년과가 6명에서 4명으로 줄어든다.

다만 전문병원 기준 완화를 둘러싸고는 의료의 질 하락으로 이어져 전문병원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서울 상계동에서 아이를 키우는 A씨는 "부모 입장에서 정말 너무나 시급한 사안인데 아직까지 부모들에게 와닿는 대책이 없는 것 같다"며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소아 의료 체계를 하루빨리 복원시켜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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