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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거울이나 봐"…명문대생·대기업 직원 '악플 괴물'이었다[악플러의 동굴]①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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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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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악플러는 영미권에서 '인터넷 트롤'(Internet troll)이라 불린다. 트롤은 스칸디나비아 등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대부분 동굴에 살고 있다. 트롤은 인간을 공격하지만 햇볕을 쬐면 돌이 되거나 터진다. '현실 세계' 속 트롤도 양지가 아닌 음지를 지향한다. 악플러들이 온라인에 적어 올린 글은 흉기가 돼 누군가의 삶을 위협한다. 이들은 왜 악플을 다는 걸까. <뉴스1>이 직접 만나 악플러들의 '이중생활'을 들어봤다.

(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대기업 직장인 홍은아씨(33·여·가명)는 '무던한 성격'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적어도 '오프라인'에선 그렇게 살아왔다. 명문대 출신에 친구도 많은 그는 겉으론 평범해 보였다. 가족과 지인은 고교·대학 시절 홍씨를 '모범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XX야, 거울이나 봐라", "꼬리치지마 XX아"

그러나 인터넷에 접속하면 홍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었다. 유명 아이돌의 팬이었던 그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글을 써서 올렸다. 좋아하는 스타의 애인으로 알려진 일반인 여성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고 이 여성에게 욕설·협박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도 몰랐던 홍씨의 '이중생활'이었다.

◇'반 1등' 놓치지 않던 모범생은 어떻게 '악플러' 됐나

"공부에 지친 시절 아이돌은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졌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아이돌의 무대 영상을 보는 게 낙이었어요."

홍씨는 고등학교 시절 '반 1등'을 거의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교우관계도 원만한 우등생이었다. 대학 진학 후 일상이 여유로워지자 그는 음악방송과 콘서트를 빠짐없이 챙기며 본격적으로 아이돌을 추종했다.

그때부터 기사 댓글 공간과 팬 커뮤니티에 게시글을 마구 올렸다. 다른 아이돌 팬이나 여자 그룹들을 겨냥한 무시무시한 댓글이었다.

"당시 아티스트가 팬들에게 일방적인 비방을 멈춰달라 부탁했을 정도죠. 그러나 우리에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요. 몹쓸 짓이었고 처벌받아도 할 말 없는 범법 행위라고 이제는 후회하지만 당시엔 옳은 일을 한다고 착각했어요"

특히 2012년부터 약 1년간 자신이 열광하는 아티스트와 사귄다고 소문난 일반인 여성에게 그는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 홍씨는 열혈 팬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 해당 여성의 신상을 공개했다. 메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욕설과 함께 '헤어지라'는 협박 메시지도 보냈다.

"악플러 대부분은 그 시절 저처럼 본인만의 합리화에 사로잡히고 익명성에 숨어 지내요. 죄의식 없이 악플을 쓰는 것이죠. 악플러에 대한 고소는 과거보다 늘었지만 형사 처벌되는 경우는 많지 않죠. 여전히 습관적으로 악플을 다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를 시작하고서야 '악플러의 동굴'에서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는 '혹시나 취업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자신이 썼던 악플들을 모두 지웠다고 한다.

◇'익명성 보장' 온라인에선 '정반대' 인격…"정당한 비판" 합리화도

<뉴스1>이 만난 악플러들은 홍씨처럼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오프라인에선 무난한 성향이었다. 악플러는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세간의 인식과 차이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에선 정반대의 인격으로 돌변했다. 집요하게 대상을 비난·비하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본인의 악플을 합리화하기도 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주류회사를 3년째 다니고 있는 최현준(30·가명)씨는 7년째 특정 프로게이머와 팀 관련 악플을 수두룩하게 달았다. 그가 밝힌 악플의 이유는 '실력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글은 '머리에 X만 가득찼냐', 'XX만도 못한다' 등 인격 모욕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최씨는 "프로가 연습을 제대로 안해 패배하면 그 정도 비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표현 수위와 관련해서도 "이 정도는 누구나 하지 않나. 커뮤니티에 들어가보면 난 애기 수준"이라며 "잘못이 있었다면 진작에 고소당하지 않았겠냐"고 반문했다.

보수 성향의 60대 A씨는 "나라가 잘되려면 쓴소리하는 어른들도 필요하다"고 항변했다.

A씨의 악플 대상은 야당 정치인과 시민단체, 북한 추종 세력들이다. '총살해야 한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 그는 자신의 악플에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A씨는 "잘못을 저지른 나쁜 사람들을 시민으로서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화풀이가 아니라 나라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사이버 모욕·명예훼손 신고 매년 증가…처벌 여전히 '솜방망이'

유명인들이 잇달아 악플러들을 고소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악플 자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 모욕 및 명예훼손 관련 신고 건수는 △2019년 1만6633건 △2020년 1만9388건 △2021년 2만8988건 △2022년 2만9258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찰이 관련 혐의로 검거한 건수도 △2019년 1만6633건 △2020년 1만2638건 △2021년 1만7423건으로 늘어났다.

근거 없는 비방을 하거나 악플을 작성한 이들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또는 모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러나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고 처벌 또한 기소유예나 가벼운 벌금형 등 '솜방망이'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7년부터 2021년 6월까지 사이버 명예훼손 및 모욕 범죄로 구속된 인원은 43명에 불과하다.

정치권에선 2019년 일명 '악플 방지법'을 발의했지만 당시 국회 회기 종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선 인터넷 준실명제 도입, 악플 처벌 강화 등이 담긴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지만 통과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사이버 모욕죄 사건을 담당하는 한 경찰 수사관은 "인터넷 댓글로 특정인들을 비방했을 때만 악플러를 고소한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에는 온라인 게임 채팅창에 모욕성 글을 쓴 경우에도 고소고발이 이뤄지면 해당 콘텐츠 운영자와 협조해 수사한다"고 짚었다.

다만 이 수사관은 "아직까진 대부분 합의를 하거나 재판을 가도 벌금형에 그치는 수준이어서 실제 고소당한 사람들도 본인의 악플이 문제라고 잘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